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08월01일 제420호 

한국경제 봄날은 갔나

경기부양책에 기댄 반짝 회복세 꺽여… 지표상 맑음에도 수출전선 등 먹구름 가득


사진/ (이용호 기자).


2002년 1월 초 미국의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기호전에 대한 낙관적 인 전망을 제시하고 있을 때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는 “미국경제가 2중침체를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4분기부터 시작된 경기회복 추세가 1분기까지 이어지다가 2∼3분기 때 다시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었다. 이 주장을 놓고 상당히 논란이 일었음에도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주가 때문에 경기회복의 환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불과 몇달이 지나지 않아 현실로 다가왔다. 5월 말부터 추락하기 시작한 주가가 폭락을 거듭하면서 이젠 미국인에게 테러와 같은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연말 10021.5이던 다우지수는 8천대로, 1987.26이던 나스닥지수는 1200대로 하락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인들이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직접적 계기는 미국기업들의 잇단 회계부정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미국기업의 실적이 알려진 것보다 좋지 않고, 경기회복 역시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경제 이중침체 여파 몰려와


사진/ 한국경제가 다시 기로에 섰다. 미국경제의 전망이 어두워 우리나라의 수출에도 차질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conomy21 황지희)


미국경제의 절대적인 영향권 안에 있는 한국경제 역시 다시 기로에 섰다. 종합주가지수는 지난 7월26일 심리적 저항선인 700이 무너졌으며, 코스닥지수 역시 60을 깨고 내려갔다. 700 부근에서 소폭의 등락을 계속하고 있지만 당분간 반등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기관투자가는 매수 여력이 없고, 외국인은 계속 자금을 빼가기 때문이다. 대우증권에 따르면 7월 말 현재 투신사들의 주식형 수익증권 주식편입비율은 75%에 이르고 있다. 주식혼합형 수익증권도 그 비율이 58%에 달해 신규자금이 들어오지 않는 한 주식매수를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뮤추얼펀드 자금이 7월22∼26일에 122억달러나 유출됐다. 외국인들은 뮤추얼펀드 자금이 빠져나가면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 주식을 팔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주식을 팔까? 주가상승으로 어느 정도 이익을 본 주식을 먼저 판다. 즉 아시아 국가 가운데 주가상승 폭이 가장 큰 한국 같은 나라다.

국내 주식시장의 자금흐름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7월22∼26일의 5일간 기관은 558억원을 순매수한 반면, 외국인은 7527억원을 순매도했고, 개인은 6605억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이 팔아치우는 물량을 개인이 받아내는 전형적 하락 장세의 모습이다. 바꿔 말해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이 중단되지 않으면 현재의 하락 추세를 막아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한국경제의 지표는 좋다. 경제연구소들도 하반기 성장세가 상반기보다 두드러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경기의 선행지표인 주가의 폭락은 하반기 경제가 그렇게 만만찮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한국경제 회복의 견인차는 소비였다. 저금리정책과 정부 재정지출 확대로 인한 소비진작 효과는 한국경제를 바닥에서 끌어올리는 데 적절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인해 개인의 자산가치가 커지면서 소비는 경제의 튼튼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한국은행도 이를 바탕으로 지난 7월 초 하반기 경제전망을 내놓으면서 상반기의 6.1%보다 높은 6.8%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년동기 대비)을 예상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7% 안팎을 예상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경기선행지수도 9.0(3월)→9.2(4월)→9.7(5월)로 향후 경제상황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던져주고 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지난해 말부터 올 초에 걸친 경기회복세가 정부의 적극적 경기부양책에 따른 것이었고, 이는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저금리→가계대출 증대→부동산가격 상승→소비증대로 이어지는 정부의 정책기조가 하반기에도 그대로 계속된다면 가계부실과 부동산 거품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 김기승 연구위원은 “저금리와 재정확대 등 정부 소비진작책 효과는 이제 자기 역할을 다하고 효력을 잃고 있다. 따라서 하반기에는 소비증가율이 크게 둔화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하반기에는 그동안 경기회복을 주도해온 건설투자 증가율이 크게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새로운 동력, 즉 수출이 살아나지 않고는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연구원은 “하반기 수출증가율을 전년동기 대비 20%까지 예상했지만, 현재와 같은 미국경기 침체와 원-달러 환율 하락이 지속될 경우 수출증가율이 10%대로 크게 둔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소비진작책 효과 한계 이른 듯

여기서 초점은 다시 미국경제로 돌아온다. 미국경제의 침체가 전 세계의 경기침체를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외형상 주가와 달러가치 하락이라는 두 가지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주가는 기업들의 회계부정 사건을 계기로 5월 말부터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지난 6월26일에는 미국 제2의 통신사업자 월드컴이 1분기에 7억9천만달러 규모의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치명상을 입었다. 달러가치도 연일 폭락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올 들어 10% 이상 하락했다.

주가와 달러가치의 동반 하락은 무엇을 말하는가? 전문가들은 정보기술(IT)산업의 성장을 바탕으로 미국경제가 지난 10년간 누려온 호황의 거품이 빠지는 것으로 분석한다. 과다한 소비와 투자는 과잉생산·과잉설비를 야기했고, 가계와 기업의 부채는 늘어났으며, 달러화의 고평가로 경상수지는 악화돼왔다. 누적되는 경상수지 적자를 메운 것은 국제투자자금의 유입이었다. 이미 생산과 소비가 과잉단계에 진입했는데도 국제 투자자본이 계속 유입되면서 달러화 강세를 유지하고 주가 상승세를 이끌었던 것이다. 이는 물론 물가안정과 소비증가를 지속시키면서 장기호황을 유지해온 비결이기도 하다. 최근의 주가와 달러화 폭락은 이러한 미국경제의 근간을 뒤흔들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사슬처럼 연결된 경제 시스템의 한 축이 무너지면서 미국 전체가 흔들리는 형국이다.

미국도 한국처럼 경제지표는 그리 나쁘지 않다. 미국은 1분기에 국내총생산이 지난해 4분기 대비 6.1%(이하 연율)라는 고도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이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민간소비는 1분기에 지난해 4분기 대비 3.2% 성장했으나 설비투자는 -8.4%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951억달러이던 경상수지 적자는 1분기에 1125억달러로 확대됐다. 자본수지 역시 마찬가지다. 주식·채권 등 미국에 대한 국제 투자자금 유입이 올 들어 현저히 줄어들었다. 게다가 2분기 경제성장률은 1분기보다 낮은 2.1%(연율)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소비만 살아 있을 뿐 생산부문에서 과잉설비 해소를 통한 기업수익 향상이 이뤄지지 않으며, 회계부정을 계기로 투자자금이 빠져나가는 금융위기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수치상 경기회복은 착시현상일 뿐



이런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앞날을 쥔 수출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을까? 한국은행은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전년동기 대비 수출증가율이 3분기 13.3%, 4분기 13.8%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는 세계경제의 완만한 회복을 전제로 한 것이다. 미국경제 전망은 누적된 과잉설비와 금융위기로 여전히 어둡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난 7월17일 “미국경제가 올해 3∼3.75%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실제 경제성장률이 2∼3%에 머물 전망이다. 유럽은 더 어렵다. 유로화 강세라고 하지만 예상되는 경제성장률은 1∼2% 정도이며, 기업들의 인원감축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달러가치 하락이라는 악재가 여전히 버티고 있다. 외환 전문가들은 최악의 경우 원-달러 환율은 1100원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제지표로 보는 전망과 실제 경제환경을 통해 본 전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셈이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수출이 전년동기 대비 19.7% 감소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하반기 수출증가율이 10% 이상이 되지 않으면 전년도의 부진한 실적을 배경으로 한 수치상의 경기회복, 다시 말해 착시현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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