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03월20일 제451호 

이석희, 김 빠진 뒤 왔으나…

세풍의 주인공 4년7개월 만에 귀국… 검찰은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것인가


사진/ 미국 사법당국에 체포된 뒤 사진촬영을 한 이석희씨. (연합)


그가 돌아온다. 4년7개월 동안 먼 이국의 하늘 아래 조국을 그리워한 그가 마침내 3월19일 고국 땅을 밟는다. 그러나 그를 맞이하는 것은 따뜻한 조국의 품이 아닌 차가운 수갑뿐이다. 이석희(58) 전 국세청 차장에 대해 사전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검찰은 곧바로 영장을 집행할 것이다.

1998년 이후 1년이 넘게 정국을 요동치게 했고, 지난해 12월 대선의 숨은 지뢰로 여겨진 국세청 동원 대선자금 모금, 이른바 세풍의 주인공이 다시 무대에 등장했다. 그런데 언론의 태도는 미지근하다. 한 정치평론가는 “한국 정치의 5년은 조선왕조 500년만큼 상전벽해”라고 말한 것처럼 5년 동안 우리 상황이 너무나 변한 까닭이다. 특히 세풍 사건의 ‘최종 목표’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정치권을 은퇴했다. 여기까지 보면 이씨는 5년 귀향살이를 통해 여론 비난의 소나기를 잘도 피한 셈이다. 서울지검 수사 관계자도 지난 14일 “김이 다 빠진 사건”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런가. 몇년 도망 잘 다니면 성공하는 것인가.

98년 국민의 정부 출범과 함께 여러 바람이 불었다. 총풍, 북풍, 세풍. 정권을 연장하려는 한나라당의 음모와 치부가 드러나는 듯했고, 국민의 분노도 드높았다. 특히 세풍은 대통령 후보의 동생이 구속까지 됐다. 99년 9월 대검 중수부는 중간수사 발표를 통해 이 사건을 ‘서상목 전 한나라당 의원과 회성씨, 이 전 차장이 공모한 불법모금’으로 규정했다. 97년 제15대 대선을 앞두고 여당의 대선후보 동생이 주도하고, 국가기관인 국세청의 청장과 차장이 직접 재벌들을 윽박질러 현대 30억원, 대우 20억원, 삼성과 SK 각 10억원 등 총 24개 기업으로부터 167억원을 모금했다는 것이다.

“이씨의 개인비리에 맞춰질 것”


사진/ 미국 미시간주 법정에서 이씨의 변호인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당시 검찰은 배후에 이 전 총재가 있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검찰은 △이 전 차장이 모금과정에서 고교 선배인 이 총재와의 친분관계를 과시했고 △ㄷ그룹 이아무개 회장이 “이 차장한테 돈을 주고 이 총재한테 감사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했으며 △불법모금된 100만원권 수표가 이 총재와 부인의 항공료 지급에 사용된 점 등을 이 전 총재 개입 정황으로 열거했다.

다시 한번 대권의 꿈을 꾸던 이 전 총재에게 검찰의 칼날이 정면으로 조준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에 한나라당은 “사전 공모는 터무니없는 얘기로 서 전 의원의 고교 동기인 이 전 차장이 자발적으로 도와준 것”이라고 말하며 버텼다. 검찰은 수사의지를 불태웠지만 사건의 핵심인물인 이 전 차장이 교환교수 비자(J1)로 미국으로 건너간 뒤 귀국을 거부해 수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의 버티기, 서상목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이 전 총재의 대국민 사과, 서 의원의 의원직 사퇴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사건은 조금씩 김이 빠져갔다. 세풍 사건 등에 대한 검찰 수사는 오히려 한나라당의 위기감을 증폭시켜 이 전 총재 중심으로 결속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했다. 그는 98년 8월 총재 경선에서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며 당권을 다시 손에 넣었다. 97년 대선 패배 이후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여기서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역사는 제 갈 길을 멈추지 않는 법. 지난해 2월 미국 미시건주에서 이 전 차장은 미국 사법당국에 체포됐다. 한-미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인도 재판이 시작됐고 귀국 거부로 버티던 1년이 지나 대선이 끝나고 이 전 차장은 “새 정부 아래서 공정하게 재판받고 싶다”며 고국행 비행기를 탔다. 검찰 주변에서는 “사건의 정치적 목적이 사라져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기보다는 이씨의 개인비리에 맞춰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진실을 밝혀 역사의 본보기로 기록해야 한다는 요구도 크다는 점을 검찰은 알아야 한다.

안창현 기자/ 한겨레 민권사회1부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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