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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지지’의 손익계산서 노 정부가 얻을 것은 한반도 평화 약속과 총선 승리 기반이요, 잃을 것은 원칙과 명분
이라크 전쟁은 장차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회계장부’에 손실로 기록될까 이득으로 남을까.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노 대통령의 확실한 지지는 대북송금 특검법 수용에 이어 두고두고 그의 정치·외교력을 평가하는 주요 잣대가 될 것 같다. 나라 안팎으로 들끓는 반전여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안심하는 보수층
대미 자주적 외교노선을 강조하던 노 대통령은 3월13일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를 전후로 미국 입장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로 신속하게 돌아섰다. 백악관의 공식 개전성명이 나온 지 1시간 만에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 공병단과 야전의무부대의 파병 규모까지 의결했다. 이튿날엔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국군부대 이라크 파견 동의안을 통과시켰고, 여야 지도자를 청와대로 초청해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모양새도 갖췄다. 조금의 주저도 없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을 확고하게 지지해온 개혁국민정당의 김원웅 대표조차 “왜 그토록 조급하게 서둘렀는지 모르겠다”며 재빠른 전쟁지지에 이의를 제기했다. 노 대통령으로선 기왕 미국의 손을 들어줄 바에야 주저하지 않고 표나게 지지함으로써 생색을 내려 했는지 모르지만 반론이 거센 상황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지지가 노 대통령에게 어떤 정치적 여파를 가져올까. 미국과의 관계가 이전보다 나아질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노 대통령은 국군파병 동의안을 의결한 3월13일 임시국무회의에서 “경제상황과 북한 핵문제 등 여러 현안을 헤쳐나가기 위해 미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의 대미 자주외교노선에 의문부호를 달아온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그에게 여러 모로 득이 될 것이다. 당장 5월께로 잡힌 한-미 정상회담에 편안하게 임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이 큰 이득일 것이다. 3월13일 부시 미국 대통령은 노 대통령과 통화에서 “미국의 정책기조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미국이 이라크 전쟁문제로 고심하다 노 대통령이 지지선언을 하니까 교환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고받기식 외교’였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근거는 밝히기 곤란하지만 이라크 전쟁이 끝나면 미국이 유연하게 나올 것”이라고 말해 미국쪽에서 모종의 메시지가 있음을 암시했다. 경제적으로도 미국 신용평가기관의 국가신용등급 하향조정 ‘협박’에서 한숨을 돌리게 됐다.
지지 보내던 네티즌 돌아서다
“나의 머릿속은 온통 두 가지 생각으로 덮여 있다. 첫째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는 것이요, 둘째는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얼마 전 민주당 정대철 대표에게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말을 통해 노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라크 침공에 대한 미국 입장을 신속하게 지지함으로써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받고, 동시에 국내 보수층에도 한 발짝 다가감으로써 지지기반을 넓혀 그야말로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셈법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명분없는 전쟁을 지지함으로써 노 대통령이 치러야 할 대가도 적지 않다. 그의 최대자산은 원칙과 명분, 당당함 등이었다. 국민여론의 81%가 반대하는 이라크 침공전쟁에 대한 지지는 그의 이런 이미지를 훼손시켰다. 대통령으로서 그가 놓인 정치적 상황의 미묘함과는 별개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기 위해 불가피한 전쟁’이라는 말은 어쨌든 명분을 중시해온 그에게 상처를 입혔다. 반전론자들은 “노 대통령이 밝힌 전쟁 지지이유를 한반도에 적용하면 북의 핵무기를 제거하기 위한 전쟁이라면 한-미 동맹체제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도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반론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노 대통령은 2002년 12월31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의 의견을 따르지 않으면 마치 큰일이 나는 것처럼 몰아붙이는 국내 일각의 정치적 주장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대미 자주적 외교노선을 강조했다. 3개월이 채 안 된 지금 그는 ‘미국과의 돈독한 관계’를 힘주어 주장한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를 열성적으로 지지한 네티즌들은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낸다. 지난해 선거기간 중 노 후보의 공식 지지연설자로 나섰던 가수 신해철씨가 청와대 앞에서 반전을 주장하며 1인시위를 벌인 장면은 상징적이다. 노 대통령 지지기반의 핵심은 호남민심과 개혁세력이라는 두 축이다. 그는 대북송금 특별법을 전격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호남민심의 이완을 감수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그의 태도는 상황전개 여부에 따라 개혁세력의 이탈을 부를지 모른다. 지난해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YS를 찾아가 ‘영삼시계’를 내보였다가 지지율이 곤두박질친 이유도 ‘노무현다움’의 상실, 즉 원칙과 명분의 훼손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 핵심 지지세력인 개혁국민정당의 한 당직자는 “당원들이 굉장히 혼란스러워한다. 당장 지지를 철회하지는 않겠지만 당분간 노 대통령의 행보를 주시할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적어도 지지의 강도는 약화됐다는 얘기다.
정치권 반전 목소리 심상치 않아
여야 정치권의 반전목소리도 심상치 않다. 민주당에서도 임채정·이해찬·김경재·이미경 의원 등 노 대통령을 표나게 지지했던 의원들이 반전의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고 있다. 여기에 한나라당 개혁파 일부, 민주노동당, 개혁적 국민정당 등 범 개혁진영이 한목소리로 반전을 외치고 있다. 반면, 노 대통령과 사고의 틀이 다른 것으로 간주됐던 한나라당 보수파나 자민련, 하나로국민연합 등 범 보수진영에서 노 대통령을 잘했다고 칭찬하는 기이한 양상이다. 반전을 주장하느냐, 아니면 침묵하느냐가 정치인들의 이념적·정책적 정체성을 구별짓는 시금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선 이런 ‘모순’이 정치권 재편을 촉발하는 불쏘시개가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성호 의원은 “노 대통령이 이번 전쟁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국내 보수층의 불안감을 씻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역사의식 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전통적 지지층의 이탈을 부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대북송금 특검법 수용은 실리보다 명분을 취한 것이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확고한 지지는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러한 선택으로 보수층 일부의 지지를 얻었지만 전통적 지지층 일부의 근본적인 비판에 직면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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