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03월12일 제450호 

“잘못한 선배 당연히 찍어내야”

일부 검사들 ‘서열문화의 균열’ 알리는 상징적 발언… 검사 항변권 등 개혁안도 마련된 상태

“시작이 반이고 첫 단추를 잘 꿰야 마지막 단추를 잘 꿰지 않겠는가. 첫 단추부터 우리 평검사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해달라. 우리는 인적청산 좋아한다. 정치권에 빌붙어서 잘못한 선배 당연히 찍어내야 한다. 하지만 찍어내는 방법을 적법하고 투명하게 해달라는 것이다.”(윤장석 부산지검 검사)

“지금 인사를 하지 말라는 것은 이대로 가자는 것인데 그 점은 용납 못하겠다. 새로운 정부의 지도부는 새로워야 한다. 대통령이 인사권자다. 새롭게 바꾸고 싶다. 용납해달라. 제도는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바꾸겠다.”(노무현 대통령)

자리배치에 반발, 한때 하차 거부


사진/ 전국 검찰청 평검사 회의. 이들이 채택한 건의문에서도 ‘서열파괴’를 문제삼은 문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박승화 기자)


일요일인 3월9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19층 회의실에 온 국민의 이목이 쏠렸다. 헌정사상 처음이라는 대통령과 평검사들 간 공개토론회가 열린 이곳의 뜨거운 열기는 방송 전파를 타고 생생하게 안방에 전달됐다.

6일 서초동 대검찰청과 서울지검 검사들이 정부의 검찰 고위간부 인사안에 집단 반발하면서 시작된 ‘검찰인사파동’이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이었다.

이날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토론회는 ‘노무현 대통령-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는 초반부터 날선 문답이 넘나들며 검투사들의 불꽃튀는 경기를 연상케 했다. 본게임에 들어가기 전 행사를 준비한 정부 당국과 전국에서 뽑혀온 평검사 대표 40명 사이에 한바탕 기싸움이 벌어졌다.

주최쪽이 맨 앞에 노 대통령의 자리를 마련하고, 검사들은 양 옆 두줄로 앉도록 좌석배치를 했다는 소식을 접한 평검사들이 “우리가 무슨 대통령 설명회 들으러 왔느냐”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토론회 시작 한 시간 전 승합차 편으로 정부청사에 도착한 이들은 “토론회 이름에 걸맞게 자리배치를 원탁형으로 바꿔달라”며 한동안 하차를 거부했다.

토론회는 말 그대로 ‘격의 없이’, 그리고 숨가쁘게 진행됐다. 젊은 검사들은 노 대통령의 과거 검찰수사 관련민원, 형 건평씨의 인사민원 구설수 등을 거론하며 대통령의 ‘검찰 장악 의혹’을 ‘추궁’했다.

노 대통령도 물러서지 않았다. 검사들이 다소 거칠게 시비를 걸어오자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것이죠”라며 즉각 응전했고, “다른 대통령들이 해오던 인사방식을 왜 나보고는 하지 말라는 것이냐”라고 역정을 내기도 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검사들이 대통령을 상대로 ‘맞짱’을 뜨다니, 세상 많이 좋아졌다”, “양쪽 다 검찰개혁과 독립성 보장을 외치는데 왜 이렇게 시끄러운 일이 생긴 것인지 모르겠다” 등의 네티즌 글들이 올라왔다. 그러나 사이버공간의 민성은 검찰에 냉담하다 못해 분개하는 소리가 높았다.

노 대통령과 평검사들 모두 “검찰개혁과 이를 위한 인적쇄신이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 차이가 없었다. 다만 대통령이 “이번 검찰인사는 기존 관행대로 하고, 다음부터는 인사위원회 심의기구화 등 제도를 바꿔 하겠다”고 한 반면, 검사들은 “첫 인사부터 합리적 절차를 거쳐 투명하게 할 것”을 요구했다.

‘서열문화’와 ‘상명하복 원칙’


사진/ 이종찬 고검장의 퇴임식 때 모인 검찰 고위간부들. 젊은 간부들의 대거 중용은 이들에게 위기감을 심어주고 있다. (류우종 기자)


그렇다면 며칠 동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검찰파동’이 겨우 인사가 먼저냐, 인사제도 개선이 먼저냐를 둘러싼 정부와 검사들의 견해 차이 때문에 빚어진 것일까 그것은 표피적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이고 실상은 더 복잡하다. 이번 사태는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간부들에 대한 정부 인사안을 지난 6일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통해 전해들은 대검 참모진이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이 인사안은 △사법시험 14~16회 4명의 고검장 승진 △16~17회의 핵심요직 중용 △20회 전후 젊은 기수의 검사장 승진 등을 뼈대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서열 파괴’를 통해 13~15회 중심의 검찰 상층부를 큰 폭으로 물갈이한 뒤 16회 이하 아랫기수들을 검찰개혁의 조타수로 세우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현실화할 경우 상당수가 ‘인적쇄신’ 대상이 될 대검참모 등 고위간부들이 반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들은 즉각 행동에 나섰다. 그날로 김각영 검찰총장에게 ‘정부 인사안 수용 불가’ 의견을 담은 건의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문건은 즉시 강 장관에게 전달됐다. “검찰총장 등 검찰 내부의 의견을 배제한 채 짠 정부 인사안은 검찰의 중립과 독립성, 신분보장 원칙에 반한다”는 건의서의 논리는 일선 검사들의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즉각 대검 중간간부들과 서울지검의 부장검사·수석검사들이 잇달아 긴급모임을 열어 정부 인사안을 성토하고 나섰다. 다음날인 7일에는 서울지검을 비롯해 전국 20여개 지검과 지청의 평검사들이 회의를 열고, △밀실인사 중단 △검찰 중립성 보장을 위한 인사제도 혁신 등의 요구를 담은 의견서를 채택했다. ‘검찰파동’이 본격화한 것이다.

여기서 유의할 대목은 이번 사태가 검찰 고유의 ‘서열문화’ 파괴에 대한 검사들의 반발 정서에서 비롯한 것으로 바깥에 잘못 알려진 점이다. 물론 노 대통령이 서울지검 부장급과 동기인 강금실 장관을 내정하자 검찰 내부의 반응이 곱지 않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욱이 강 장관이 관행적으로 고검장급 인사가 맡아온 법무부 차관에 사시 17회의 ‘새파란’ 정상명 검사장을 내정하면서 검찰의 반발기류는 노골화됐다.

당시 대검의 한 검사장급 간부는 “검찰개혁도 좋지만 너무 심한 것 아니냐. ‘기수 파괴’로 늙은 검사들을 모두 퇴출하겠다는 것이냐”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적어도 부장급 이하 평검사들의 ‘서열 파괴’에 대한 정서는 불쾌감 내지 불안감 정도였을 뿐, 고위간부들처럼 격하지 않았다. 대검의 한 중간간부는 “시대가 변화하는데 검찰만 기존 관행에 안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검사들에게 급격한 혼란을 주지 않을 정도의 서열 파괴는 동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검사들이 정부 인사안에 반발하는 것은 기수 파괴 때문이 아니라, 장관 인사권을 무기로 검찰권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라고 강조했다.

전국 검찰청의 평검사들이 채택한 건의문들에서도 ‘서열 파괴’를 문제삼은 문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검사들이 ‘서열문화’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서열문화’라는 것은 검찰청법에 서술돼 있는 ‘상명하복 원칙’을 뼈대로 한 ‘검사동일체 원칙’을 핵심 근간으로 하기 때문이다.

판사들도 산에 오를 땐 기수대로

검사동일체 원칙은 검찰청법의 세 가지 규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상명하복 규정과 “검찰총장과 검사장 또는 지청장은 소속 검사의 직무를 자신이 직접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는 직무승계 권한 규정, “검찰총장과 검사장 또는 지청장은 소속 검사의 직무를 다른 검사에게 처리하게 할 수 있고 그 권한에 속하는 직무의 일부를 소속 검사로 하여금 처리하게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는 직무이전권 규정 등이 그것이다.

한 부장검사는 “이 원칙이 없으면 각자가 헌법기관인 검사들이 개별사건 처리의 기준을 달리 적용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법의 형평성 원칙이 깨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원에도 엄격한 상명하복과 서열문화가 있어, 판사들은 산행을 할 때도 기수 순대로 줄맞춰 올라간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단지 판사들은 자유재량에 의한 판결권 보장을 위해 상명하복 원칙이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적용되는 점이 검사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의 오랜 ‘서열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무엇보다 상명하복 원칙의 경직된 적용이 문제되면서 검찰 스스로 검사 항변권 보장 등의 개혁안을 마련한 상태다.

특히 대통령과의 토론회에서 평검사들이 일부 선배 검사들을 ‘정치검사’라고 지칭하고, “이들을 찍어내야 한다”고까지 말한 것은 ‘서열문화’의 균열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석 기자/ 한겨레 민권사회2부 hgrh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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