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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입고도 반미 열풍인가” 반미시위를 바라보는 미국 정부 관계자들의 시각… 이미 사과는 끝냈고 재판권 이양 의사 없어
한국에 나와 있는 미 정부 관계자들은 최근의 여중생 사망사건과 반미시위를 어떻게 바라볼까. 역시 한국민의 일반 정서와는 거리가 아득히 멀어보인다. 아직은 사태의 심각성에도 둔감해보인다. 다들 전 세계 곳곳을 다니며 워낙 험한 꼴들을 많이 겪은 탓에 웬만한 반미시위는 이력이 난 때문일까. “시위가 평화적으로만 진행된다면야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다소 느긋한 자세다. 놀랍게도 일부 관계자는 전국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연일 벌어지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공무 중 발생사건… 미국 법 적용 당연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주재국 국민의 정서를 약간이라도 헤아리는 국무부보다 안보를 먹고사는 국방부의 목소리가 더 먹힌다. 한반도에는 3만7천명에 이르는 주한미군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들에 딸린 가족·친지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불어난다. 따라서 주한미군과 관련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문제는 국무부의 목소리가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 더구나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군부의 위상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미 사상 최대의 내년 국방예산을 확보한 부시 정권은 미군의 월급을 더욱 올려주기로 약속했다. 주거환경을 크게 개선하고 복지혜택도 듬뿍 안겨주겠다고 선언했다. 부시 정권에게 미군은 미국의 이해를 보호하고 확장하는 첨병이다. 더구나 지금 미군은 부시 정권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하는 성스러운 테러와의 전쟁을 한창 치르고 있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한국에서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 2명이 깔려 죽었다. 유감스러운 일이긴 하다. 그렇다고 미군 사기를 떨어뜨리는 어떤 조처를 취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부시 정부의 입장은 대략 이렇게 간추릴 수 있다. “미군은 한국에 오고 싶어 자발적으로 온 게 아니다. 그저 미 정부의 명령에 따라 이곳에 왔을 뿐이다. 만약 이들이 민간인 신분으로 한국에 와서 범죄를 저질렀다면 당연히 한국 법정에서 처벌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군인이다. 따라서 공무중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는 미국 법의 적용을 받아야 마땅하다. 미 정부가 법적으로 이들을 보호해줘야만 이들도 마음 편하게 근무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서울 주재 미 고위 외교관의 볼멘소리다. 재판권 이양은 미군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릴 수 있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라는 지적이다. 연일 격무에 시달린 탓인지 그의 얼굴에 초췌함이 가득 묻어난다. 비공식 인터뷰를 하는 동안 밖에서는 항의 방문단의 발길이 끊이지를 았았다. 전화 벨소리도 연신 울려댄다. “미국의 확고한 정책은 앞으로 유사사건이 다시 일어나도 재판권은 이양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일본·독일·필리핀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도 마찬가지다.” 한국만 사정을 따로 봐주기도 어려워 보인다. 한국과의 SOFA가 특별히 불평등하다고 지적할 만한 대목이 없다는 강변도 한다. “SOFA의 기본정신은 미군이 공무중 일으킨 사건에 대해서는 미군이 재판권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이는 전 세계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미군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된다. 한-미 SOFA는 다른 90개국의 그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미국의 대테러전 지원을 위해 키르기스스탄에 파견된 한국군도 현지 정부와 SOFA를 맺었는데, 공무중 사건은 한국군이 재판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인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
그렇다면 SOFA 개정은 어렵더라도 부시 대통령의 직접 사과는 들을 수 있을까. “더 이상의 사과는 없다. 지난번 사과가 정식사과였다. 기자회견을 통해 다 밝혔다.” 역시 단호한 어투다. 그만큼 했으면 됐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미 무죄평결을 내린 미군 재판을 무효화해야 한다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도 높다고 전했다. 그도 답답한 모양이다.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는 한국민의 분노를 그는 얼마나 헤아리고 있을까.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치사사건은 분명 미군쪽 잘못이다. 다 인정한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과 내가 사과했고, 유가족들에게는 보상까지 했다. 하지만 공무중에 사고를 낸 미군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미국 법체계 아래에서는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을 수 있다. 배심원들이 무죄평결을 내린 상황에서 다시 유죄를 선고하는 법은 없다.”
이제와서 6월의 사건에 대해 야단법석
이를 어쩌나. 서울 주재 미 고위 외교관이 내놓은 해법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반미시위 물결에 한참 못 미친다. 지금 한국의 반미감정은 과거와 달리 온 국민의 정서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것 같다며 심각성을 전하자 어물쩍 넘어간다. “최근 반미시위에 대해 나도 놀라고 있다. 왜 한국인이 ‘대선’보다 ‘반미’에 더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다. 미국의 젊은 군인들이 왜 한국에 왔겠느냐. 한국을 지키기 위해 온 거다. 그들도 나름으로 노력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사고가 일어났을 뿐이다.” 섭섭하단 말투다. 이번 사건을 다루는 한국 언론의 보도 자세도 못내 서운한 모양이다. “지난 6월13일 여중생 사망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다들 월드컵 경기에 몰두하느라 신경도 안 쓰더니 지금 와서….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사실보도에 노력해야 한다. 한국 언론들도 자기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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