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01월15일 제443호 

“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었다”

두산중공업 노동자 분신사망 사건 파문 확산… 노동계, 총수의 전근대적 노사관을 사인으로 지목


사진/ 1월 12일 두산타워 앞에서 민주 노동당 당원과 두산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3차 추모대회가 열렸다. 오른쪽은 노조에 대한 초강경 대응을 주문한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좌: 박승화 기자, 우: 한겨레 윤윤식 기자)


1월9일 발생한 창원 두산중공업(회장 박용성·옛 한국중공업) 노동자 배달호(50)씨 분신사망 사태는 징계·해고와 가압류·손해배상청구 등 가혹한 노조탄압에서 비롯한 만큼 그 자체로도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노사 간 힘의 균형을 중시하는 새 정부 출범 시기에 터졌다는 점에서 더욱 비상한 관심을 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관계자는 “두산중공업 사태는 새 정부의 노사관계를 가늠하는 중심축의 하나일 수 있다. 이번 사태가 신종 노동탄압으로 불리는 가압류·손해배상청구 문제(<한겨레21> 2002년 6월 제414호 ‘이에는 이, 파업엔 가압류!’ 참조)와 함께 재계의 상징적 인물인 박 회장의 전근대적 노사관에서 비롯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압류·손해배상 청구로 숨통 조여

배씨를 자살까지 내몬 가압류·손배청구부터 보자. 배씨는 유서에서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가압류·급여가압류…. 이제 이틀 후면 급여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돌아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 두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들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2월 파업 직후 노동조합을 상대로 50억원의 손배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조합비는 물론 개별 조합원들의 임금과 재산까지 가압류했다. 회사쪽은 조합원들한테 아예 “파업에 참가하면 5천만원 손배 떨어진다. 파업하려면 해봐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특히, 그동안 파업이 타결되면 가압류·손배청구를 취하하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두산중공업은 이를 끝까지 고집했다. 배씨는 현장에 복귀했지만 월급 50%와 퇴직금·부동산(본인의 집)이 가압류되자 극심한 경제적·정신적 압박에 시달려왔다. 인수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노동부에 사태가 발생한 원인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청했다. 이번에 드러난 파업과정에서의 해고·징계뿐 아니라 가압류·손배청구라는 민사상 대응의 문제점에 대한 대책도 요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두산중공업이라는 재벌 사업장에서 터진데다 박 회장이 재계를 대표하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고 있어 재계에도 파장이 번지고 있다. 민주노총 등으로 구성된 분신사망대책위원회는 즉각 “두산중공업의 강압적 노무관리 행태에 대한 특별감사와 두산그룹 박 회장의 사퇴, 재산과 봉급에 대한 가압류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노동계는 두산중공업을 힘의 논리를 동원해 노조를 무력화하고 백화점식 노조탄압을 가해온 대표적 사업장으로 지목하고 있다. 지난해 회사쪽이 취한 대기업 사상 최초의 단체협약 일방해지에다 대규모 가압류가 보여주듯 노조 와해를 노린 박 회장의 초강경 대응이 급기야 이번 사태를 낳았다는 것이다.

특히 박 회장은 지난해 말 <매일경제>가 내보낸 ‘한국은 노조공화국인가’라는 노조비판 시리즈 기사를 대한상의가 협찬 형식으로 자금 지원한 것으로 드러나 노동계로부터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었다. 박 회장은 배씨 등을 징계한 지난해 초 파업 당시 <한겨레21>에 “모든 파업 참가자들에게 징계를 내렸다. 파업하려면 연차·월차 휴가를 내고 해라. 그러면 누가 뭐라고 하나”고 거침없이 말했다. 이처럼 재계 이익을 대변하는 소신발언을 쏟아낸 덕에 오는 3월로 예정된 그의 대한상의 회장 연임은 기정사실화돼왔다. 대한상의쪽은 “박 회장 스스로 연임할 뜻이 있었다. 이번 사태와 상관없이 연임 생각은 변함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회장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그의 입지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회장의 전근대적 소신… 새 정부 노사관 가늠

이번 사태가, 논란을 빚고 있는 전력·철도·가스 등 공기업 민영화 방침의 수정까지 이어질 공산도 크다. 민영화의 폐해가 분신사태를 초래했다는 지적 때문이다. 두산중공업노조는 두산이 2000년 말 알짜배기 공기업인 한국중공업을 특혜의혹 속에 헐값 인수한 뒤 돈벌이만을 염두에 두고 노동자들을 탄압해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두산중공업은 민영화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1천여명을 정리하고 소사장제 도입을 강요하면서 노조와 극한대립을 빚어왔다. 물론 그 바탕에는 민영화 이후 “돈 못 버는 회사는 존재할 가치가 없고, 따라서 노조도 달라져야 한다”는 박 회장의 ‘소신’이 깔려 있었다. 새해 벽두에 터진 한 노동자의 죽음이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여러 각도에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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