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당국의 재판권포기에 관한 규정 없고 신병인도조차 안 돼
사진/ 2000년 소파 개정 협정 조인식. 개정된 소파도 형사재판권 관련 조항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강창광 기자)
주한미군 군사법원이 지난 11월20일과 22일, 신효순·심미선 두 여중생 사망사건의 피고인으로 기소된 사고차량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 운전병 마크 워커 병장에게 무죄평결을 내렸다. 이로써 한-미 양국의 현행법상 두 미군에 대한 사법처리 절차는 종결됐다. 그러나 한국민 누구도,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기묘한 결말을 납득하지 못한다.
사태가 여기에 이른 근본적 원인은 불평등한 주한미군지위협정(소파)과 한-미 관계에 있다. 미군당국과 한국 검찰은 애초 치밀한 공조수사로 관련자들의 책임을 명백히 밝혀야 했으나 한국 수사기관은 공무 중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이유만으로 초동수사조차 하지 않았다. 미군당국은 사건을 축소하는 데 급급하다가 뒤늦게 진행된 한국 검찰의 수사에도 비협조적이었다. 주한미군지위협정은 미군이 한국 정부의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정하나 구체적 규정이 없어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다.
우리는 93% 재판권포기
이 사건에 관해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 정부가 미군당국에 1차적 재판권포기를 요청했다. 주한미군지위협정은 공무집행 중 일어난 사건에 대한 1차적 재판권은 미군당국이, 비공무사건에 대한 1차적 재판권은 한국에 있고, 상호간 재판권포기 요청을 호의적으로 고려하도록 정한다. 그러나 영원한 우방을 자처하는 미군당국은, 이 조항의 호혜적 적용을 거부하고 포기요청을 거절했다. 미군 범죄를 둘러싼 한-미 관계의 실상을 살피면, 미군당국의 이 처사가 부당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합의의사록은 특별히 중요한 사안이 아니면 미군당국의 포기요청에 대해 우리 정부가 재판권을 포기한다고 정하지만, 반대로 미군당국의 재판권포기에 관한 규정은 전혀 없다. 우리 정부가 해마다 500~600건 이상의 미군 범죄 가운데 93%가 넘는 사건에 대해 1차적 재판권을 포기하고 있으나 미군당국은 단 한건, 그것도 수많은 한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이번 사건에서도 재판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정작 1999년 우리 정부가 재판권을 포기한 532건 가운데 미군당국이 입건한 사건은 절반가량, 그나마 기소한 사건은 한건도 없었다. 대한민국의 사법주권은 왜 미군에게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현행 협정의 문제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2000년 개정된 본협정은 기소시 신병인도를 원칙으로 했으나, 합의의사록은 살인이나 강간이 아니면 미군 피의자를 수사 초기부터 구금할 수 없고, 이른바 12개 중대범죄가 아니면 미군 피의자는 기소시에도 구금되지 않도록 해, 다시 기소시 신병인도를 예외로 만들었다. 미-일 협정이 기소시 구금을 원칙으로 한 것에 비하면, 이는 명백한 불평등조항이다. 또한 검사의 상소권 제한과 미군의 위신에 합당하지 않으면 재판을 거부할 수 있다거나 미국 정부 대표가 참여하지 않으면 피의자의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다는 조항은 독일이나 일본에 유례없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사법주권을 유린하는 것이다.
2000년 개정에도 형사재판권 변함 없어
지난 2000년 주한미군지위협정 개정시에도 형사재판권 관련조항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더 이상 우리 사법주권이 무시되고 우리 국민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을 지속시킬 수는 없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한미군지위협정의 불평등조항을 전면 개정하고, 호혜평등의 원칙에 따라 운용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한국 수사기관의 초동수사 강화방안은 즉시 협의 시행돼야 하고, 예외가 돼버린 기소시 신병인도를 원칙으로 되살리고 공무집행 중 일어난 사건의 재판관할권 포기에 관해 세부규정을 두고 불평등조항을 없애기 위한 개정협상을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불평등한 주한미군지위협정은 존재 자체로 반미감정을 확산시키는 도화선과 같다.
이정희/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