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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린돈 불똥 청와대로 튈라 노무현 대통령 핵심측근 거액수뢰 파문 확산… 당사자 투자금 주장에도 석연치 않은 대목 많아
“이번 수사에 검찰의 명운이 달려 있는 만큼, 한치의 빈틈없이 철저히 수사해달라”. 대검 공적자금비리합동수사반(반장 김수남 부장)이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의혹’ 사건 수사 재개를 선언한 지난 4월4일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서울지검 서부지청에 설치된 합수반을 찾아 이렇게 당부했다. 지난해 7월 초 이 사건 내사를 중단했다가 9개월여 만에 다시 칼을 빼든 검찰 지휘부의 비장한 각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검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 2명이 이 사건에 연루돼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부터 이른바 ‘측근 논란’에 휩싸여 곤욕을 치른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과 염동연 민주당 인사위원이 그 주인공들이다.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 2억5천만원의 실체
이 사건은 대선 나흘 전인 지난해 12월15일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어 관련 의혹을 제기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홍 의원은 당시 “지난 6월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를 수사하던 검찰이 노무현 후보 측근인 안씨·염씨뿐 아니라 민주당 최고위 간부 등에게도 수억여원씩의 로비자금이 뿌려진 사실을 확인하고도 수사를 중단했으며, 관련 수사기록과 비자금 장부를 은폐했다”고 말하고, 2002년 6월18일치 최씨의 검찰 진술조서 사본을 공개했다. 그는 또 “검찰이 230억원에 이르는 김 전 회장의 ‘비자금 사용내역서’를 압수하고도 이를 은폐했다”며 “검찰이 대선을 앞두고 여당 후보 최측근들과 현 정권 실세의원들이 관련된 것이 나오자 수사를 덮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가 “검찰이 지난 6월 최씨한테서 1999년 8월쯤 김 회장의 지시로 안씨와 염씨에게 각각 2억원과 5천만원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내사를 중단했다”고 보도한 지 이틀 만에 나온 폭로였다. 이 같은 의혹은 당시 각각 노 후보 정무팀장과 정무특보를 맡고 있던 안씨와 염씨가 “노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한 중상 모략”이라고 강력히 부인한데다, 곧바로 대선이 치러지면서 세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듯했다. 그러나 취임 이후에도 야당과 언론 등이 이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데 부담을 느껴온 노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내가 걸림돌이라면 상관하지 말고 수사하라”고 지시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합수반 수사팀은 노 대통령 발언 직후 김 전 회장과 그의 돈 심부름을 한 최씨를 다시 소환조사하는 등 수사 채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 3일 송광수 검찰총장이 공식 취임하자 그사이 검찰 인사로 새 진용을 갖춘 수사팀은 ‘정면 돌파’를 건의했고, 송 총장이 ‘오케이 사인’을 내자 다음날 수사 재개 발표를 하기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당일 예기치 않던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김 전 회장쪽이 언론을 통해 “두 측근에게 2억5천만원 준 것 맞다”고 공개적으로 ‘자복’을 하고 나선 것이다. 김 전 회장의 변호인인 이재화 변호사는 이날 <한겨레> 등과의 인터뷰에서 “김 전 회장이 그동안 접견 과정에서 ‘99년 생수회사를 운영하던 안씨에게 사업 투자금조로 2억원을, 고교 선배인 염씨에게 생활비조로 5천만원을 건넸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이렇게 ‘선수’를 치고 나온 배경에 대해 “혹시라도 검찰이 여론 등을 의식해 대가성 있는 돈을 주고받은 것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있어, 진상을 미리 공개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투자금을 비자금 내역서에 포함했다
그러나 <한겨레> 취재결과, 이 변호사의 주장은 상당부분 사실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 핵심 관계자는 “대선 몇달 전에 김 전 회장한테서 두 측근에게 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얻은 것은 맞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안씨에게 준 2억원이 생수회사 투자금이라는 진술은 지난달 조사 때 처음 나왔다”고 해명했다. 특히 그는 ‘영수증’ 존재 여부에 대해 “수사기법상 (공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확인해주기 어렵다”며 사실상 영수증을 확보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여기에 더해 검찰이 지난해 6월 최씨 집에서 찾아낸 ‘비자금 관리내역서’에 김 전 회장이 두 측근에게 2억5천만원을 전달한 내역이 기록돼 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이 내역서는 홍준표 의원이 대선 직전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고 은폐했다”며 거론한 문제의 자료다. A4용지 10쪽 분량의 이 문건에는 김 전 회장이 최씨를 시켜 따로 관리한 230억원대의 개인자금 사용내역과 시점 등이 엑셀 프로그램으로 정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쪽은 여기에 안씨와 염씨에 대한 돈 전달 내역을 ‘99년 7월00일 친구 2억원’, ‘99년 9월00일 큰형님 5천만원’ 등의 암호문구 형태로 기록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사실 역시 “이름만 ‘비자금 내역서’지 로비자금과는 전혀 무관하다”던 검찰의 기존 설명을 뒤집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사팀이 1년여 전에 두 측근의 돈 수수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김 전 회장쪽 진술과 ‘영수증’, ‘비자금 내역서’ 등 결정적 단서들을 확보하고도 내사를 중단한 배경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검찰은 아직까지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단 검찰 안팎에서는 “수사팀이 지난해 6월 두 측근의 돈 수수 정황을 파악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상황을 고려해 자체적으로 수사유보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정치권 또는 검찰 ‘윗선’의 외압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 명예회복 시금석, 강도 높은 수사 내비쳐
그러나 이들도 안씨와 김 전 회장쪽이 떳떳한 생수회사 투자금이라면 굳이 계좌이체나 수표를 이용하지 않고 굳이 1만원권 현찰로 2억원을 주고받은 점과 정상 회계처리가 돼 있지 않은 점 등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때문에 수사팀은 나라종금 퇴출문제 이외의 다른 청탁사안과 관련해 돈이 건너갔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안씨와 염씨는 돈을 받은 사실을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로비를 받거나 한 적이 결코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검찰은 또 정치인 로비자금 의혹에 대해서는 “아직 어떠한 단서도 나온 게 없다”고 밝혔다. 두 측근에게 돈을 전달한 사실을 인정한 김 전 회장쪽도 이 부분만은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수사의지를 내비친 터여서 결과를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도 “수사는 살아 있는 생물과 같아서 우리도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석 기자/ 한겨레 사회부 hgrh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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