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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이슈추적 등록 2003.01.23(목) 제444호

[이슈추적] 오매불망 ‘힘센 경찰’

독자적 수사권 확보 절호의 기회 맞아… 검찰의 견제에 자치경찰제 등 산 넘어 산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다음날인 지난해 12월20일 오전 8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9층 청장실에서는 이팔호 청장이 주재하는 조회가 열렸다. “노무현 당선자의 공약 가운데는 경찰수사권 독립에 대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이 청장의 말이었다. “네, 공약에는 경찰에게 민생과 관련된 절도·폭력·교통사고 등 기초적인 분야에 대한 수사권을 부여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서재관 경무국장의 답변이었다.

경찰의 오랜 염원, 드디어 때가 왔는가

“제가 기억하기로는 지난해 6월 노 당선자가 서울경찰청 기동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나는 분권주의자다. 여러분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참석자의 말이 이어졌다. “대통령 당선자가 공약한 사항인 만큼, 우리 경찰들에게는 40년의 숙원인 수사권 독립이 가능한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솔하게 행동하면 오히려 기회를 놓칩니다. 우리 모두 차분한 마음으로 우리의 요구사항과 수사권 독립에 대한 논거들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이 청장의 맺음말이었다.

이와 함께 경찰청 2층에 있는 ‘발전전략팀’ 사무실의 분위기도 뒤바뀌었다. 경찰수사권 독립 방안을 위해 2001년 설치됐지만,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농담까지 나오던 곳이었다. 그러다 일순간에 ‘독립운동’을 위한 전진기지가 되었다.

경찰의 한 고위간부는 “솔직히 대법관까지 역임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당선됐으면 경찰수사권 독립은 영원히 물건너가는 분위기였다. 수사권 독립에 대한 의지가 높은 경찰들 사이에서는 노 당선자에 대한 유형, 무형의 지지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당선된 뒤 경찰은 속칭 ‘업’된 분위기다. 경찰의 이런 분위기는 1월15일에 있었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대한 업무보고에서도 뚜렷이 드러났다. 이날 업무보고 내용은 검찰에 대한 경찰의 사실상 ‘독립선언’이었다. 경찰청은 이날 보고에서 경찰은 모든 범죄에 대한 수사의 주체임을 명문화하고, 검찰과 경찰은 상호협력하는 관계라고 선언했다. 이 대로라면 경찰은 모든 사건에 대해 검사의 포괄적 지휘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사를 개시하고 진행할 수 있게 된다. 현행 법에 따르면 경찰은 모든 범죄에 대해 검사에게 보고하고 수사지휘를 받도록 되어 있다. 다만, 검찰이 반발할 것에 대비해 수사종결권과 구속영장청구권은 검찰이 계속 유지하도록 했다.

애초 경찰이 마련한 안은 당선자 공약에 나온 대로 민생과 관련된 기초적인 분야에 국한해서 수사권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수위와의 직간접적인 교감을 통해 좀더 큰 것을 요구해도 될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뒤 내용이 달라졌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인수위 보고를 일주일쯤 앞두고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자치경찰제와 연계한 방안을 마련해보라’는 지시가 있었다. 이를 보고 경찰 수뇌부에서는 요구안을 강화해도 되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현실화된다면…

경찰의 요구대로 경찰의 수사권이 독립되면 국민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은 변호사의 행동방식이 될 것이라고 경찰들은 말한다. 그 전에는 변호사가 형사사건을 수임하면 가장 먼저 담당 검사와 연락을 취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경찰서를 직접 찾아와 의뢰인과 담당 형사를 만나야 한다. 용산경찰서 황운하 형사과장(전 경찰대 동문회장)은 “이럴 경우 우리 국민은 변호사의 직접적인 조력을 경찰서에서부터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된다”고 말한다.

또한 경찰은 검-경이 서로 독자적인 수사권을 가지면 서로를 견제하면서 인권을 무시한 무리한 수사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경찰이 독자적인 수사권이 있어서 검찰의 인권침해에 대해 직접수사를 할 수 있다면, 검찰의 전횡 제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일어난 고문치사 사건은 검찰 수사과정에서의 잘못된 관행을 제어할 장치가 없어 일어난 일이라고 경찰은 주장한다. 황 과장은 “검찰의 무소불위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에서 오는 특성이다. 검찰의 가혹행위를 경찰이 수사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무리한 수사는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검찰은 “15만 경찰이 막대한 권력까지 쥐면 파쇼경찰화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검사가 경찰수사를 지휘하고 구속영장을 검토하는 것 자체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주장한다. 검찰 관계자는 “검사의 영장신청 기각률이 1997년 14.1%에서 98년 18.0%, 2000년에는 18.4%로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는 경찰의 무리한 수사의 진상이 검찰에 의해 제대로 밝혀졌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경찰이 내세우는 두 번째 논리는 ‘수사의 효율성’이다. 현실적으로 형사범죄의 대부분(약 97%)을 처리하면서 검사의 형식적인 사건지휘를 기다리며 불필요한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이다. 경찰에서 수사를 받은 피의자나 참고인이 검찰에서 또다시 수사를 받으면서 생기는 불편함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검찰은 ‘경찰편의주의’라고 본다. 오히려 검찰의 재수사나 지휘과정에서 사건의 진상이 정확히 밝혀지거나, 당사자 간 합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검찰이 재수사를 하는 경우는 피해자나 피의자가 경찰의 불성실하고 편파적인 수사에 항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남은 것은 자기통제와 검찰과의 조화

사실 경찰수사권 독립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9년에도 황 과장이 성동서 형사과장으로 재임 중 동부지청에 파견된 경찰들을 불러들인 것을 정점으로 해서 검-경 갈등이 고조된 적이 있었다. 이때 김대중 대통령이 검-경 양쪽에 ‘브레이크’를 건 것은 국민을 외면한 두 기관 간 힘겨루기 양상 때문이었다. 또 하나는 정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검찰의 지원이 필요한 김대중 정부가 검찰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전력을 봤을 때, 이번에도 경찰의 손에 수사권이 그냥 주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가장 먼저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자치경찰제’다. 노 당선자는 1월17일 “자치경찰제를 전제로 논의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경찰의 거대한 구조와 권한을 그대로 놓아둔 채 수사권을 주는 것은 위험스러운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자치경찰제 도입이 경찰력의 권한 분산과 맞춰 이뤄져야 함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치경찰제는 제도적으로 가장 중요한 ‘밥그릇’인 인사와 재정이 자치단체에 넘겨지는 것을 뜻한다. 이럴 경우 중앙경찰은 대공·정보·외사 등 국가적인 사건만을 맡게 돼 현 경찰시스템의 대수술이 불가피해진다. 때문에 자치경찰제에 대한 경찰들의 거부감은 매우 크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자치경찰제를 받느니 차라리 수사권을 포기하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경찰수사권 문제의 두 번째 변수는 검찰개혁이다. 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경찰의 수사권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검찰개혁의 속도와 정도에 따라 경찰에게 주어질 수사권의 범위가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인수위(청와대)와 검·경,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로 이어지는 권력의 줄다리기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주목된다.

이태희 기자/ 한겨레 민권사회2부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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