[ 이슈추적 ] 2003년04월24일 제456호 

펄떡펄떡 안 뛰는 ‘특검 생선’

정치적 고려 앞서는 대북송금 수사… 관련자 진술에 전적으로 기대야 하는 상황 올 수도

“정치가 생물이듯이 사건도 생물이다. 생물인 만큼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번 사건은 펄펄 뛰는 활어라기보다는 냉동생선에 가깝지 않을까.”

대북송금 사건 수사를 두고 한 검찰 간부가 내뱉은 이 말은 이번 수사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준다. 스스로를 ‘칼잡이’라고 부르는 수사검사들은 활어를 좋아한다. 종잡을 수 없이 튀어야 잡을 때 맛이 유별나다는 얘기다. 냉동생선에 칼을 댄다는 것은 언제나 찜찜한 일이다.


사진/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송두환 대북송금 사건 특별검사(왼쪽). 이번 수사과정에서 엄청난 사실관계가 새롭게 밝혀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한겨레 황석주 기자)


송금액 더 크게 드러날 가능성도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수사와 관련해 엄청난 사실관계가 새롭게 튀어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사건의 기본 줄기는 대강 잡힌 상태다. 또 핵심 관련자들은 “실정법에 저촉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특정한 가치, 즉 한반도의 전쟁방지와 평화를 위해 알면서도 법을 어겼다”고 이미 고백한 상황이다. 이 정도면 확신범 수준이다. 게다가 핵심 관련자 가운데 일부는 휴전선 북쪽 너머에 있어 방문조사나 서면조사조차 불가능하다.

이번 사건을 맡은 송두환 특별검사 수사팀은 특검 사상 4번째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해 실시되는 것이 특검제지만 이번만큼 정치적 성격이 짙은 사건도 없었다. 이 때문에 송 특별검사도 수사를 시작하면서 ‘선 진상규명, 후 국익고려’라는 원칙을 내세웠다. 사실관계는 정확히 밝히되 형사처벌 여부나 범위, 수사결과의 공개범위 등에 대해서는 정치적 고려를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미리 밝힌 셈이다.

4월17일 수사에 돌입한 특검팀은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출국금지와 입국 통보 조처된 이들만 39명으로 이들은 대부분 김대중 정부의 핵심 관계자들과 현대쪽 관계자들, 그리고 국정원 전·현직 간부들이다. 수사는 ‘계좌추적과 압수수색을 통한 송금규모 및 내역·절차 확인→송금 목적과 배경 및 불법 여부 확인→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법리 검토→기소 여부 최종 결정’ 등의 순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최장 120일로 돼 있는 수사기간으로 따져보면 수사가 고빗사위로 접어들 때는 한여름일 가능성이 높다.

특검수사팀이 밝혀내야 할 의혹 부분은 크게 △대북송금의 정확한 규모 및 경로와 자금출처 △송금의 목적과 배경(정상회담의 대가성 여부 등) △송금과정에서의 외압 여부 및 국정원·청와대 등의 불법개입 여부 등으로 나뉜다.

먼저 송금액은 현재까지는 5억달러 이상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2월9일 <오마이뉴스>가 “정상회담 이전에 지불된 돈은 모두 5억달러이며, 현대그룹이 대북 7대사업의 30년 개발 대가금 명목이었다”고 단독 보도한 뒤 2월14일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대규모 협력사업들을 독점하기 위한 대가로 5억달러를 지불하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다”고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임 전 원장의 말은 “보고를 받았다”는 것이어서 실제 대북송금액 규모가 정확히 파악된 것은 아니다. 또 특검법상에는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아 송금한 것으로 확인된 2억달러 이외에도 △2000년 5월 현대건설이 싱가포르 지사를 통해 송금한 1억5천만달러 등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주도로 계열사에서 모금한 5억5천만달러가 북한에 송금됐는지와 △2000년 7~10월 현대전자 스코틀랜드 반도체공장 매각대금 등 1억5천만달러가 송금됐는지 등도 수사대상에 포함돼 있어 액수가 더 커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사진/ 특검조사에 응해야 할 핵심인사들. 김대중 전 대통령,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 임동원 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김운규 현대아산 사장(왼쪽부터).

정상회담 성사 대가성 있었나

송금의 목적과 배경은 송금이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를 가름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부분이다. 이 부분이 어떻게 결론나느냐에 따라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의 의미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의 의미마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생길 수 있다. 북쪽이 특검 수사에 민감해하는 이유도 이 부분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송금에 간여한 핵심인사들은 “현대쪽의 대북사업 독점사업권에 대한 대가금 명목”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2월14일 대국민해명에서 “현대는 대북송금의 대가로 북쪽으로부터 철도, 전력, 통신, 관광, 개성공단 등 7대사업권을 얻은 것”이라고 구체적인 사업영역까지 열거했다. 그러나 송금 시기가 정상회담 직전이라는 점 때문에 정상회담을 위한 대가성이라는 의혹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2000년 당시 정상회담 일정이 북쪽에 의해 일방적으로 바뀐 것과 송금이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된 지 오래다.

그러나 이 부분에 관한 확인은 문서에 의한 입증이 아니면 어려워질 전망이다. 관련자들의 진술에 거의 전적으로 기대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서로 이 같은 사실이 명시적으로 표시돼 있지 않고, 김대중 정부 핵심 관련자들과 현대쪽 소환자들의 진술이 일치한다면 입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 부분에 관해 증언해줄 수 있는 관련자들은 북쪽 인사들(김정일 국방위원장, 송호경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로 제한된다.

국정원의 개입 여부와 관련해 임동원 전 원장은 “국정원장 재직 때인 2000년 6월5일께 현대쪽이 ‘환전 편의 제공을 해달라고 요청해왔다’는 보고를 듣고 관련 부서에 제공이 가능한지 검토해보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고 밝힘으로써 일단 국정원이 깊이 개입돼 있음을 확인했다. 당시 임 원장의 지시로 국정원 직원들은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당좌대월 2235억원에 대해 이서·배서 등의 방법으로 외환송금 편의를 제공했다. 특검수사에서는 다른 송금과정에도 국정원의 개입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박지원씨 역할도 의혹거리

이와 함께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던 박지원씨의 역할 등도 수사과정에서 주요하게 불거질 의혹거리다. 그는 현대아산과 북쪽이 2000년 3월 중국 상하이에서 5억달러를 합의하는 자리에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함께함으로써 당사자 간 계약을 보증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싱가포르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한 북쪽 핵심인사를 만난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주목거리다.

수사 상황은 핵심 관련자 6명에 대한 조사 시점을 전후해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 임동원 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와 현대쪽에서는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김운규 현대아산 사장 등이다.

<대북송금 사건 일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2002년

9.25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 4천억원 대북지원 의혹 제기

10.14 감사원, 산업은행 감사 착수

2003년

1.18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검찰에 소신 수사 주문

1.23 검찰, 정몽헌 회장 등 출국 금지

1.30 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

2.5 김대중 대통령, 송금 공개에 반대입장 표명

2.9 <오마이뉴스> “송금 5억달러 현대 사업대가 명목” 보도

2.14 김 대통령, 대국민해명 회견

2.26 특검법 국회 본회의 통과

3.4 북한 조평통, “특검 도입 때는 남북관계 동결”

3.14 노 대통령, 특검법안 공포

3.17 여야 법안 수정협상 시작

3.24 대한변협, 특검후보 발표

3.27 노 대통령, 송두환 변호사를 특별검사로 지명

4.17 특검수사 개시, 박상배 전 산은 총재 자택 압수수색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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