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10월17일 제430호 

안보망 뚫은 ‘어설픈 복수’

한철용 소장 국정감사장 블랙북 공개 파문… 준비된 돌출행동이 국정운영 송두리째 흔들어

국회 국정감사 마지막을 달군 이슈 가운데 하나인 국군 5679부대장 한철용 소장(육사 26기)의 돌출행동은 시간이 갈수록 유야무야해지고 있다. 처음 김동신 전 국방장관이 6월29일 일어난 서해교전 이전에 북한의 이상징후에 대한 분석을 보고받고도 이를 묵살 내지 삭제토록 했다는 지시는 점차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한철용 소장의 돌출행동으로 구성된 국방부 특별조사단(단장 김승광 육군 중장)의 조사도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처음 햇볕정책에 따른 묵살 의혹이라고 공세를 펴던 한나라당과 1면 머릿기사 등으로 대대적 보도에 나섰던 일부 보수언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등을 돌리고 있다.

햇볕정책 공격 빌미 삼았던 한나라당·언론


사진/ 폭로는 장성의 힘? 군사기밀에 관련된 내용을 국정감사장에서 여과 없이 공개해 파문을 일으킨 한철용 소장. (한겨레 강창광 기자)


한 소장이 폭로를 준비하고 있다는 설은 오래전부터 국방부 주변을 떠돌았다. 국감을 준비하던 한나라당 의원들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한나라당 국방위 소속 의원들은 한 소장 건에 대해 처음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 소장이 지난 8월 사람을 보내 국군보안사령관 출신의 한나라당 강창성 의원과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강 의원은 “국감을 앞두고 피감 기관장을 만나면 이상하다”며 거절했다. 강 의원쪽은 또 “만났더라도 정보 활동을 폭로하겠다면 적극적으로 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원들이 경악을 한 것은 한 소장의 태도였다. 한 소장은 10월4일 국방부 국정감사장에서 한나라당 박세환 의원이 호명하자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이어 박 의원이 “마이크가 있으면 자리에 그대로 앉아 답변해도 좋다”는 ‘친절’에도 성큼성큼 발길을 발언대로 옮겼다. 그는 5679부대의 첩보보고서와 블랙북(일일정보보고서)이 다르지 않았느냐는 박 의원의 유도 발언에 “180도 달랐다”고 말했다. 한 소장은 그리고 “이 안에 그 내용이 다 들어 있다”며 군사 2급 비밀인 블랙북을 들고 흔들었다. 이때를 놓칠세라 국감장에 있던 사진기자들의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 플래시가 연이어 터졌다. 의원들과 군인들은 “안 돼”, “2급 비밀이야”라고 고함을 질렀고, 장내는 발칵 뒤집혔다. 한 소장은 그러나 “진실은 하나”라며 답변을 계속 이어갔고, 이준 국방장관과 이남신 합참의장은 눈을 감았다.

아수라장이 이어지자 육사 25기 출신인 한나라당 강창희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국감장을 떠났다. 그는 “대한민국 군대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개탄했다. 한바탕 소란 뒤 정회 시간에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휴게실로 모여들었다. 국회의장을 지낸 이만섭 의원(민주당)은 의원 모두에게 “비공개로 하는 것이 옳았다. 군 기밀을 정치에 이용해서 되겠느냐”고 혀를 찼다.

한나라당은 국감 직후 이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쟁점으로 삼으려 했다. 일부 보수언론들도 여기에 가세했다.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은 “사건의 핵심은 이 정권 들어 안보에 대한 인식이 해이해졌다는 데 있다”며 “도발징후가 감지됐는데도 햇볕정책 유지라는 정치적 고려로 인해 입수된 정보가 예하부대에 하달이 안 됐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5679부대가 서해교전 직전에 북한 경비정의 잇단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을 ‘단순 침범’으로 보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억울함 풀려고 군사기밀 폭로했다"


사진/ 한철용 소장은 북한 경비정 침범을 '단순 침범'으로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해교전에서 침몰한 고속정을 인양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이 사안에서 서둘러 돌아섰던 또 다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군 기밀이라는 특성도 있었다. 국군 5679부대는 북한의 무선통신을 감청하고, 음어를 풀어내는 특수 첩보부대다. 일부에서는 이런 부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3급 비밀이라고 주장할 정도다. 따라서 웬만한 군인들은 이 부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심지어 육군 소장까지 올라 이 부대의 부대장을 한 박현진(육사 24기)씨도 대령 때까지 이 부대의 위치를 몰랐다고 한다. 대령 때 그는 부인과 함께 차를 몰고 가던 중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한 부대를 발견하고 초병에게 부대 이름을 물었다. 박 대령은 ‘9125부대(5679부대의 당시 명칭)’란 초병의 답변을 듣고 얼굴을 붉혔다. 다른 부대도 아니고 자신의 병과인 정보 병과의 부대를 자신이 전혀 몰랐던 것이다. 옆자리에 앉은 부인이 “참 한심하게 군 생활을 한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렇지만 이 사례는 역으로 이 부대의 비밀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 이번 파문을 거치며 군의 첩보수집 능력이 일부 드러나는 결과를 빚었다. 국군 5679부대가 8자, 15자의 글자를 감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군의 감청 주파수와 암호 해독능력을 보여주는 결과를 빚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군이 수집한 첩보의 전달경로와 처리방식이 일반에 공개되었다. 한 군 관계자는 “미국의 첩보기관으로 국방정보국(DIA)이 있지만, 이 부대가 수집한 첩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 소장은 무슨 이유로 국감장에서 돌출행동을 하게 됐을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한 소장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억울한 사정을 국감장에서 폭로하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그는 국감 첫날인 국방부 국감에서는 묵비권으로 넘어갔다. 주변에서는 그가 정보위 국감을 기다렸다고 한다. 정보위 국감이 열리면 5679부대가 수감기관이고, 자신이 수감기관의 장이어서 자유롭게 답변할 수 있었을 것으로 계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가 파행을 겪으면서 정보위 구성이 안 되고, 따라서 정보위 국감이 없자 국방부 마지막 국감에서 결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소장의 이번 행동의 배경으로는 먼저 진급 탈락이 이야기된다. 그는 지난해 10월 중장 진급심사에서 현 정보본부장인 권영재(육사 25기) 중장에게 밀렸다. 당시 그는 모든 면에서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해 진급을 확신했으나 결과가 달리 나오자 실망했다고 한다. 당시 누구누구의 입김설 등 확인되지 않은 설이 떠돌았다.

그러나 한 소장은 진급 탈락 뒤에도 마음을 가다듬고 일에만 매달렸다는 것이 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는 마음먹으면 독하게 실천에 옮기는 면이 있다. 한 소장은 전방 사단장 시절 오전 6시20분에 성당에 들렸다가 6시50분 상황보고서를 보면서 업무를 시작해 사단 사령부에 가장 먼저 출근했다. 그리고 부대 근처가 일동 갈비집으로 유명했지만 한번도 외식을 안 한 군인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처조카 이형택씨의 ‘보물선 사건’이 터지자 한 소장은 곤경에 빠졌다. 당시 국정원 국방보좌관을 하면서 이형택씨를 해군에 소개해준 것이 화근이 됐다. 그는 자신의 업무가 그것이어서 했을 뿐인데도 군에서 전혀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은 데 대해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는 것이다. 한 소장은 모든 사실을 김동신 전 장관에게 이야기하겠다며 장관 면담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하고 검찰에 불려가 9시간 동안 조사를 받는 곤욕을 치렀다.

강직했던 장성의 빗나간 공명심인가

이윽고 서해교전이 터지고, 해군 고속정이 예인 도중 침몰하자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서해패전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군은 △북한군이 사상자가 더 많고 △고속정 장병들의 사투 △교전규칙이 현 정권 들어서기 이전인 97년 10월에 작성돼 햇볕정책과 무관한 점 등을 누누이 밝혔지만 소용이 없었다. 군은 자체 조사 형식을 거쳐 진급 보직 등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상징적 의미로 해군 작전사령관, 정보본부장, 5679부대장을 서면 경고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 소장은 “장군인 부대장이 경고를 받으면 창피한 일”이라며 전역하겠다고 반발했다. 그는 그리고 “김 전 장관이 기무사를 시켜 표적수사를 했고, 책임을 전가했다”며 국정감사를 기다렸다.

한 고위 장성은 “장성의 행동이 부하로부터 존경심을 잃도록 해서는 안 된다”며 “정말 참담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김성걸 기자/ 한겨레 정치부 s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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