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08월28일 제424호 

“용서를 구하면 용서하겠소”

허원근 일병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기까진 허 일병의 아버지 영춘씨의 18년에 걸친 지난한 싸움이 있었다. 그는 최근 허 일병 살해범으로 알려진 사람에게 “진실과 용서”의 뜻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다음은 편지 전문.

000씨 귀하

선생의 지난 모든 일에 용서를 구한다면 용서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소. 내 아들이 화천에 있을 때부터 “자살은 아니다”라고만 한다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고 하였소.

왜냐하면 총을 쥐고 있는 혈기왕성한 병사들이 모두 서로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소. 사람은 언제 어떠한 실수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무참하게 자살이라고 하며 삼팔선이 무너질 수 있다고 하는 말 앞에 할 말이 없어서 사체인수를 거부하고 아들의 영정 앞에 꼭 진실을 밝혀 명예를 찾아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고, 아직도 유골을 땅에 묻지 못하고 있답니다.

지금 나의 바람은 잘못한 사람을 찾아내어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고, 잘못한 부분을 밝혀내어 이 땅에 우리와 같이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고도 자살로 위장되어 억울한 원혼이 우리 곁에 머물지 않고 천의에 귀의할 수 있도록 하며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다루지 말도록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함께 하며 한번 잘못하였던 것을 용서받고 고통받는 사람을 구원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어 이 글을 씁니다.

용서를 구하여야 용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시대의 아픔 속에서 알게 된 당신이 윤회의 고리에 얽혀 후손에까지 불행을 물려주지 말 것을 나는 바랍니다.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이 법(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을 만든 기본취지는 당신과 내가 화해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고, 양심선언자에게 신변 보호와 사면을 주장한 것이 다름 아닌 유가족이었다는 것도 알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박영두 사건으로 청송교도소에 가서 양심선언을 요구하였으나 끝내 거절하여 교도소에서 집회를 끝내고 가족이 살고 있는 그 집으로 찾아가서 이웃에 알리는 선전물을 돌리던 중에 그 교도관 아들에게 유인물이 전달되었습니다. 나는 그때 천진난만한 어린이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주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본래의 취지는 이것이 아닌데 이러한 일은 하지 않아야 하겠다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또 영월지청장 규탄대회를 갔습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에 이름을 거명하지 않는 것은 혹시 다른 사람이 볼 것이 두렵고, ‘나’ 허영춘이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용기와 진실은 죽어간 허원근의 명예를 찾아주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는 당시 대대장 전00을 법정에 세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영달을 위해서 사실을 철저하게 은폐한 지휘자를 그대로 내버려둘 허영춘은 아닙니다.

그러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신변 보호를 약속드립니다. 이 약속은 진실하며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킬 것입니다. 이 땅에 우리 아들과 같이 불행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겠다는 약속이 전제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2002년 7월18일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의문사지회장 허영춘 드림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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