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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꾼 뒤에 사채업자 있었다 주가 올리기 위한 속임수 유상증자에 돈 빌려주고 수수료 챙긴 ‘큰손’ 반재봉의 행각
깡통회사 5120개!
검찰은 반씨를 기소하면서 “하루 300억∼500억원을 굴리는 명동 최대의 사채업자”라고 밝혔다. 명동 사채시장에서 최근 하루 움직이는 자금은 1천억∼1500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이를 감안하면 그가 얼마나 큰손이었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0월4일 검찰이 반씨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을 때 나온 현금과 수표는 187억5천만원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할 법적 근거가 없고 너무 많아서, 겁이 나 복사만 하고 돌려줬다”고 말했다. 의외로 사채업자들 사이에 반씨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금융감독원 비제도금융팀 관계자는 “여러 사채업자들에게 알아봤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물론 반씨와 거래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모르는 척하는 사채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반씨가 일반적인 사채업자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단기대출이나 어음할인, 채권중개 등을 통해 돈을 버는 일반적인 사채업자가 아니었다. 대개의 사채업자들은 법적 제재를 받을 위험성이 큰 불법행위는 가급적 피한다. 자금원과 수익의 노출을 꺼릴 뿐이다. 그러나 반씨의 사채업은 온통 불법으로 얼룩져 있었다. 불법은 큰 위험이 따르는 일이고, 그만큼 고수익이 생긴다. 한 사채업자는 “반씨는 우리와는 업종이 다른 사람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반씨는 그동안 명동에 ‘오일공사’라는 이름의 사무실을 차려놓고 사채업을 해왔다. 그는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하철채권이나 국민주택채권을 사고파는 보통 사채업자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가 94년께 명동에 들어와 국·공채 등 채권매매를 중개했으며, 99년 코스닥 시장이 폭등할 때 코스닥 투자로 상당한 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어떤 방법으로 거액사채를 굴릴 자금을 마련했는지에 대해서는 검찰수사에서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반씨의 대표적 불법행위는 깡통회사를 만드는 과정에 돈을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은 것이다. 상법은 주식회사를 설립할 때 최저자본금을 5천만원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돈은 일단 납입만 해놓으면 되고, 아무 때나 빼내도 상관이 없다. 마치 외국 유학비자를 받기 위해 일시적으로 은행계좌에 돈을 넣어놓고 잔고증명서만 뗀 뒤 다시 돈을 빼내는 것과 비슷하다. 반씨는 이처럼 법인을 만들기 위해 자본급 납입증명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루 동안 돈을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았다. 이런 회사는 증자대금이 곧바로 빠져나가 버리기 때문에 ‘깡통회사’라고 할 수 있다. 깡통회사를 만든 사람들은 이를 딱지어음 사기나 입찰담합에 활용해왔다. 반씨는 가장납입을 통해 깡통회사 설립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1억원당 하루 17만원 안팎의 수수료를 받아 이 가운데 10만원을 브로커에게 주고 나머지를 챙겼다.
불법행위 은행 지점장이 도와
반씨는 작전세력에게 돈을 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주가조작에 끼어드는 대담성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조사 결과, 대우증권 기관계좌 도용사건으로 문제가 된 델타정보통신 작전에는 그가 돈을 댄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델타정보통신 작전의 주범인 정래신씨에게 주식을 담보로 73억원의 작전자금을 제공했다. 또 빌려준 돈을 회수하기 위해 담보로 잡은 주식 140만주를 작전세력과 짜고 매매했다. 특히 기관계좌를 도용한 작전세력이 금요일에 주식을 팔았으므로 월요일에 결제가 이뤄지는데도, 그 전에 해외도피자금으로 30억원을 미리 지급하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반씨의 이런 각종 불법행위를 은행 지점장이 도왔다는 것은 반씨가 은행에는 얼마나 큰 고객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은행 서울 명동지점 박득곤 지점장은 반씨의 돈을 이자 없는 예금으로 유치하는 대가로 반씨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 명동지점은 반씨 전담대리 1명과 직원 1명을 두고 그의 일만을 처리해온 것으로 전해졌다.1박 지점장은 심지어 반씨를 위해 압류집행을 무력화시키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 7월21일 세림아이텍에는 유상증자 대금 60억원이 들어왔다. 세림아이텍의 채권자인 와이즈금기술금융은 채권 19억5천만원을 확보하기 위해 이튿날 아침, 은행이 문을 열기 전 가압류를 집행하기 위해 은행에 도착해 기다렸다. 그동안 압류집행을 막는 수법은 당일 돈이 들어오더라도 은행문을 닫을 때까지 입금을 미루는 수법이 흔히 활용됐다. 그런데, 다음날 은행 문을 열기 전 압류집행을 하려 하자 곤란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박 지점장은 집행관을 1층에 대기시켜놓은 채 유상증자 납입대금을 반씨의 계좌로 즉시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은행 지점장이 자신의 행위가 범죄를 돕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을 리 없지만, 사채업자의 큰돈이 빠져나가면 자신의 목이 날아갈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가장납입을 한 기업주만 처벌하고, 자금을 제공한 사채업자는 처벌하지 않은 것이 은행의 사채업자 비호를 관행화해왔다는 얘기다.
“어차피 빙산의 일각이다”
반씨는 어떤 처벌을 받을까 반씨에게 적용되는 죄목은 상법상의 가장납입죄로 이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이 비교적 가볍다. 검찰은 이 때문에 반씨가 유상증자 가장납입에 따라 수수료로 받은 돈에 대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의 횡령죄를 적용했다. 횡령죄는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인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과 이득액에 해당하는 벌금이 병과된다. 그러나 가장납입한 자본금을 인출한 행위를 횡령으로 본 이런 검찰의 법적용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앞으로 법정에서 다툼이 예상된다. 반씨가 몇년 몸으로 때우고, 돈은 그대로 챙길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이번 사건으로 반씨를 비롯한 사채업자와 브로커 13명, 사채업자를 비호한 우리은행 직원 3명, 거래소와 코스닥 기업 대표 5명, 시세조종 관련자 5명, 가장 납입 기업대표 38명 등 모두 68명이 적발돼 7명이 구속되고, 나머지는 불구속기소되거나 지명수배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어차피 빙산의 일각이다. 이들이 붙잡혔다고 해서 작전꾼들에게 뒷돈을 대는 사채업자가 뿌리뽑혔다고 보면 큰 오산”이라고 말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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