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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적기록표가 증언한다 새로운 의혹 불거져 대선정국 요동… 실수 투성이로 위·변조 논란 재점화
최초 작성자의 필체가 사라졌다
수사의 실마리는 재보선 직후 뜻밖의 인물로부터 풀려나왔다. 지난 주말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아들 정연씨의 병역문제를 수사 중인 서울지검 특수1부에 전 종로구청 병사계 직원 박아무개씨가 소환됐다. 박씨는 정연씨 병적기록표에 이름과 가족관계, 학력 등 인적사항을 기록하고 확인도장을 찍은 최초 작성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박씨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진술을 했다. “이 병적카드는 내가 작성한 것이 아니다.” 박씨의 이런 진술은 지난 1997년 정연씨의 병적기록표가 세상 빛을 본 뒤부터 끊이질 않던 위·변조 논란에 다시 기름을 부었다. 박씨는 “도장은 내 것이 맞지만 내 글씨가 아니고, 왜 내 도장이 찍혀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작성 시점이 1981년 10월이라면 해당연도 추가 신검자용으로 미리 도장을 찍어놓은 카드를 나중에 누군가가 사용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병적기록표는 병역 대상자가 만 19살이 되는 해 구청 호적계에서 이름·주소·가족사항 등을 담은 병적소표를 작성한 뒤 구청 병사계에서 일괄 작성하도록 되어 있어, 63년생인 정연씨의 경우 81년이 아닌 82년에 작성되는 것이 정상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김씨를 곧 소환해 82년 명륜동 대상자 기록표 작성 당시 유독 정연씨만 빠진 이유와 제3자의 작성 가능성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에서는 곧바로 ‘조작의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검찰이 이것을 병적기록표에 얽힌 각종 의혹을 풀 중요한 단서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병적기록상 정연씨 주민번호가 잘못 기재돼 있다는 사실까지 추가로 드러나면서 기록표에 대한 의문점은 계속 쌓여가고 있다.
그 많은 부실이 우연이란 말인가
올 들어 정연씨의 병역비리 의혹을 다시 제기한 의무부사관 출신 김대업씨는 “병적기록표 안에 한마디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정연씨와 동생 수연씨의 병적기록표를 함께 놓고 보면 그 비밀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했다. 그의 주장대로 지난 97년 7월29일 병무청이 국회에 제출한 두 사람의 병적기록표 사본을 꼼꼼히 대조해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대목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정연씨 병적기록표에 나타난 의혹
1.본인 이름이 '정윤'으로 잘못 기재됐다가 정정됐다.
수연씨 기록표는 사진이 제대로 붙어 있는 것은 물론 가족관계란의 ‘관계’란도 ‘백부’, ‘형’식으로 채워져 있다. 또 ‘지방청 대조확인’란에 도장이 제대로 찍혀 있으며, ‘작성자와 확인관’ 자리에도 ‘지방행정주사보 장○○’라는 고무인과 도장이 찍혀 있다. 학력란도 초등학교부터 중·고교, 대학까지 충실하게 기재돼 있다. 이에 비하면 정연씨 기록표는 한마디로 부실투성이다. 사진과 철인의 흔적이 없으며, 꼭 있어야 할 지방청 대조확인란도 비어 있다. 지방청 대조확인은 본적지 구청에서 최초 작성한 병적기록표를 병무청이 넘겨받으면서 기재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도장을 찍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족관계를 적는 칸에 ‘부’와 ‘모’ 등 관계를 제대로 써넣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고, 학력도 고교와 대학까지만 적고, 이후 유학학위 등은 써넣지 않았다. 이런 지적에 대해 이 후보쪽은 △사진은 기록이 구청, 지방병무청, 보충대, 군병원 등 여러 곳을 거치는 동안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사진의 철인은 꼭 찍으라는 규정이 없어 다른 기록표에도 누락된 경우가 많고 △지방청 대조확인은 병무청 담당자의 실수로 누락됐다고 해명해왔다. 한마디로 “구청과 병무청 직원들의 업무 미숙과 착오 때문에 생긴 실수”라는 것이다. 실제 사진이 없거나 기재사항이 누락되는 것 등은 다른 병적기록표에서도 가끔 발견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정연이라는 이름도 처음에 ‘정윤’으로 기입되어 있다가 정정되었고, 둘째 아들 수연씨와 딸 연희씨 이름도 ‘수윤’과 ‘윤희’로 잘못 기재되어 있는 등 실수치고는 너무 어이없는 실수가 한 사람의 기록표에 무더기로 나오고 있다. 유독 정연씨의 기록표에서 여러 착오과 실수가 중복됐다는 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가필 흔적에 주민번호 오기까지
두 사람의 표에서 동시에 ‘가필’ 흔적이 발견되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기록표상의 인적사항은 구청직원이 한번에 작성하는 만큼 필체가 동일해야 정상이다. 물론 신검 결과와 병무청의 행정처분 내용 등은 각각의 기관에서 그때그때 작성하는 것인 만큼 같은 필체일 수가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가족관계란’을 보면 다른 글씨체와 확연히 구분되는 글씨를 볼 수 있다. 정연씨의 경우 아버지의 직업란에 ‘대법원 판사’라고 적힌 것이 그렇고, 수연씨의 경우 ‘부’, ‘모’ 앞에 큰아버지·큰어머니를 나타내는 ‘백’자가 굵은 필체로 덧쓰여 있다. 마지막 칸에 올라간 이 후보의 이름과 한자 ‘父’(부)자도 어딘지 어색해 보인다. 수연씨의 가족관계란에 이 후보 형님 부부가 부모로 올랐다가 나중에 ‘백’자가 추가되고 이 후보가 아버지로 다시 오른 것은 이 후보쪽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다만 이 역시도 “구청직원이 실수한 뒤 뒤늦게 이를 깨닫고 정정한 것일 뿐 어떤 의도가 있는 일은 아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들 둘이 모두 체중 문제로 면제받은 것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또 두 사람처럼 대법관이라는 사회 유력인사의 자제일 경우 병적기록표에 반드시 이런 사실이 표시돼야 하며, 그 방법은 수연씨의 경우처럼 보호자 옆에 ‘공직자’라는 고무인을 찍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록표의 의혹이 여기까지라면 “드물지만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연씨 기록표에 나타난 또 다른 몇 가지 의문들은 이런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다. 기록표상 정연씨 주민번호( )는 뒷자리가 1016610으로 돼 있다. 그런데 수연씨는 1010617이다. 형제는 이 번호의 앞 5자리가 똑같아야 하는데 4번째 자리가 ‘6’과 ‘0’으로 서로 다르다. 정연씨 번호가 잘못 기재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 작성자의 실수일 수 있다. 그러나 이 후보쪽은 “기록표에 사진이 없다 해도 주민번호가 있으니 문제가 안 된다”고 설명한 일이 있다. 따라서 정연씨 기록표의 주민번호 오기는 이런 설명을 무색하게 만든다.
위·변조 결정적 단서 아직 못 찾아
정연씨 기록표 최초 작성자인 박씨가 카드 작성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애초에 작성된 카드가 바꿔치기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씨는 검찰에서 “도장을 찍어두고 쓰지 않은 카드가 남아 있는 경우도 있고, 내가 세무담당을 해서 도장을 구청에 영구 보관하기 때문에 누군가 사용했을 수도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연씨 기록표 작성 시기가 명륜동이 본적지인 다른 63년생들처럼 82년 5월20∼31일 사이에 일괄 작성되지 않고 7∼8개월 이른 81년 10월에 작성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의혹을 낳는 부분이다. 정연씨 면제판정 당시 춘천병원 진료부장인 백일서 대위의 도장이 102보충대 신검결과란에 찍혀 있는 것도 병적기록표의 비밀을 풀 중요한 단서의 하나다. 일반적으로 입영신검의 경우 군병원 신검과장이 보충대에 가서 직접 지휘하고 기록한다. 그러나 정연씨의 경우 102보충대 결과도 백씨가 날인을 했고, 뒷면 춘천병원에서의 정밀검사 결과에도 도장을 찍었다. 이에 대해 백씨는 “보충대에서 공란으로 보내온 것을 내가 직접 기재한 것이며, 정연씨의 키와 몸무게는 내가 직접 재고 기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백씨에 대한 검찰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만큼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살펴본 대로 정연씨 병적기록표는 누가 봐도 의문을 가질 만한 내용들이 숨어 있지만, 아직 위·변조 여부를 판단할 결정적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김대업씨는 이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어 주목된다. “공개되면 기록표가 위조됐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병역비리 실체 규명 초읽기 들어가
김씨는 12일 그동안 말로만 주장하던 녹음테이프를 검찰에 제출했다. 녹음테이프에는 김씨 주장대로 국군수도통합병원 전 원사 김도술씨가 “한인옥씨한테서 아들 병역면제 청탁과 함께 2천여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김씨 주장을 검토하면서 이를 입증할 수사 스케줄을 짜는 기초공사에 주력했던 검찰수사는 이제 본궤도에 올라섰다. 검찰은 미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도술씨와 알선 브로커 등 관련자 신병확보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이와 함께 병적기록표상의 비리단서를 들춰내기 위해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 후보 아들 병역비리 문제는 말만 많았지 수사기관이 한번도 제대로 조사한 일이 없었다”며 “이제 의혹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병역비리가 사실로 드러나면 정계를 떠나겠다고 공언한 이회창 후보와 검찰은 대선 길목의 외나무다리에서 맞섰다.
정광섭 기자/ 한겨레 민권사회2부 iguass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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