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11월28일 제436호 

낡은 칼 휘두르는 선관위

노사모 폐쇄와 부재자 투표소 설치로 불공정 논란 일으켜…경직된 법해석은 정치권 눈치 보기


사진/ 중앙선과위는 사조직 폐쇄 명령 이후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시민단체의 긴급 토론회.(박승화 기자)


‘법대로’. 사조직 폐쇄와 부재자 투표소 설치를 둘러싼 최근 논란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위원장 유지담)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말이다. 사조직 폐쇄도 법대로 했고, 대학 내 부재자 투표소도 법대로 처리할 테니 문제없다는 것이다. ‘법대로’를 당할 장사는 없다. 논리적 항변도, 시민적 상식도 이 말 앞에선 무기력해진다. 장삼이사들의 다툼이나 갈등이 끝내 조정되지 않았을 때 나오는 얘기가 ‘법대로 하자’는 말 아니던가.

노사모 차별성은 인정, 현행법 고집

그러나 ‘법대로’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공정하다는 전제에서다. 저울추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얘기는 달라진다. 중앙선관위를 둘러싼 공정성 논란은 여기서 출발한다.

사조직 폐쇄명령에 대한 각 정당의 공식반응은 하늘과 땅 차이로 엇갈렸다. 민주당은 격렬히 반발했고, 국민통합21은 어정쩡한 태도였으며, 한나라당은 손뼉을 치고 나섰다. 중앙선관위가 11월18일 단일화 TV토론을 한 차례 허용한다고 발표했을 때, 3당은 모두 불만을 표시했다. 이를 두고 중앙선관위 고위 관계자는 “3당이 모두 불만족스러워하는 점이 공평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조직 폐쇄명령에 대한 3당의 반응이 이토록 엇갈리는 것은 중앙선관위 결정이 불공평하다는 증거일까.

예상대로 노사모는 격렬하게 반응했고, 11월22일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처분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신속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임종인·이용철·김영술 변호사 등 9명의 변호인단이 변론을 맡았다. 노사모가 중앙선관위 폐쇄명령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법리적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으로 출범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결사체에 대해 기존 선거법의 낡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경직된 법 적용이다. 둘째, 중앙선관위가 사조직 단속의 근거로 ‘불공정선거운동과 음성적인 선거자금 사용’을 제시했으나 노사모는 오히려 ‘십시일반 자력갱생회비’라고 이름 붙인 회비로 재정을 충당하는 등 음성자금 추방에 기여했다. 셋째, 설사 노사모를 사조직으로 인정하더라도 해산을 뜻하는 극단적 폐쇄명령은 지나치다. 어느 동창회에 대해 특정 후보의 지지활동을 폈다는 이유로 폐쇄하라면 설득력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중앙선관위도 “자발적 참여와 활동의 투명성에서 기존 사조직들과 차별성이 있다”며 노사모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한다. 중앙선관위는 선거기간 전에도 사이버 선거운동을 일부 허용하자는 선거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현행법에 따르면 노사모가 사조직에 해당하고, 따라서 규제하지 않을 수 없다는 태도엔 변함이 없다.

결국 “현실을 따라오지 못하는 낡은 법규를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노사모쪽 주장과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한다”는 중앙선관위의 논리가 맞서는 형국이다. 선거법 개정운동을 펼쳐온 대선유권자연대는 노사모 손을 들어줬다. “노사모는 새로운 정치현상이다. 젊은이들의 정치적 냉소를 허물고 자발적 참여를 증대시켰다. 국가에서 상은 못줄지언정 없애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중앙선관위가 법의 자구에 매달려 기계적으로만 해석해선 안 된다.”(김기현 사무처장)

어쨌든 중앙선관위는 사조직 폐쇄명령 이후 공정성 시비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이해찬 민주당 기획본부장은 “선관위가 한나라당에 굴복했다”며 내놓고 중앙선관위의 한나라당 눈치보기 의혹을 제기했다. 중앙선관위 홈페이지는 네티즌들의 항의글로 도배됐다.

어떻게 하면 부재자 투표 막을까 고민


사진/ 11월21일 연세대 교정에서 학생들이 부재자 투표 신청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모호한 입장을 보였다. (한겨레 임종진 기자)


대학 내 부재자 투표소 설치를 두고도 중앙선관위의 자의적이고 경직된 법해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10월30일 대선유권자연대쪽에 “부재자 투표 예상자가 2천명이 넘는 학교에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서울대와 고려대·연세대·한양대·한국과학기술대·경북대·대구대 등에서 2천명 이상을 확보하는 등 부재자 투표운동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웬일인지 각 지역 선관위별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며 소극적이고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앙선관위도 일부 정당으로부터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관련 법규를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방침을 정하는 등 미온적 태도로 물러섰다. 중앙선관위는 거소개념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면서 대자보와 현수막 철거, 통학거리 이내 학생 제외 따위의 까다로운 조건을 추가로 내걸었다. 학생들은 “중앙선관위가 ‘어떻게 하면 한 대학이라도 부재자 투표소를 덜 설치할 수 있을까’ 하고 고심하는 눈치”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부재자를 ‘주민등록지에 돌아갈 수 없는 자’로 규정한 애매모호한 법규도 문제다. 중앙선관위가 해석하기에 따라 2천명이 넘더라도 부재자 투표소를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대부분 부재자 투표 여부를 유권자 스스로 선택하도록 한다. 조금이라도 투표 참여를 높이자는 취지다. 대선유권자연대는 “법개정 이전이라도 중앙선관위가 부재자 요건에 대해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법해석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앙선관위가 편파시비를 불식하는 길은 간단하다. 상식의 잣대다. 예컨대 젊은층의 투표 참여는 권장하고, 돈 많이 드는 선거운동은 규제하는 방향에서 적극적인 법해석을 하면 된다. 그것이 어느 후보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그것은 중앙선관위가 관심 기울일 일이 아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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