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11월28일 제436호 

‘전우’들의 애정어린 심판

가해자의 동료 미군들이 배심원이 되는 미 군사재판의 구조적 한계


사진/ 지난 7월10일 서울지검에 출두한 미군들이 한 시간여 만에 초상권 침해 등의 이유를 대며 신문을 거부하고 돌아가고 있다. (연합)


많은 사람들이 여중생 치사사건의 미군 재판 결과에 대해 ‘끼리끼리 짜고 친 고스톱’이란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주한미군은 11월21일 여중생 미군 궤도차량 사망사건 재판에서 관제병인 페르난도 니노 병장의 무죄평결 뒤 낸 성명에서 “미군은 오랫동안 존중받는 재판절차를 유지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미8군 사령관 찰스 캠벨 중장도 21일 니노 병장 재판 뒤에 연 기자회견에서 “30년간 미국 군사법 체계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볼 때 공정하고 편견 없는 재판이었다”고 말했다.

과실치사 유죄평결 얻기 쉬웠으나…

미군은 나름대로 공정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11월18일에 시작된 관제병 니노 병장의 재판이 11월20일 끝나고 다음날 궤도차량 운전병인 마크 워커 병장의 재판이 열렸다. 두 사람이 따로 재판을 받은 것에 대해 주한미군쪽은 “미 군사법정이 정한 전술적 재판절차로 책임을 떠넘길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따로 재판을 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의구심과 논란의 핵심은 배심원이다. 미 군사재판은 배심원을 ‘사단장’이 선정한다. 11월18일 오전 미 2사단장은 장교 5명, 부사관 5명을 선정해 재판부에 통보했다. 변호인과 검찰은 이 가운데서 유리한 배심원과 불리한 배심원을 각각 추려내 ‘기피신청’을 판사에게 제출했다.

변호인과 검찰의 기피신청 끝에 모두 7명의 배심원이 이번 재판을 담당했다. 장교 3명에 부사관 4명으로 구성된 배심원이었다. 7명의 배심원 가운데 3분의 2 이상인 5명 이상이 유죄에 동의해야 유죄가 성립된다. 미군쪽에 따르면 미군 형법상 과실치사는 3년 이하의 형을 선고받지만,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2명이어서 유죄평결을 받으면 ‘6년 이하의 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 뉴욕주 변호사인 이재협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건은 과실치사로 기소된 건이므로 과실의 존재만 증명하면 됐다.살인죄로 기소한 것보다는 유죄평결을 얻어내기 쉽다. 살인죄로 기소되면 유·무죄를 가르는 기준은 의도성에서 그만큼 증명해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재협 교수는 “그런데 여중생 치사사건은 한국에서 벌어졌음에도 미군 안에서 배심원단이 구성됐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피고쪽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우리 입장에서는 경악할 일이지만, 배심원 제도가 가지는 허점도 한몫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11월25일 발표한 성명에서 “가해자의 동료 미군들이 배심원이 되는 미 군사재판은 한국인에 대한 범죄를 재판하는 데서 그 공정성에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민간재판 배심원 제도와 대조적

군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미군만의 배심원 구성은 미국의 민간재판 배심원 제도에 견줘 대조적이다. 미국 민간재판 배심원은 선거구의 선거인 명부나 실제 투표자 명부에서 법원서기가 추첨으로 뽑는다. 자격 조건은 까다롭지 않다. 18살 이상의 미국 시민이어야 하고, 재판이 열리는 법원의 관할구역 안에 1년 이상 살아야 하고, 영어 독해력이 있고, 1년 이상의 구금형에 해당하는 유죄판결을 받지 않은 사람이면 누구든지 배심원이 될 자격이 있다. 일단 배심원으로 뽑히면 불편부당한 자세에서 당사자 양쪽의 주장을 들어야 하며, 배심원은 심리 중에 증거가 제시되는 대로 기억 속에 저장해야지 기록을 해서는 안 된다. 또 선입견 방지를 위해 관련 기사를 다룬 어떤 보도매체도 접해서는 안 되며, 만약 어느 쪽 당사자든지 배심원이 그 같은 보도를 읽었거나 들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면 판결무효 선언 등을 구할 수 있다.

그야말로 백지에서 처음 사건을 접하도록 돼 있는 것이 미 배심원 제도의 취지임에도 여중생 치사사건은 배심원을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는 ‘전우’들로 구성했다. 미군 재판은 출발부터 ‘불편부당’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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