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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꼭 죽여드릴까요?” ‘파멸의 광기’ 전모와 배후 드러난 여대생 공기총 납치·살해 사건
서울 명문 여대 법대생 하아무개(당시 22살)씨 납치·살해 사건이 돈과 명예를 모두 거머쥐려고 한 50대 여인의 청탁에 의한 살인극으로 드러나면서 빗나간 부유층의 행태가 또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사건은 지난해 3월6일 미모의 명문 여대생이 괴한들에게 납치된 지 열흘 만에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 등산로에서 머리와 얼굴 등에 5mm 구경의 공기총 실탄 6발을 맞고 잔혹하게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공기총으로 근접사격을 해 ‘확인사살’까지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경찰 발표와 함께 살해된 여대생의 주변인물이 모두 ‘빵빵한 사람들’이어서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수사 초기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이 명문대 법대생이거나 변호사·판사 등 현직 법조인, 그리고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국내 중견기업 대표의 ‘사모님’까지 거론됐기 때문이다.
동원된 감시원 20여명 넘어
이 사건을 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모님’ 윤아무개(58)씨와 숨진 하씨의 악연은 윤씨가 판사인 ㄱ(30)씨를 사위로 맞이하면서 시작된다. 남편과 함께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악착같이 돈을 벌어 중견기업을 일군 윤씨는 중매인에게 수천만원의 돈을 주면서 외동딸(27)의 혼처를 찾아줄 것을 부탁한다. 중매인은 ‘지방재벌’ 사윗감으로 서울 명문 법대를 나와 사법연수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장래가 보장된 청년을 소개받았다. 엄청난 재산 외에 법조인으로서 탄탄대로를 갈 사윗감을 얻은 윤씨는 주변에서 부러워할 만한 ‘모든 것’을 한꺼번에 거머쥔 듯했다. 그러나 윤씨는 막강한 재력을 동원해 얻은 행복을 몇달도 안 돼 스스로 깨뜨리기 시작했다. 1999년 말 결혼식을 올린 사위가 결혼 전 과외를 해준 이종사촌 하씨와 불륜관계를 맺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문을 주위로부터 들은 것이다. 윤씨는 이 때부터 병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파헤치고 다녔다.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사위의 전화통화 내용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물론 하씨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보인 윤씨의 집착은 누가 보아도 편집광이었다. 그는 조카 윤씨를 ‘행동대장’ 격으로 삼아 돈을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동원해 하씨의 감시와 미행을 일삼았다. 동원된 감시원은 자동차매매상사나 심부름센터 직원에서부터 현직 경찰관 5명 등을 포함해 모두 20여명이 넘었고, 이들에게 뿌린 돈만 5천만원을 웃돌았다.
승복차림으로 미행 현장지휘도
이처럼 윤씨의 ‘광기’어린 행동이 계속되면서 하씨의 미행·감시원들의 불평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감시원 노릇을 한 이아무개씨는 경찰조사에서 “사모님은 나를 기사로 채용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미행을 시켰다. 사위나 하씨 가운데 1명이 없어져야 이 일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해 이 사건이 이미 예견됐음을 내비쳤다. 결국 20여명의 감시원 가운데 허아무개씨 등 상당수는 윤씨의 심한 간섭과 독촉, 불신, 황당한 지시 등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감시원 노릇을 그만두는 등 ‘내부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윤씨는 2001년 3월27일에는 사위가 근무하는 법원 건물 복도에서 직접 ‘잠복’하는 등 집착을 버리지 못하다 사위에게 “(하씨)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앞으로 ‘그녀(하씨)가 절대 찾아오거나 전화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전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또한 윤씨는 사위와 하씨가 컴퓨터 통신을 하는지까지 확인하기 위해 집 컴퓨터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상식을 벗어난 행태를 보였다. 정도를 지나친 윤씨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급기야 같은해 3월29일에는 바깥사돈인 하씨의 아버지를 만나 “딸 단속 잘해라, 이놈저놈 빌붙어먹고 시집가서 잘사나 두고 보자”라는 등의 입에 담지 못할 험담을 늘어놓아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윤씨의 행동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사위와 하씨의 불륜사실을 증명해 그동안 들인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입증하려 한 듯한 윤씨는 결국 2001년 10월께 하씨를 납치해 직접 ‘자백’을 받기로 하고 조카 윤씨에게 ‘납치요원 선발’을 지시한다. 무위도식하며 지내던 조카 윤씨는 이 때 돈 많은 고모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수차례에 걸쳐 하씨를 집 앞에서 납치해 ‘상납’하려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뿌리 깊은 배금주의의 기억”
연이은 납치실패에 극도로 화가 난 장모 윤씨는 “차라리 죽여버리는 게 낫겠다. 죽일 사람을 알아봐라”라고 다그치면서도 “성공하면 거액을 주겠다”고 말하는 등 ‘채찍과 당근’을 함께 사용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때문에 조카 윤씨는 사채업을 하다 실패하고 놀고 있는 고교 동창생인 김씨를 끌어들여 납치와 살인청부를 맡기고 5개월여 동안 치밀한 계획을 짜 ‘파멸의 거사’를 꾸몄다. 청부살인극으로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한 여대생 공기총 피살사건은 ‘지나친 사위사랑’이나 ‘외동딸의 행복을 지키려는 모정’으로 보아 넘기기엔 너무 사치스럽다는 게 수사를 맡은 경찰관들의 말이다. 오히려 나름대로 부를 축적하는 데 성공한 50대 여인이 중매인에게 수천만원을 주고 맞아들인 법조인 사위에게 ‘순결’을 강요하다 빚어낸 참극이라는 평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돈이면 누구라도 자신이 짠 각본 속에 옭아맬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비뚤어진 일부 부유층의 망상이 부른 우리 사회의 어두운 한 단면이라는 씁쓸함도 남겼다. 하씨의 아버지(56)는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의 본질은 ‘오해가 부른 청부살해’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배금주의와 권력지향주의가 얽혀 빚어낸 비극이다. 돈에 눈이 멀어 살인을 저지른 몇몇 하수인에게는 연민의 정이 가지만, 이를 사주한 사람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사죄한다 해도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며 탄식과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또다른 피해자인 판사 사위는 사건 이후 주위의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아직 현직에 몸담고 있다.
김기성 기자/ 한겨레 사회부 rpqkf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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