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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이슈추적 등록 2002.08.21(수) 제423호

[이슈추적] 공평한 서울대 가능한가

정운찬 총장 지역할당제 발언으로 논란 일어… 대학서열구조에 균열 내는 ‘첫 단추’ 기대

한국사회에서 ‘지역’이란 무엇일까? 지역은 단순히 ‘경계 그어진 땅’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의 강남과 강북이 확연히 갈리듯,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계층을 상징한다. 이런 지역적 서열은 특히 교육에서 극명하게 표현된다. 서울대가 올해 신입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서울·수도권·광역시 출신이 74%(서울 38.5%, 광역시 22.8%, 수도권 12.7%)에 달했다. 기타 도시지역은 19.2%, 읍·면 지역 출신은 4.1%에 불과했다. 사는 지역은 부모의 직업과도 무관하지 않다. 서울대 신입생의 아버지 직업은 전문직(판검사, 의사, 변호사, 교수 등) 18.1%, 경영·관리직(사장, 대기업 간부, 고급 공무원 등) 20.6%, 사무직 24.1%인 반면 농축수산업은 2.3%에 그쳤다.

정 총장 “임기 내 추진할 것”

그런데 최근 ‘교육에서의 지역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서울대 신입생 선발 때 지역할당제를 도입하겠다는 정운찬 신임 서울대 총장의 발언 때문이다. 정 총장은 지난 7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역할당제(지역별 신입생 선발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며 ‘사견’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그 뒤 논란이 일자 정 총장은 지난 8월13일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2006년 안에 지역할당제를 도입할 방침이라고 거듭 밝혔다. 논란을 일축하고 자신의 소신을 재확인한 셈이다. 정 총장은 “미국의 하버드·예일·프린스턴 등 유수의 대학도 지역별·경제수준별·인종별로 신입생을 뽑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다양한 사회계층이 서로 어울려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며 “우리도 다양한 방식으로 신입생을 뽑아야 사회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군 단위별로 1∼2명씩 의무적으로 뽑더라도 전체 신입생 4천여명 가운데 300∼400명에 불과해 전체적으로 보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도시와 부유층 등 특정 지역·계층 출신이 서울대 입학을 독점하는 구조를 깨겠다는 구상이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았지만, 정 총장의 지역할당제는 어찌 보면 ‘소박한 소신’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라면 성적만 갖고 한줄로 세워 상위 4천명을 싹쓸이할 게 아니라 다양한 학생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데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유근배 기획실장은 “적대적이었던 서로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만나서 함께 공부하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사회적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게 총장의 뜻”이라고 풀이했다. 그래서일까. 정 총장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일부에서는 “너무 성급하다”, “신중했어야 한다”는 식으로 집중 포화를 퍼부으며 지역할당제 논의 자체를 봉쇄하고 있다. 기계론적 평등주의라고 몰아붙이면서 단순한 해프닝으로 축소시키려는 축도 있다.

그러나 지역할당제는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는 논란이며, 더 나아가 공정한 경쟁제도를 만들기 위한 ‘도전적인 제안’이란 주장도 만만찮다. 지역 및 교육에서의 불평등 문제는 “성급했다”며 웃어넘길 문제가 더 이상 아니라는 얘기다. 지역은 이미 우리 사회의 가장 결정적인 불평등 요소다. 부의 지역적 편중은 막대한 사교육비 투입의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이는 명문대 입학을 좌우한다. 명문대 졸업장은 다시 독점적인 부와 권력, 명예의 획득으로 이어져 사회적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부의 불평등, 교육의 불평등

가진 것이라곤 실력밖에 없는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에 들어가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가진 자만이 교육을 잘 받을 수 있고, 교육받은 자만이 다시 부를 갖는 대물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 지역할당제는 ‘지역’을 넘어 사회적 계층 또는 계급의 문제라는 게 더 정확하다. 전교조 김영삼 정책연구국장은 “도시의 부유층 자녀와 농어촌 자녀의 교육받을 기회 자체가 차별적인 만큼 다른 제도를 통해서라도 기회를 공평하게 해줘야 한다”며 “지역할당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지역 부유층 자녀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빚을 수 있지만, 지역과 부모라는 배경을 무시한 ‘단순 경쟁’은 출발선에서부터 이미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지역할당제 논란의 한복판에는 △형평성 △국민적 정서 △사회적 정의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능력’이 아닌 ‘지역’을 포함시키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게 형평성을 내세우는 쪽의 논리다. 한마디로 자유경쟁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력’을 제외한 모든 조건이 비교적 평등할 때만 자유경쟁은 정당하다. 어느 지역에 산다는 사실이 모든 특권을 보장해주는 사회에서 ‘기회균등’이란 말은 단순한 수사에 불과할 뿐이다. 오직 실력만이 대학 입학의 기준이 돼야 한다는 원칙도 온갖 특별전형 제도 도입으로 이미 훼손되고 있는 추세다. ‘학벌없는사회’ 홍훈 대표(연세대 교수)는 “헌법에 규정된 ‘능력’이 바뀌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헌법을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것도 곤란하고, 교육평등권이라는 대의에 비춰볼 때 지역할당제는 충분히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역할당제의 취지는 좋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만큼 검토할 단계는 아니라는 견해다. 교육부 이걸우 학술학사지원과장은 “입시전형이 이미 자율화됐으므로 서울대가 내부 의견을 수렴해 지역할당제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이미 시행되고 있는 농어촌지역 학생 특별전형과 취지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올해 입시에서 농어촌지역 특별전형(지원자격은 전체 수험생의 11%인 수능상위 2등급)을 도입해 정원 외로 100명을 뽑은 바 있다. 특히 고등교육법은 ‘국립대 총장은 (학생을 선발할 때) 국가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지방 국립대에서는 입시 전형 때 해당지역 출신자한테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다. 물론 전국 단위에서의 지역할당제는 정 총장의 구상이 처음이다.

서울대 지역할당제는 아직 학내 의견수렴을 거친 것도 아니고, 사회적 합의가 뛰따라야 한다. 어쩌면 사회적 정의에 기초한 ‘정치적 의지’로 풀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 성격이 지역할당제를 넘어 국립대, 나아가 한국의 대학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전교조 김영삼 국장은 “지난 50년간 대학이 권력기관화하면서 온갖 특혜를 누렸지만 사회적 책임은 외면했다”며 “정 총장의 지역할당제는 그 책임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 제기”라고 말했다. 서울대를 비롯한 대학들이 학생들을 1∼2점 차이로 줄 세워 손쉽게 뽑는 데만 열을 올렸지, 다양한 학생들을 뽑아서 ‘잘 키우는’ 일은 뒷전에 팽개쳤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고교에서 모든 자료를 넘겨주고 국가가 수능으로 성적을 가려주면, 그렇게 뽑은 학생들의 입학성적만 갖고 “우리 대학은 경쟁력이 있다”고 선전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 점에서 정 총장의 지역할당제 구상은 대학의 역할과 책임을 사회적 이슈로 제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대학에 대한 근본적 성찰

지역할당제는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뿌리깊은 대학서열 구조에 균열을 내는 ‘첫 단추 끼는 실천’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거꾸로 오래 전부터 터져나온 ‘서울대 망국론’을 돌파하려는 치밀한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삐딱한(?) 해석도 있다. ‘학벌없는사회’ 홍훈 대표는 “정 총장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역할당제는 서울대를 더욱 명예롭게 만들려는 흐름 속에 있는 것으로 뒤집어볼 수 있다”며 “전국의 각 지역에서 서울대를 향한 또 한번의 한줄 세우기가 일어날 가능성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지역할당제가 학벌사회라는 총체적인 구조와 그 한복판에 있는 서울대 문제를 푸는 처방의 하나로서, 진지한 논의의 대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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