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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테러 ‘결사항전’ 핵 폐기장 후보지로 선정된 울진 주민들의 분노… “백색비상 공포증에 핵을 껴안고 살란 말인가”
삼척을 지나 울진으로 들어서자마자 심상찮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후보부지 발표가 난 지 일주일 남짓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거리 곳곳에 주민들의 성난 목소리가 붉은색 페인트로 적혀 나부끼고 있었다. 과민해진 탓일까 잿빛 원자력 발전소 ‘돔’을 지나면서부터 도로 양편으로 길게 늘어선 전신주와 송전탑이 유난히 눈을 어지럽혔다. 경북 울진군 북면에 위치한 한국수력원자력(주)(이하 한수원) 산하 울진원자력본부에는 현재 4기의 발전기가 가동되고 있다. 1982년 3월 건설을 시작해 1988년 9월 완공된 1호기를 시작으로 1989년(2호기), 1998년(3호기), 1999년(4호기) 차례로 가동에 들어갔다. 현재 울진원전의 총발전량은 3900kW로 서울시 인구의 하루 전력소비량과 비슷한 규모다. 또 1998년 9월 건설을 시작한 1천kW급 원전 5호기와 6호기가 2004년과 2005년 각각 완공을 앞두고 있다. 여기에 지난 2001년 9월 원전 7·8·9·10호기 건설계획이 발표되고, 이를 위한 부지 지정고시까지 마친 상태다. 계획대로 실행된다면 울진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원자력 발전소가 되는 셈이다.
거대 원전 만들기… 끓어오르는 분노
군내 10개 읍·면 출신 군의원과 원전반대투쟁위원회 공동대표단 10여명이 항의의 뜻으로 삭발을 하는 사이 집회에 참가한 주민들에게 다가섰다. “울진군 전체를 아예 원자력 단지로 만들려는 모양이다.” 한동네 주민 90여명과 함께 나왔다는 주동봉(63·근남면 산포3리)씨는 “그동안 울진에는 핵 폐기장을 짓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해온 정부가 또다시 울진 군민을 배신했다. 북면에 원전 10호기까지 짓고, 우리 면에 폐기장까지 짓는다니…. 그럼 주민들은 아예 이 땅을 떠나라는 말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곁에 있던 이아무개(50·근남면 산포1리)씨도 “지난 91년, 94년 핵 폐기장 건설 반대 집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보상금도 다 필요 없다. 정부가 후보지 계획을 철회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격앙돼 있는 것은 정부에 대한 ‘배신감’ 탓이 컸다. 정부는 이미 세 차례나 울진에 폐기물 처분장을 짓지 않겠다고 문서로 약속한 바 있기 때문이다. 애초 정부는 지난 1994년 6월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 명의로 ‘방사성 폐기물 관리사업 추진방침 통보’라는 공문에서 “울진지역 일부 주민에 의해 (폐기장) 유치신청이 있었으나, 제 여건을 감안해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을 설치하지 않을 것임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세 차례의 약속 위반, 이것은 집단 따돌림
또 지난 1999년 4월에는 산업자원부 장관 명의로 ‘신규 원전부지 지정·고시 관련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내 “현재 건설 또는 운영 중인 원전 6기에 더해 4기의 추가 원전 건설이 가능하게 될 경우, 정부는 울진군 관내에서 더 이상의 원전 건설과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부지 확보를 추진하지 않을 방침임을 알려드린다”고 확인했다. 2000년 6월에도 ‘원전종식 보장에 관한 건’이라는 공문을 다시 보내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 부지 유치공모에 대한 안내서를 10개 광역자치단체와 46개 임해 기초자치단체에 발송했으나, 울진군은 그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황성섭 울진원전반대범군민투쟁위원회 상임대표는 “발전소 주변에 핵 폐기장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은 울진 군민에 대한 집단 따돌림이다. 스스로 한 약속을 맘 내키는 대로 어겨버리고 무력화하는 정부에 더 이상 어떤 말과 행동이 필요한가. 배운 것 없고 가난한 사람들 사는 지역이라고, 핵 폐기장 건설이 쉽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정부는 이미 지난 1991년과 1994년 두 차례에 걸쳐 울진군에 폐기물 처분장 건설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지난 1991년 7월에는 울진지역 80여개 단체가 모여 반대투쟁위원회를 구성해 이듬해 5월 말까지 반대운동을 벌였다. 크고 작은 집회가 이어지면서 도로점거와 관공서 습격사태까지 발생해 주민 10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결국 원전 3·4호기 건설은 계획대로 진행됐지만, 핵 폐기장 건설 계획은 백지화하고 말았다. 그러나 1994년 3월 울진군 기성면에서 20여명의 주민이 폐기물 처분장 유치 신청서를 접수하면서 사태가 재발했다. 주민청원 형태를 빌려 정부에서 또다시 폐기물 처분장 건설 움직임을 보이자 군내 145개 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범군민대책위원회가 꾸려져 약 2개월 동안 격렬한 저항에 나섰다. 특히 같은 해 5월 말에는 울진·후포·근남·죽변 등 군내 읍 소재지 상가가 전면 자진 철시에 들어가고, 초·중·고생들도 집단 등교거부에 나서면서 상황이 심각해졌다. 당시 대책위원으로 활동한 주광돈(38·근남면 노음리)씨는 “당시 주민 시위가 워낙 격렬해 야간 통행금지령까지 내려졌을 정도”라고 말했다. 결국 주민 17명이 구속되는 사태를 겪고서야, 정부는 폐기물 처분장 건설 계획 포기를 공식 선언했다.
지역경제 완전 마비, 불보듯 뻔해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이로 인한 직·간접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도 늘고 있다. 울진군 죽변읍 ㅈ식당에서 만난 40대 농민은 “서울 사람들은 울진 내려오면 회도 잘 안 먹으려 든다. 그런데 핵 폐기장까지 들어서면, 앞으로 울진 농산물은 아무도 먹으려 들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그는 “이미 울진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다른 지역 농협 이름으로 팔고 있는 실정이다. 매년 벌이는 원전 주변 역학조사에서도 버섯류와 어패류 등에서 인공핵종이 검출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수원과 정부의 계속되는 ‘안전보장’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곧추세웠다. “원캉 숭크니 알게 뭣니껴.” 원전 가동이 중단될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는 북면 주민 김아무개(42)씨는 “원전에서 사고가 났다는 사실도 방송에나 나와야 알지, 언제 무슨 일이 있는지 주민에게 통보도 안 해준다”고 말했다. 새우떼나 멸치떼가 몰려 냉각수 유입이 어려워지자 가동을 멈춘 ‘사소한’ 경우도 많지만, 지난해 11월에는 냉각수 내 방사능 오염으로 국내 최초로 백색비상이 발령되기도 했다. 김씨는 “한전에서는 필터로 정화시켜 안전하다고 했지만, 그 공기가 어디로 갔겠느냐”고 혀를 찼다.
얼마나 싸워야 후보지란 말이 사라질까
2월13일 낮 12시께. 폐기물 처분장 후보부지로 결정된 울진군 근남면 산포2리 마을 공터에 주민 60여명이 찬바람을 맞으며 모여들었다. 300여 가구 900여명이 살고 있는 산포리는 전형적인 반농·반어촌이다. 바닷가의 빼어난 경관과 관동 8경 가운데 하나인 망양정이 지척에 있어 여름이면 제법 피서객이 모여든다. “계미년 2월4일 고향 근남면 산포리가 핵 폐기장이란 무섭고도 위험천만한 물건에 의해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천지신명들은 부디 지역주민들의 반대의 뜻이 관철될 수 있도록 굽어 살펴주십시오.” 산포리 출신 김흥탁 군의원이 후보부지 선정에 항의해 삭발을 하는 자리에 모여든 주민들은 대부분 60대가 넘어보였다. 고사상을 차려놓고 축문을 읽어 내려가자 연신 머리를 조아리던 한 주민은 “주민들이 머리 터지게 싸우면 포기하고, 잊을 만하면 다시 핵 폐기장 짓겠다고 나서기를 언제까지 반복할 건가” 하고 탄식했다. 울진=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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