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월드컵 신화가 저문다 유럽으로 떠난 박항서 전 축구대표팀 감독… 외풍에 휘말려 경기력 향상은 엄두도 못 내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을 조련하는 현장에는 늘 박항서 코치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히딩크 감독과 게임을 즐기고, 체력훈련 도중 선수들과 씨름하며 장난을 즐기는 그였지만 선수들을 독려하는 악역도 그의 몫이었다. 한국과 다른 유럽식 축구문화를 전수하는 히딩크 감독의 지도방침에 거부감을 느끼는 선수들을 다독이는 게 바로 박항서 코치의 역할이었다.
너무나 짙게 드리운 히딩크의 그림자
그러나 박항서 감독은 히딩크 감독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대표팀을 맡으면서 그의 인생 최대의 시련을 겪었다. 지난 8월 말 대표팀 감독을 맡은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달여 기간밖에 없었다. 월드컵 4강을 이룬 전력이 아시아경기대회 우승 정도는 ‘땅짚고 헤엄치기’라는 시각이 팽패해 있었다. 더욱이 히딩크 감독에게 보여준 전폭적 지원과 믿음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벤치에 누구를 앉히는가 하는 문제는 감독의 전권이다. 파주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 도중 박항서 감독은 히딩크 감독의 착석 여부에 대해 “그런 얘기를 전혀 들은 바 없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오히려 히딩크 감독이 파주트레이닝센터를 찾아 농담처럼 “벤치에 앉아도 쫓아내지 않겠는가”고 양해를 구했고, 박 감독은 “히딩크 감독이라면 언제든지 좋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박 감독은 뒤에 “히딩크 감독을 존경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협회가 기본적인 절차를 무시했다”며 섭섭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남북축구에서 전반 45분 동안 박 감독과 히딩크 감독은 같은 벤치에 앉아 있으면서 단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한때는 동료이자 스승으로 격의 없는 사이였지만 축구협회의 일방적인 행정으로 어느덧 불편한 관계가 돼버렸다. 또 청소년대표와 수재민돕기 자선경기를 앞두고 협회와 계약 지연에 대해 박 감독이 불만을 터뜨리기에 이르렀다. 박 감독은 “협회와 연봉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아시아경기대회 마칠 때까지 정식계약을 미루기로 했다”며 “그때까지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밝혔다. 기술위원회는 박 감독의 불만 표출에 대해 엄중 서면경고 조처했다. 잇단 불협화음으로 경기에 몰두할 수 없었던 박 감독이 아시아경기대회 우승에 실패한 것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박 감독은 4강전에서 이란과 승부차기 끝에 패한 뒤 인터뷰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한 것은 감독인 나의 잘못”이라고 감독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겨우 3주를 준비했다. 월드컵과 비교하는 건 무리”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 감독은 모든 이유를 뒤로 한 채 전술 부재와 선수단 장악력 부재를 책임지고 중도하차했다. 기술위원회가 경질을 결정한 뒤 박 감독은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감독 부임 초기부터 지도방법이나 각종 지원 등 여러 가지 상황에서 걸림돌이 있었으며 결국 경질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협회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시했다.
예정된 중도하차… 시련은 이제부터다
히딩크 감독은 최근 일본의 스포츠잡지 <넘버>와 인터뷰에서 “승리를 얻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힘들다”며 “한국은 홈의 이점이 분명 있었다. 붉은 악마로 대표된 한국민의 엄청난 성원이 독일대회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현실을 인정했다. 그는 “가까운 장래에 한국축구가 시련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기대치는 높고 주어진 시간과 권한은 적었던 히딩크 이후 축구대표팀 체제. 박항서 감독은 외풍이 많은 과도기에 대표팀을 맡아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찬영 기자/ 한겨레 스포츠레저부 lcy100@hani.co.kr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