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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가 검찰 잡았다 고문치사에 물고문 사실까지 밝혀져…이제 검찰 수사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
그런데 지난달 26일 낮 검찰수사의 심장부인 특조실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조사를 받던 용의자가 고문 수사를 받다가 쓰러져 병원에 옮겼으나 숨진 것이다. 더불어 같은 혐의로 조사받던 최아무개씨가 이중철문이 설치된 특조실에서 도망가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일어났다. 당시 서울지검 간부들은 전날인 25일 병풍수사 결과 중간발표를 마친 뒤라 꿀맛 같은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서초동 검찰청사를 2주 동안 몰아친 태풍은 그렇게 시작됐다.
미제 사건 해결의 마지막 단계에서…
검찰은 사건 발생 뒤 사체 검시와 부검을 강력부가 아닌 서울지검 형사3부에 맡겨 조씨의 주검을 검시했고, 다음날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을 실시했다. 통상 일요일은 부검이 없었으나 검찰의 의지로 서둘러 부검을 했다. 지난달 27일 일요일 오후, 서울지검 간부는 몰려든 기자들에게 “26일 아침 6시까지 조사하다가 재웠고, 낮 12시께 점심을 먹이기 위해 깨웠더니 갑자기 쓰러졌다”며 경위를 설명했다. 특히 “무릎을 꿇렸을 뿐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밝혔다. 더구나 조사받던 조씨가 붙잡혀 오기 전에 아침까지 술을 마셔 피곤했다며 사고사의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때까지는 검찰과 대부분의 언론은 사태를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살인사건 용의자인 조직폭력배가 어쩌다 쓰러져 숨진 것 정도 아니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28일 아침 기류는 급변했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이지만, 전날 국과수 부검 결과 구타의 단서가 잡힌 것이다. 서울지검 형사3부장은 이를 서울지검장과 검찰총장에게 직보했고, 곧바로 대검찰청 감찰부 검사 4명과 서울지검 검사 3명이 차출돼 대검 차원에서 수사팀을 꾸렸다. 이무렵 청와대는 즉각적인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멕시코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 회의에 참가한 김대중 대통령은 이 소식을 접하고 크게 화를 냈다는 후문이다. 사건에서 손을 떼고 길 건너 대검에 수사권을 넘긴 서울지검은 말할 수 없는 무거움에 짓눌렸다.
홍검사 구속되던 날 통음한 검사들
그래도 검찰 내부에서는 “설마 피의자가 맞아서 죽었겠나. 조직폭력배와 마약사범은 조사할 때 진압을 위해 약간의 가혹행위는 있었으니 그 정도 아니겠나”는 기대가 컸다. 마약에 취한 마약사범을 붙잡아오는 경우 ‘어쩔 수 없는’ 약간의 위협은 수사상 꼭 필요하다는 논리로, 사실 검찰 상층부와 이를 눈치챈 언론도 눈감아주는 부분이었다. 더구나 숨진 조씨는 두건의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조사받던 조직폭력배였다. 아무튼 검찰 주변의 눈은 일제히 국과수 부검 결과에 쏠렸다. 부검 결과는 구타와 조씨 사망의 인과관계를 밝혀줄 유일한 ‘물증’이었다. 부검 결과는 애초 예상보다 늦어졌다. 그런데 사건의 파장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지난달 31일 오후 <한겨레>는 숨진 조씨의 공범으로 구속된 박아무개(28)씨가 ‘이상한’ 주장을 펼치고 있음을 처음으로 포착했다. 사창가인 경기 파주 용주골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박씨는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홍 반장’ 등 수사관들이 얼굴에 수건을 씌우고 물을 부어 기절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즉시 대검 감찰부에 확인을 요청했다. 대검 감찰부 관계자는 “그런 주장이 있어 조사 중이다. 하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더구나 특조실에서 조사를 받고 풀려난 다른 박아무개씨는 “엎드려 있는데 ‘너 같은 놈은 물고문 당해봐야 해’라며 화장실에서 물 트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해 박씨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줬다. <한겨레> 11월1일치는 이를 상세히 보도했고, 이제껏 단순구타 사실 정도로 바라보던 다른 언론들도 적극적인 보도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검찰도 물고문 주장을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국과수 부검 결과가 대세를 결정지었다. 국과수는 2일 저녁 “조씨가 광범위한 좌상으로 인한 속발성 쇼크로 인해 사망했다”고 밝혔다. 사실상의 고문치사였다. 결국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줄초상’이 이어졌다. 이명재 검찰총장과 김정길 법무장관은 곧바로 사직서를 제출했고, 청와대는 주저없이 수리했다. 막바지로 치닫던 대검 감찰부 수사는 7일 새벽 4시20분께 종착역에 닿았다. 홍 검사를 독직폭행 공범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영장실질심사 끝에 7일밤 홍 검사는 서울 성동구치소에 수감됐다. 대개 구속되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다. 하지만 서울구치소에는 그동안 홍 검사가 구속시킨 사람들이 너무 많아 성동구치소로 바꿨다. 검찰청사 내에서 피의자가 숨지고, 주임검사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자백 수사 관행에서 비롯된 사건
당시 홍 검사의 구속영장이 집행되는 모습을 지켜본 수사 검사들은 그날 밤 통음했다고 전해졌다. “이번 수사를 하면서 엉엉 울었다. 며칠 전까지 함께 일한 동료 아니었나. 수사하면서 울었고, 구속집행되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엉엉 울었다.” 술자리에 참석한 검찰 관계자의 전언이다. 여기가 끝일까. 8일 중간수사 결과 발표는 국민을 또 다른 충격에 빠뜨렸다. 물고문이라는 복병이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검찰은 “구속된 박씨의 주장이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결정적인 참고인 진술이 나온 탓이다. 특조실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박씨의 윗도리 운동복이 물에 젖어 있었음을 기억하는 목격자가 나타났다.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날 대검 간부가 유독 이날만은 사진기자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 진짜 이유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제 검찰은 인사 후폭풍을 치를 것이다. 심상명 신임 장관과 김각영 신임 검찰총장의 어깨에는 땅에 떨어진 국민의 신뢰와 검찰의 사기를 끌어올릴 무거운 임무가 주어졌다. 그 임무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사고로 보지 않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이 검찰 내부의 낮은 인권의식과 자백수사 관행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사건으로 바라본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날마다 범죄와 전쟁을 치르는 검찰이 쉽게 지나치기 쉬운 대목이다. 더구나 자백의 증거능력이 떨어졌음에도, 자백은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인 것임에 틀림없는 현실이다. 대검 관계자는 “검찰 간판을 내려야 하는 자괴감을 가지고 2주일을 지켜봐야 했다. 이제 검찰은 ‘수사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명재 총장은 사표를 낸 날 밤에 집으로 몰려온 기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검찰청사에서는 불을 밝히고 범죄와 싸우는 검사들이 있다. 젊은 검사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국민 여러분이 많은 성원을 보내달라.” 정치검사도 있고 권위적인 검사도 많지만, 더 많은 검사들은 인권과 안전을 위해 뛰고 있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검찰은 거듭나야 한다.
안창현 기자/ 한겨레 사회부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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