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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이슈추적 | 등록 2003.01.09(목) 제44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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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북핵위기, 장기전 가나 한국을 포함한 중재국들, 북-미 체면 다 살리면서 양보를 유도할 묘수를 찾고 있으나…
북핵 위기는 과연 ‘중재’로 풀릴 수 있을까. 미국이 끝내 북한과 대화를 거부함으로써 이제 공은 중재에 나선 제3국들에 넘어갔다. 미 의회에 딸린 싱크탱크인 평화연구소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지금은 제3자의 중재가 워싱턴과 평양의 체면을 크게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교착상태를 푸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부시가 불가침조약에 거부감 갖는 이유
핵문제에 관한 한 부시 행정부의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 북한이 스스로 시인한 농축우라늄 핵개발 프로그램을 ‘가시적’이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먼저 폐기하기 전까지 대화나 협상은 없다는 점이다. 미국이 앞으로도 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설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전의 클린턴 정권이 북한의 유사한 위협과 공갈에 넘어가는 바람에 나쁜 버릇만 키웠다고 따져온 것이 부시 정권의 집권세력이다. 북한은 끈질기게 법적 효력이 있는 불가침조약 체결만이 핵위기 해소의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공화당 정권은 북한과 마주 앉는 행위가 북한에 보상을 베푸는 바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대꾸조차 하지 않겠다고 등을 돌리고 있는 미 행정부가 그것도 의회의 비준까지 받아야 하는 불가침조약에 서명할 리는 만무하다. 더구나 의회 인사 대부분이 북한에 극도의 불신감을 품고 있는 터다. 따라서 북한이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가시적 조처를 내놓지 않는 한 의회의 비준을 받기는 어렵다. 클린턴 정권 때도 미국은 수차례 북한에 핵위협이나 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문건으로 약속했다. 1993년 6월 북-미 공동성명, 94년 10월 북-미 기본합의문, 2000년 10월의 북-미 공동코뮤니케가 그것들이다. 하지만 의회의 비준을 거친 문서는 하나도 없다. 클린턴 정권 차원에서만 불가침을 약속한 셈이다. 당시 야당인 공화당계 의원들은 클린턴 정권의 대표적 실책으로 대북정책을 맹공했다. 이는 북한이 체제안전보장을 문건으로 약속받고서도 내내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평양에서 나온 <조선말대사전>은 불가침조약을 “국가가 상호간에 독립을 존중하여 무력으로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을 약정하는 조약”으로 풀이했다. 적대관계에 있는 쌍방이 서로 상대방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뜻을 국제법적으로 보장한다는 것이다. 적대관계를 ‘온전히’ 청산하는 조처는 평화조약 혹은 평화협정이다. 불가침조약은 평화협정으로 가는 수월한 중간다리 구실을 할 수 있다. 불가침조약은 대개 군사력이 엇비슷한 쌍방이 상대방의 선제공격 불안감을 털어버리기 위해 맺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미 사이의 군사력을 대등하다고 볼 수는 없는 만큼 불가침조약의 효력은 일방적으로 발생된다고 본다. 즉, 미국만이 침략의도를 포기하면 되는 셈이다. 이 대목은 부시 행정부가 조약에 극도의 거부감을 갖는 이유 중 하나다. 불가침조약에 서명하면 미국은 침략국임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된다. 미 행정부는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몇 차례나 북한을 침공할 뜻이 없음을 밝힌 것으로 족하다고 본다.
한국 중재안으로 설득할 수 있을까
북한과 미국의 견해차는 참으로 깊고 넓다. 설령 북한이 당장이라도 우라늄 핵 프로그램을 버리겠다고 선언해도 미국이 불가침조약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미국 행정부 내에서는 비밀 핵개발 추진으로 기본합의를 먼저 어긴 북한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는 이유만으로 불가침조약을 선물하기에는 너무 큰 당근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부시 정권에 불가침조약이라는 북한의 제의는 그야말로 어불성설로 비친다. 또 부시 공화당 정권은 북한 위협론을 내세워 국가적 사업으로 미사일방어망 체제구축에 박차를 가해왔다. 이런 와중에 조약을 맺어 북한을 정상국가 반열에 올려놓는다면 그간 흘린 피와 땀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당선자쪽에서 내놓은 중재안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북핵 사태 해결을 위해 북한이 핵계획 폐기를 먼저 천명할 경우 미국이 대통령 서한 등 문서를 통해 북한의 체제와 안전을 보장하는 중재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언뜻 봐도 북한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동시조처도 아니고, 북한이 먼저 핵폐기를 선언해야 한다. 그 대가로 법적 구속력이 있는 불가침조약이 아닌 공동성명이나 대통령 친서로 만족해야 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미국도 탐탁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중재안을 받아들이면 클린턴 정권 때 방식을 답습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시 클린턴 정권의 양보를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수치로 여겨온 공화당 인사들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한국의 중재안으로 미국을 설득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나 같아 보인다. 안타까운 점은 그래도 지금 북핵 위기를 헤쳐나갈 길이 제3자의 중재 외에는 없다는 현실이다. 북한은 공식 매체나 해외주재 대사들을 통해 제3국의 중재를 호소해왔고, 미국도 아직까지는 별다른 거부감을 비치지 않고 있다. 다행히 국제원자력기구에서도 북핵 문제를 바로 안전보장이사회로 넘기지 않고, 한달간의 유예기간을 둔다는 다소 누그러진 입장을 밝혔다. 중재에 적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은 위기해결 서두르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중재를 맡기는 속셈은 각기 크게 달라 보인다. 미국은 한국·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국을 총동원해 북한의 이른 핵포기 선언을 압박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이들 나라더러 미국이 국제적 합의를 존중하고 전제조건 없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도록 긍정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등을 떠민다. 서로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중재자들을 꼬이고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북핵 위기가 장기전으로 접어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핵개발 수위를 어디까지 높이느냐가 변수긴 하나, 사태가 이른 시일 안에 수습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지금은 양쪽의 체면을 다 살리면서 양보를 유도하는 묘수를 찾을 때”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부시 정부는 어쩐 일인지 여전히 북핵 문제 해결을 서두르는 느낌을 주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임성준 외교안보수석이 6일 워싱턴 방문을 앞두고 “미국 고위 당국자들과 만나 북핵 문제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비교하고 분석하면서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이번 방미는 구체적인 해법을 찾기보다는 ‘방법론의 큰 틀’을 조율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 데서도 핵위기의 장기화 조짐을 읽을 수 있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