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08월14일 제422호 

재판권 갖고 주둔지 넘길래?

주한미군, 여중생 압사사건 재판권 고집… 국민적 반감 확산에 기름붓는 격


사진/ "사과는 있어도 재판권 이양은 없다." 지난 8월9일 리언 라포트 한미연합사령관이 여중생 사망사고 유가족들에게 사과발언을 하고 있다. (국방일조/ 연합)


미국은 끝내 재판권을 내놓지 않을 것인가. 주한미군은 여중생 압사사건에 대한 재판권 이양 1차 시한인 지난 8월7일 “형사재판관할권을 내놓을 수 없다”고 발표했다. 한국민의 들끓는 반미 시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한미군은 “공무중 사건에 대한 재판권을 넘겨준 전례가 없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1957년 1월30일 일본 군마현에서 미군이 탄피를 줍던 주부를 총살했다가 재판권을 일본에 넘겨준 사례에 대해서는 “공무중이 아니라 의도적인 범죄였다. 공무중 사건에 대한 재판권 이양 사례로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미군의 이런 발표는 한국민의 반미 감정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미군이 재판권 포기 불가를 선언한 날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는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대책위는 “한국민의 비난여론이 빗발치는데도 재판권 포기 요구를 또다시 무시한 데 분노를 금치 못한다. 재판권 포기 최종시한인 오는 21일까지 재판권 이양과 부시 대통령의 사과,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운동을 벌여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집회가 열린 이날 퇴근길 서울 중심가는 반미 물결로 출렁였다.

공무중 사건 반환 사례 없다고 주장


사진/ 반미물결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천주교 여러 단체들이 형사재판관할권 이양을 요구하는 연대집회를 갖고 있다. (박승화 기자)


장대비와 함께 잠시 주춤하던 분노의 불씨는 지난 10일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역 동부광장에서 다시 살아났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시민·학생 등 300여명은 반미 구호를 외치며 사고를 낸 미2사단까지 촛불 행진을 벌였다. 친구들과 함께 시위에 참가했다는 전아윤(18·ㄱ여고 2년)양은 “미군이 일본한테는 재판권을 넘겨줬으면서도 우리의 요구는 묵살해 분하고 억울하다. 미군이 재판권을 넘겨줄 때까지 시위에 참여하겠다”고 입을 앙다물었다.

이날 시위대는 달걀 500여개와 불태울 성조기를 준비했다. 그러나 달걀은 집회가 시작되자마자 경찰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시위대가 성조기를 펼치자마자 한 사복경찰이 그 위에 드러누워 온몸으로 소각을 막았다. 볼썽사납고 우스꽝스런 광경이었다. 이 장면을 본 한 교사는 “한국 경찰의 이런 태도는 시위대의 감정을 더욱 격앙시킬 것”이라고 혀를 찼다.


사진/ 압사사건으로 숨진 여중생 49재를 맞아 서울 덕수궁 앞에서 서울 덕수궁 앞에서 추모집회가 열렸다. (박승화 기자)


반미 시위는 계속됐다. 지난 11일에는 서울 대학로 등 전국 10개 도시에서 수천명이 반미 구호를 외쳤다. 12일과 13일에도 의정부 미2사단 앞과 서울 종묘공원에서 한국대학생총연합(한총련) 주최로 통일 행사를 겸한 대규모 반미 집회가 열렸다. 범대위의 집회 일정은 광복절 앞뒤로 빽빽하게 잡혀 있다. 특히 재판권 이양 최종시한인 21일에는 또다시 전국적으로 반미 시위가 예정돼 있다. 서명운동은 40만명을 넘어섰고, 성금도 1억원에 다가가고 있다. 범대위 최근호 상황실장은 “여중생들의 죽음이 단순한 분노를 넘어 반미 감정으로 이어졌는데, 재판권 이양 거부 이후에는 미군 철수 등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며 “올해 8·15를 ‘미국으로부터의 광복’으로 규정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재판권을 넘겨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미군은 좌불안석이다. 미군의 불안한 심정은 재판권 이양 거부선언 이틀 뒤인 지난 9일 미군 주둔사상 처음으로 한국 기자들을 용산기지로 초청한 데서 엿볼 수 있다. 지난달 29일 “일부 언론의 잘못된 보도가 한국 내 반미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언론에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주한미군이 ‘반미 감정을 부추긴 당사자들’을 자신들의 안방으로 초대한 것이다. 미군은 이날 지휘통제소를 공개하고 지휘소 회의실에서 현안을 브리핑하는 등 적극적으로 해명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과 대니얼 자니니 미8군사령관 등 미군 최고위층 10여명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미군은 여중생 유족들에게 다시 한 차례 사과했다. 한반도 군사정세와 서해교전 등에 대해서도 비보도를 전제로 했지만 자신들의 정보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전례없는 일이었다. 재판권 이양 거부 이후 더욱 격앙된 한국민의 반미 감정을 서둘러 진화하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하지만 미군의 이런 태도만으로 한국민의 반미 감정을 누그러뜨리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지나가는 시민들이 시위대에 박수를 보내고, 먹을거리를 싸다주는 모습은 마치 6월항쟁을 떠올리게 한다. 시위에 참여하는 나잇대도 고교생부터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고교생 조성훈(17·ㅎ고 2년)군은 “이번 사건을 보면서 미국에 대한 인상이 우리를 도와준 ‘좋은 나라’에서 ‘비겁한 나라’로 바뀌었다”며 “미래를 짊어진 청소년들의 시각이 바뀌고 있다는 데 미국은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녀노소 반미 대열… 아직 늦지 않았다

미국의 오판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불평등한소파개정국민행동’ 김판태 사무처장은 “한국민의 반미 감정은 과연 이 땅에 미군이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회의로 확산되고 있다”며 “미국 입장에서도 미군이 과연 재판권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현명한 판단인지 잘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내에서도 재판권을 고수하려는 주한미군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주한미군이 여중생 사망사고 관련자의 신병을 인계하라는 한국 법무부의 요구에 불응하며 재판권만 고집하는 바람에 미군 주둔을 지지했던 한국인들까지 격분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재판권’이라는 공은 여전히 미군이 지니고 있다. 한국 정부에 넘겨줄 수 있는 시간도 아직 남았다. 하지만 한국민은 공을 넘겨받으려고 미군을 압박하고 있다. 길지 않은 시간이 시한폭탄처럼 재깍재깍 소리를 내며 미군에게 다가가고 있다.

김동훈 기자/ 한겨레 민권사회1부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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