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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이슈추적 | 등록 2002.08.09(금) 제42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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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진실의 의욕은 더욱 높아진다 조선일보사가 명예훼손 소송 피고로 지목한 <한겨레> 고명섭 기자의 항변
조선일보사가 지난 7월25일 본인과 <한겨레> 안수찬 기자(현 정치부)를 상대로 해 각각 3억원과 1억원씩 모두 4억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의 한 사람으로 지목된 기자는 지난 8월1일 아침, 신문사에 출근해 책상 위에 배달된 노란 봉투를 받아보고서야 소송 사실을 알았다. ‘피고’란에 기자의 이름이 찍힌 걸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왜 이제서야 이들이 소장을 냈을까’ 하는 것이었다. 조선일보사가 문제삼은 보도는 지난 1월31일치 <한겨레> 1면과 3면에 난 ‘조선일보 반민족·반민주·반통일 민간법정’에 관한 3건의 기사다. 이 기사에서 두 기자는 1월30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민간법정의 현장상황과 검사단의 논고, 재판부의 판결 등을 사실보도하고 이 법정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비교적 절제된 언어로 풀이하는 해설기사를 썼다. 이 보도가 나가자 조선일보사는 <조선일보> 2월1일치 사회1면에 기사를 내 <한겨레> 기사가 “악의적 비방 의도로 작성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왜 6개월 지난 뒤 불쑥 소장을?
이 기사를 읽고 기자는 ‘송사 좋아하는 <조선일보>가 조만간 일을 저지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두달, 석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가 6개월이나 지난 뒤 불쑥 소장을 들이민 것이다. 사실 그 사이 일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민간법정’이 열리고 한달쯤 지난 뒤 3·1절을 앞두고 ‘민족정기 국회의원 모임’이 친일파 명단을 전격 발표한 것이다. 명단에는 <조선일보>의 ‘중흥시조’인 계초 방응모의 이름이 들어 있었고, 그의 친일 죄상이 낱낱이 기록된 ‘친일 행적’도 첨부됐다. 이 사건으로 신문지면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조선·동아일보사는 자사 창업주를 비호하기 위해 사실왜곡조차 서슴지 않는 보도를 연일 내보냈다. ‘친일파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염치가 없다 하더라도 그런 때 자기 과거를 고발하는 신문(기자)을 명예훼손 혐의로 몰아붙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조선일보사가 ‘친일파 명단 공개’ 사건의 파장이 가라앉을 무렵에 와서야 슬그머니 소장을 제출한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으로 기자는 짐작한다. 조선일보사가 명예훼손의 근거를 담았다며 내놓은 소장은 기자가 보기에 내용과 맥락에서 모두 부적격이다. 12쪽짜리 소장에서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은 0이 8개나 찍힌 소송가액이다. <조선일보>의 추문과 비행을 비판하는 기자들에게 돈을 앞세워 ‘입 다물라’고 협박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판단이다. 조선일보사의 소장은 ‘민간법정’이 “시민단체의 일회성 이벤트”라고 깎아내렸다. 그러나 문제의 민간법정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6·15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통일연대),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등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축이 돼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 동안 준비해온 대규모 행사였다. 강만길·리영희 선생 같은 우리 사회의 존경받는 학자·언론인들이 고문 역을 맡았고, 민족문제연구소·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 등 수십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공동대표로 참여했으며, 민간법정 추진위원은 모두 1200여명에 이르렀다. 행사 당일 한국언론회관 국제회의장은 1천명에 가까운 방청객과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것이 어떻게 ‘시민단체의 일회성 이벤트’로 폄하될 행사인가. 오히려 이런 중대한 ‘사건’을 전혀 보도하지 않은 <조선일보> 등 우리 사회 이른바 ‘주류언론’이야말로 언론의 기본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질책을 받아 마땅하다. <한겨레>는 민간이 힘을 모아 <조선일보>의 역사적 과오를 묻는 이 중요한 사건을 사실보도 원칙에 입각해 보도했다. 만약 조선일보사가 이 보도내용을 명예훼손으로 받아들인다면, 먼저 1200여 민간법정 추진위원과 행사를 주도한 시민단체를 고소해야 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한겨레>의 보도만을 문제삼았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방재선씨의 사과내용은 나 몰라라
조선일보사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장은 “<한겨레> 1면 머릿기사”에서 “큰 활자로 ‘반민족 언론, 조선일보 유죄’”라는 제목으로, 또 “3면 좌측 상단에 …큰 활자로 ‘시효없는 시민의 ‘친일’ 심판’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게재했다며 그 ‘잘못’을 두 기자에게 물었다. 요컨대 기사가 ‘크게’ 보도된 것 자체가 ‘명예훼손’이라는 취지다. 그러나 누구보다 신문제작과정을 잘 알고 있는 조선일보사가 이런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소장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알다시피 기사 제목은 편집부에서 달고, 지면 배치는 편집위원회를 통해 편집국장이 최종 결정하며, 그 신문 발행은 발행인인 신문사 사장이 한다. 그런데 그런 종합적인 논의·편집 과정을 통해 나온 기사의 크기와 배치를 현장 취재기자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상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통상 신문보도 내용의 명예훼손 여부를 문제삼을 때는 최종판 또는 가정배달판을 준거로 한다. 특히 최종판은 영구보관용이어서 역사적 자료가 된다. 그런데 조선일보사의 소장은 몇천부 찍지도 않은 초판만을 문제삼았다. <한겨레>는 1월31일치 초판보도가 나간 뒤 편집회의를 거쳐 1면 머릿기사를 한가운데로 옮기고, 다른 기사를 1면 머리로 올렸으며, 3면 현장스케치 기사는 초판에 반영되지 못한 상황을 담아 크게 수정했다. 수정된 기사에는 계초 방응모의 친자인 방재선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조선일보>의 잘못을 시인하고 대신 사과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방씨는 ‘분명한 사실은 계초 방응모 선생이 친일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한다. 과정이야 어쨌든 일본에 굴종하고 친일한 것은 변명이 필요없다. 거듭 사과한다’고 말해 장내에서 박수가 터졌다.” 이런 증언은 그 자체로 소장의 ‘명예훼손’이니 ‘악의적 비방’이니 하는 주장의 근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기자는 조선일보사가 배달판이 아닌 초판만을 문제삼은 것이 이런 ‘자기 발등 찍기’를 피하려는 계산의 결과일 것으로 추정한다. 소장은 여러 차례 반복해 해당 기사가 “시민단체의 격렬한 욕설을 여과 없이 인용·보도”했으며 ‘악의적 비방’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자는 문제의 기사에 어떤 ‘욕설’이 있으며 ‘비방’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기사 내용은 모두 역사적 사실이며, <조선일보> 지면에 활자로 박혀 있어 누구라도 찾아서 읽어볼 수 있는 것들이다. 오히려 문제는 이런 사실을 감추고 뒤집으면서 자신들의 과거를 미화하고 시민사회의 상식을 농락하는 허위·과장보도를 되풀이해온 <조선일보> 자신이다. 어떻게 역사적 진실을 복원해 거짓을 규탄하는 것을 두고 악의적 비방이라고 할 수 있는가? 더구나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민간법정에서 터져나온 검사단의 격렬한 논고를 여과 없이 보도하기는커녕, ‘신문의 품위’를 생각해 자제력을 유지했음을 밝혀둔다.
기자 개인만 물고늘어지는 이유
소장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피고가 된 기자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원고(<조선일보>)를 비방하는 기사를 작성·게재한 바 있다”는 구절이다. 조선일보사가 왜 발행인·편집국장·담당데스크를 모두 놔두고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취재기자만을 고소 대상으로 삼았는지, <조선일보>를 단죄하는 민간법정 추진단을 놔두고 그걸 보도한 기자만을 지목했는지가 확연해지는 대목이다. 거듭 말하지만, 기자는 <조선일보>를 비방한 적이 없다. <조선일보>의 반민족적 행위를 알리고 그들의 반언론적 보도행태를 비판하는, 시민사회의 구성원이자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언론기관 종사자로서의 임무를 이행해왔을 뿐이다. 조선일보사는 자신들의 친일행위를 마냥 부인할 수는 없었는지 소장에서 “때로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기사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일도 있었다”는 식으로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미 <한겨레> 등의 추적·발굴 보도를 통해 <조선일보>의 친일매족 행위는 천하에 드러났다. 도대체 일제하 1월1일치 1면을 털어 천황 부부의 사진과 찬양기사를 싣는 것도 부족해 ‘조선일보’라는 제호를 밑으로 끌어내리면서까지 일장기를 실어올린 ‘과잉충성행위’를 ‘어쩔 수 없이’란 말로 얼버무릴 수 있단 말인가. 조선일보사는 심지어 <한겨레> 보도가 “민주주의 요체가 되는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를 해쳤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만큼은 그럴 자격이 없다. ‘자유로운 토론’을 봉쇄하고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주의 가치’를 질식시켜온 게 누구인가. 악의적인 보도로 한 인간의 인격과 학문을 매도한 1998년 ‘최장집 사건’의 장본인이 누구인가? 조선일보사의 소장은 돈을 무기로 삼아 ‘말하는 자’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협박장이다. 무릇 기자에게 이런 협박은 더 큰 의욕을 자극할 뿐이다.
고명섭/ 한겨레 여론매체부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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