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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이슈추적 등록 2002.08.28(수) 제424호

[이슈추적] 골든벨 향한 ‘병풍퍼즐’

검찰의 병역면제 수사 의혹 실체에 근접… 정치권 공방 피하려 숨고르기 돌입

“김성재 문광부 장관이 병풍조작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구체적인 증언과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 전과범 김대업과 친여 시민단체, 정치검찰이 모두 청와대의 지침 아래 광란극을 벌이고 있다.”(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

“한나라당이 병역비리 수사를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도했다고 했다가 나와 짰다고 하더니, 그 다음엔 이해찬 발언을 트집잡다가, 김성재 전 정책기획수석이 관여했다고 하는 등 발을 바꾸고 있다. 병역비리와 관련된 것은 모두 음모고 모략이냐.”(민주당 한화갑 대표)

“감정자료와 비교자료에 녹음된 음성의 동일인 여부는 자료 부족과 음질상태 불량으로 ‘판단불능’ 판정이 나왔다. 그러나 녹음이 의도적으로 편집됐다고 보기는 어렵고, 김대업씨 등을 통해 감정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자료를 수집해 재감정을 의뢰할 것이다.”(검찰 관계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맏아들 정연씨 병역면제 의혹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대격돌을 벌이고 있다. “검찰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정치권은 이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실체적 진실과 상관없이 정치권은 이미 나름의 ‘정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이런 정치권의 분위기에 눌려 숨고르기를 하면서도 차츰 의혹의 핵심으로 수사망을 좁혀가고 있다.

김대업 테이프 ‘판독불능’이라는 묘수

잇단 폭로와 쏟아져나오는 의혹으로 수세에 몰린 한나라당에 공세의 빌미를 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민주당쪽이었다. 민주당 이해찬 의원은 지난 8월21일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누군가가 ‘검찰이 비리의 정황을 확보했다’며 수사 착수를 위해 국회에서 쟁점화해줄 것을 요청했다. 검찰이 김길부 전 병무청장의 인사청탁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후보 아들 병역면제와 관련한 진술을 확보해 박영관 특수부장이 올 3월 수사를 결심했다고 하더라”고 발언했다.

한나라당은 즉각 김정길 법무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하기로 하는 등 총력공세에 나섰다. 남경필 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이른바 ‘병풍’이 치밀하게 준비된 정치공작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병역관련 각종 의혹제기가 민주당·김대업·박영관의 교활하고 치밀한 삼각 커넥션 속에 진행됐음을 웅변으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8월22일 재경 평검사 인사에서 병역문제 수사를 책임지고 있는 박영관 서울지검 특수1부장이 유임되자 청와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파문이 커지자 이 의원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나에게 얘기한 사람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이지만 검찰이나 군 관계자는 아니고 현직 공무원도 아니다. 박영관 특수부장에게 들은 사실이 없고, 그렇게 얘기하지도 않았으며, 박 부장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해명했다. 민주당 이낙연 대변인도 논평을 내어 “이 후보 아들들 병역비리 은폐의혹 사건의 본질은 병역비리와 은폐기도가 있었느냐 여부다. 한나라당은 본질을 호도하기 위한 억지주장과 트집잡기를 중지하라”고 반박했다.

검찰의 테이프 판정 보류는 정치권의 공방을 피해가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병역면제 의혹에 대한 확실한 물증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는 게 한나라당쪽의 ‘정치공작’ 주장을 피해가는 방법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성문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검찰 안팎에서는 “녹음테이프에 등장하는 목소리는 김도술 전 국군수도병원 주임원사의 전화통화를 녹음한 목소리와 같은 것”이라는 입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돌다리도 두드리고 가는 심정으로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면서도 적지 않은 수사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몸조심을 하면서도 할 일은 하고 있는 셈이다. 검찰은 98∼99년 군 검찰 병역비리 수사를 맡았던 유관석 소령에 대한 소환조사에서 “김도술씨의 정연씨 병역문제 관련 자술서 등을 직접 봤으며, 당시 군 검찰 간부가 이를 보여주기도 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유 소령에게 관련 기록을 보여줬다는 군 검찰 간부를 곧 소환해 정연씨 수사기록을 보관하고 있는지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또 김대업씨가 정연씨 병역비리 은폐대책회의에 관여했다고 주장한 김길부 전 병무청장과 정연씨 병역면제 과정에 개입했다고 지목한 육군헌병 준위 출신 변아무개씨 등 전·현직 군 관계자들도 곧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 성과 많아… 확실한 물증이 관건

검찰이 최근 미국에서 잠적한 김도술씨의 소재 파악과 신병확보 방안을 강구하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김씨가 현재 ‘제3국’으로 떠나지 않고 미국 안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와 함께 녹음테이프에 정연씨 병역면제를 알선한 인물로 등장하는 병무청 유학담당 직원의 신원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판독불능’으로 결론난 성문분석도 김씨가 원본테이프를 제출하는 대로 김도술씨를 직접 인터뷰한 <한국방송>쪽에 육성테이프 제출을 요청하기로 했다. 녹음테이프에 대한 재감정이 완료되기까지는 2∼3주가량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여 검찰수사는 김도술씨 목소리 등 확실한 물증을 잡을 때까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8월23일 한나라당 김원웅 의원은 정치권의 행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김 의원은 이날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정치권은)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매도하거나, 반대로 뚜렷한 반증자료 없이 자기 당 후보를 맹목적으로 비호하고 있다. 병역비리 의혹을 공격하거나 반격하는 편 모두 진실을 입증할 위치에 있지 않은 인사들은 나서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 모르게 치닫는 병풍논란의 진실을 밝혀줄 수 있는 건 결국 검찰밖에 없다. 그러나 검찰수사 결과와 상관없이 당리당략에 따른 정치권 공방은 대선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문제는 병역논란을 바라보는 여론의 향배다. 의혹의 실체가 한 꺼풀 벗겨졌을 때 국민은 무엇을 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정치권은 검찰수사 결과가 아닌 국민여론에 귀기울여야 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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