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01월15일 제443호 

꼬인 핵타래, 매듭 풀리나

북한의 핵무기 개발계획 폐기 검증의 조건… 안보상 불리 감수하며 증명할 수 있을 건가


사진/ 지난 1월 13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방한 중인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의 예방을 받고 북핵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주간사진공동취재단)


심각성을 더해가는 북한 핵위기 속에서 1월8일 한·미·일 3국은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 뒤 공동성명을 내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북한과 국제사회와의 관계는 즉각적이고 검증 가능한 방법을 통한 북한의 핵무기 개발계획 폐기 여부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 회의에서 대북 대화 의지를 밝힌 미국은 북한의 비핵 의무 이행에 대한 보상이나 대가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했다. 그러면서도 1월8일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의 발언을 통해 북한에 대한 공식적 불가침 보장을 시사했다. 즉, 미국은 북한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고농축 우라늄을 포함한 핵무기 개발계획을 폐기하면 북한에 대한 불가침 보장을 공식적으로 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국제적으로 이런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북한이 1월10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엄함으로써 북한 핵위기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북한이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시 압살정책을 그만두고 핵위협을 걷어치우면 우리는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조·미 사이에 별도의 검증을 통해 증명해보일 수 있을 것이다”는 나름의 해결책을 조약 탈퇴 선언문에서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핵개발 계획 폐기 검증문제와 북한에 대한 공식적 불가침 보장문제를 놓고 현재 미국과 북한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으로 서로의 주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북·미 간 대치상황이 계속될 경우, 조만간 북한이 영변의 5MWe 흑연로와 재처리 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을 재가동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럴 경우 한반도 핵위기는 걷잡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 것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북한 핵개발 계획의 검증 가능한 폐기와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검증으로 증명해보일 수 있다는 북한의 주장이 내포하는 뜻은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북한의 핵개발 능력, 즉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 의한 플루토늄 추출과 우라늄 농축에 의한 핵무기용 고농축 우라늄 확보능력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지난달 북한은 30kg 정도의 플루토늄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8천여개의 사용후 핵연료 동결을 해제함으로써 이들 사용후 핵연료를 언제든지 재처리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북한이 밝히지는 않았지만 지난 86년 가동을 시작한 영변의 5MWe 흑연로는 89년 3개월간 운전 정지해 사용후 핵연료를 전부 또는 상당량 방출했다고 한다. 이때 방출된 사용후 핵연료 속엔 10kg 이하의 플루토늄이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재가동을 준비하고 있는 5MWe 흑연로는 연간 약 8kg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합의로 건설 중단된 영변의 50MWe와 태천의 200MWe 흑연로는 건설을 재개하면 각각 1년, 2년 정도 뒤 완공될 것이다. 이들 원자로는 각각 80kg, 320kg 정도의 풀루토늄을 해마다 생산할 수 있다.

현재 북한 방사화학실험실의 사용후 핵연료 처리용량은 연간 25t으로, 연간 사용후 핵연료 4천여개를 재처리해 플루토늄 15kg 정도를 추출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제네바 합의로 중단된 공사가 마무리되면 방사화학실험실의 최대 처리용량은 연간 약 70t으로 추정되므로, 플루토늄 추출량은 연간 40kg 정도가 될 것이다. 유럽 상업용 재처리 공장의 경우, 재처리에 사용후 연료 1t당 약 12억원(1달러 1200원 가정)이 든다. 북한의 재처리시설은 상업용보다 10배 이상의 비용이 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러므로 사용후 핵연료로부터 핵무기 1기분인 5kg 정도의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데 1천억원 이상 들 것이다.

우랴늄 농축시설 탐지하기 힘들어


사진/ 북한 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라! 1월 8일 한·미·일 3국은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회의를 갖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연합)


추출된 플루토늄을 핵무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내폭형 기폭장치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내폭형 기폭장치는 선진 공학기술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미국의 한 저명한 핵무기 전문가는 “핵무기의 폭발효율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뛰어난 선진기술이 아니더라도 북한 정도의 수준이면 플루토늄 핵무기용 내폭형 기폭장치 제조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 폭발효율이 낮더라도 그런 핵무기가 현대 도시에서 터지면 파괴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 핵폭발 피해와 비교할 수 없이 심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북한은 비밀리에 지난 수년간 내폭형 기폭장치 제조를 위한 고폭실험을 수십번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우라늄 농축의 경우, 농축 설비인 원심분리기 부품들은 수출통제 품목이어서 북한이 외국에서 공개적으로 수입하기는 불가능하고 자체 제작은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그동안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대 말부터 파키스탄으로부터 비밀리에 원심분리기를 도입해 우라늄 농축을 시도해왔다. 사전 핵실험 없이 비교적 간단한 기폭장치로 실전 사용이 가능한 핵무기 1기분인 50kg의 핵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원심분리기 1700여기를 1년간 가동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원심분리기 시설은 200~300평 규모의 작은 공간에 분할 설치가 가능하고 농축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능이 거의 없으므로 탐사위성과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로도 탐지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우라늄 농축기술의 상용화로 유럽 상업용 우라늄 농축의 경우, 원심분리기 1700기 시설의 비용은 약 50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의 경우 10배 이상의 비용이 들 것으로 가정하면 핵무기 1기분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 데 500억원 이상 들 것이다. 이 값은 핵무기 1기분 플루토늄 생산비용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북한의 경우 1~2년 안에는 주로 플루토늄에 의한 핵무기 확보력을, 그 이후에는 고농축 우라늄에 의한 핵무기 확보력을 추가로 지니게 된다고 볼 수 있다.

플루토늄에 의한 북한의 핵무기 개발계획 폐기 검증은 △북한이 제네바 합의 이전에 신고한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원자로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재처리 시설 △재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고준위 방사능 폐액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미신고 시설 등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 특별사찰로서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고농축 우라늄에 의한 북한의 핵무기 개발계획 폐기 검증은 원심분리기 농축시설의 특성상 북한의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을 탐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북한 전역에 걸쳐 의심가는 지역에 대해 반경 수km 범위로 농축과정에서 나오는 미량의 우라늄 분진을 탐지하는 등의 방법을 이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군사시설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인데, 북한이 군사시설이라는 안보상의 이유로 탐비와 사찰을 또다시 거부하면 검증은 불가능하게 된다.

국제적 검증 방침에 미국이 답해야

결국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개발계획을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폐기하라는 의미는 북한으로 하여금 군사시설에 상관없이 미국 또는 국제원자력기구에 북한 안의 모든 의혹 시설을 공개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안보상의 보장 없이 이런 미국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을 그만둔다면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검증으로 증명해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북한이 국가안보를 담보로 핵포기를 진지하게 고려해 핵 개발계획 폐기 검증과정에서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의향으로 이런 주장을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긴장완화를 위해 미국은 이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강정민/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핵공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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