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11월28일 제436호 

아예 죽음조차 부인하여라

여중생 사망 사건 무죄 판결 ‘짜고 치는 고스톱’…동두천은 지금 들끓고 있다


사진/ "우리 친구를 살려내라!" 여학생들이 '재판 무효'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종수 기자)


동두천은 분노로 들끓고 있었다. 여중생 2명이 주한미군 궤도차량에 치여 숨진 사고와 관련해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관제병 니노 병장의 재판이 시작된 11월18일 오전, 경기도 동두천시 미8군 캠프케이시 앞에는 ‘여중생 사망사건 범국민대책위’(범대위) 소속 회원 60여명이 “기만적인 재판을 즉각 중지하라”며 성조기를 불태웠다. 범대위 소속 김판태씨는 “가해자인 미군 검찰·변호사가 가해자인 미군들을 증인들로 불러 재판을 하고, 가해자인 미군 배심원들이 유·무죄를 판단하면 결과는 뻔하다”고 말했다. 김씨의 예상은 며칠 뒤 현실로 드러났다.

주한미군이 이례적으로 재판과정을 언론 등에 공개했다. 미군은 브리핑에서 “한국민의 높은 관심을 감안해 ‘공정’하고 ‘공평’하게 진행되는 법정을 ‘공개’하기 위해 언론 등을 초청했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항의시위로 들끓는 밖과 달리 주한미군이 마련한 버스를 타고 들어선 미8군 캠프케이시 안은 차분한 표정이었다.

공개만 한다고 공정·공평해 지나


사진/ 지난 7월31일 여중생들의 49재를 맞아 사고 장소인 경기도 양주군 효촌2리에서 주민들이 꽃을 바치고 있다. (한겨레 임종진 기자)


미 군사법정에는 한국 외교통상부 관계자, 법무부 관계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숨진 여중생 가족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기자 20여명 가운데 6명은 법정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기자들은 미군이 따로 준비한 시청각실에서 텔레비전으로 법정을 지켜봤다. 기자들은 노트북이나 휴대폰을 법정에서든 시청각실에서든 사용할 수 없었다. 배심원과 피고인 등에게 휴정시간에도 질문은 금지됐다. 기자들은 미국의 법정용어와 사법절차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통역도 없었다. 각 언론사에서 1명씩만 법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범대위는 재판이 있기 전 재판에 참석하려고 신청 명단을 보냈지만 시민단체 대표로는 민변 변호사 1명만 참석할 수 있었다.

사고를 낸 궤도차량 관제병인 페르난도 니노 병장에 대한 재판은 이틀 동안 진행됐고, 배심원들은 재판 3일째인 11월20일 니노 병장에 대해 무죄평결을 내렸다. 검찰은 사고 당시 사고 차량 앞에 가던 차량의 관제병인 머레이 하사 등 9명의 증인들을 불러 신문했다. 증인들에 따르면 사고가 난 날은 관제병의 시야에 장애가 없는 맑은 날씨였고, 여학생들은 차가 오는 것을 보고 옆으로 비켜 정상적으로 걷고 있었다. 검찰은 사고 직후 미 범죄수사대(CID)가 찍은 재현 비디오 테이프를 보여주며 “피고인이 여학생을 발견한 지점부터 사고 지점까지는 10~20초가 걸리는 충분한 거리여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차를 정지시켜야 했으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궤도차량은 느린 속도로 운행 중일 때 2초면 멈출 수 있다고 증인들은 증언했다. 그러나 변호인은 “10초의 시간은 차를 멈추기에 부족했고, 발견 뒤 경고했으나 통신장비의 결함이 있어 전달되지 않았으며, 앞에 가던 호송차량의 지휘관이 미리 알려주지 않았으므로 책임이 피고인에게 돌아가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검사와 변호사는 △여중생 발견지점에서 사고지점까지의 거리 △발견부터 사고 직전까지 걸린 시간 △당시 궤도차량의 속도 등을 서로 다르게 주장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50m, 20초, 시속 5마일이라고 주장했고, 변호인은 30m, 9.5초, 시속 7마일이라고 주장했다. 검찰과 변호인쪽은 사고 직후 미 범죄수사대가 실지조사를 통해 도출해낸 여러 개의 시뮬레이션 가운데 각각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을 증거로 내세운 것이다. 검사와 변호사쪽은 또 △통신장비의 결함 유무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주장을 했다. 검사는 미군 통신정비관 듀란 등을 불러 “사고 전과 뒤에 통신장비를 점검했지만 이상이 없었다”는 진술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변호사는 다른 미군 통신정비관 윌리엄스가 “사고 이튿날 장비점검을 해보니 이상이 있었다”는 ‘서면증언’을 제출하면서 통신장비에 결함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아예 의욕이 없다”


사진/ 경기도 동두천시 미8군 캠프케이시 앞에서 미군들이 시위에 대비해 경비를 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미군 재판에서 물증을 들이대며 변호사의 주장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검찰의 모습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운전병 워커 병장 재판 당시, 워커의 변호인은 “관제병인 니노가 당황해 운전병의 어깨를 두드릴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는 말을 이끌어냄으로써 관제병 니노에게 사고 책임을 떠넘기며 운전병 워커의 무죄를 입증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에 앞서 검찰은 니노 병장 재판 당시 똑같은 증인을 증인대에 세우고도 이러한 니노의 과실책임에 대한 진술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재판 결과를 예상했는지 법정에 아내와 함께 출두한 니노 병장은 재판과정 내내 차분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무기력한 검찰의 모습은 궤도차량 운전병인 마크 워커 병장 재판에서 극에 달했다. 책임이 더 많은 관제병 니노 병장이 무죄평결을 받은 탓인지 재판 내내 검찰은 무딘 칼날이었다. 워커의 재판에서 검찰은 “니노 병장보다 경험이 풍부한 워커 병장이 사고를 방지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며 과실책임을 추궁했다. 그러나 검찰쪽 증인심문은 이미 무죄평결을 받은 니노 병장 재판에서 나온 질문을 반복하는 수준에서 짤막하게 그친 데 반해 변호인쪽의 반대심문은 끝없이 이어지는 장면이 연출됐다. 재판과정을 지켜보던 기자들은 “아예 검찰이 의욕이 없는 것 아니냐”고 답답해했다.

워커 병장이 6천만원을 주고 선임한 민간변호사인 가이 워맥 변호사는 “선두 호송차량인 지휘관이 연락을 하지 않았고, 여중생들이 갓길이 더 넓은 왼쪽 길을 놔두고 오른쪽으로 걸어갔다”며 미군 지휘관과 희생자인 여중생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결국 니노 병장에 이어 워커 병장은 무죄평결을 받고 워커 병장은 “행복하고(happy), 주한미군인 것이 자랑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법정을 떠났다.

친구 생일잔치를 가던 두 여중생이 45t이 넘는 궤도차량에 깔려 죽었다. 그리고 당시 차량에 탑승했던 관제병과 운전병은 모두 무죄평결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지는 것일까.

니노 병장과 워커 병장의 재판과정에서 증인대에 선 증인들은 “이 사건은 차량 대열 선두에 있었던 호송차량 지휘관 메이슨 중대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증인들은 “지휘관인 메이슨은 훈련 전에 사고날인 6월13일이 (한국 지방선거로) 공휴일이었으며 민간인들이 길을 오가고 있음을 병사들에게 알려줘야 했다”고 말했다. 또 “갓길에 여중생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과 맞은편에서 차량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통신장비를 통해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알렸어야 했다”며 메이슨 중대장의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메이슨 중대장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증인대에 서지 않았다. 현재 이 사건 이후 군대 지휘체계 내에서 징계처분을 받은 사람도 한 사람도 없다고 미군 관계자는 전했다. 관제병·운전병·지휘책임자 모두 책임이 없다는 미군의 결정 뒤, 한국 기자들은 “그럼 도로를 좁게 만든 도로공사나 궤도차량을 도로 폭보다 크게 만든 제조회사가 잘못한 것이냐”며 어이없어 했다.

한줌의 극단주의자들이라고?

미군들에게 무죄평결이 내려진 뒤 성난 시민들은 동두천 미8군 캠프케이시 앞에서 태극기에 ‘미군을 처벌하라’며 혈서를 쓰는 등 격렬하게 항의했다. 시위는 온·오프라인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무죄평결 직후 <뉴욕타임스>(nyt.com)의 23일치 보도내용이 네티즌들을 더욱 자극했다. <뉴욕타임스>는 23일치 서울발 기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외교안보비서실 고위 관계자의 말을 빌려 “현재의 시위대는 ‘한줌의 극단주의자’에 불과하고, 자신들의 주장 저변을 넓히기 위해 반미감정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람 2명이 죽었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미군의 오만함에 국민들은 ‘합리적으로’ 묻고 있다. 과연 재판이 ‘공정’하고 ‘공평’하며 ‘공개적’이었느냐고.

양선아 기자/ 한겨레 민권사회2부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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