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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이슈추적 | 등록 2002.07.17(수) 제41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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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정권 뒤흔든 ‘엽기 차남들’ 홍업씨와 현철씨의 판박이 비리행각… 5년 주기의 ‘대통령가 비극’ 신물난다
“거 참, 어쩜 그리도 닮았을꼬.” 5년 전 김영삼 대통령의 둘째아들 현철씨를 수사한 검찰 관계자가 지난 7월10일 김대중 대통령의 둘째아들 홍업씨 비리사건에 대한 검찰수사 발표 내용을 접하고 한 말이다. 당시 현철씨의 죄목은 이권개입의 대가로 32억2천만원을 받고(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활동비조로 받은 33억9천만원에 대한 세금 14억800만원을 떼먹었다는 것(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이었다. 이번에 구속기소된 홍업씨에게도 각종 청탁과 함께 25억8천만원을 받고, 활동비조로 받은 22억원에 대한 세금 5억8천만원을 포탈한 혐의 등이 적용됐다. 현철씨에게는 적용되지 않은 변호사법 위반죄 등 3개가 추가됐지만, 핵심 범죄가 알선수재와 조세포탈이라는 점은 ‘두 차남’이 똑같다.
조성액수는 현철씨, 활동범위는 홍업씨
대선자금을 직접 조성해 관리하고, 동문 기업인 등한테서 ‘뒷돈’을 받아 챙긴 것이며, 자금출처를 감추기 위해 돈세탁을 했다가 증여세 포탈혐의로 발목이 잡힌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른바 ‘대선자금’ 등 비자금 조성액수는 현철씨가, 청탁 활동범위는 홍업씨가 ‘우위’를 점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철씨는 1992년 대선 때 사조직인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나사본)를 운영하며 12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이 가운데 검찰이 찾아낸 50억원을 뺀 나머지 70억원은 선거 여론조사비나 활동비 등으로 썼다고 주장했다. 홍업씨는 선거홍보기획사 ‘밝은세상’을 운영하며, 96년 총선 때 6억원, 97년 대선 때 11억원 등 모두 17억원을 정치인과 ‘지인’ 등한테서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홍업씨는 이 가운데 8억원을 여론조사비 등으로 쓰고 9억원을 남겼다고 했다. 또 현철씨는 대선잔금 70억원을 친구인 박태중씨를 시켜 세탁한 뒤 옛 안기부 운영차장이던 김기섭씨에게 맡겨 관리했다. 홍업씨도 친구인 김성환씨와 전 아태재단 행정실장 김병호씨 등을 통해 33억원의 비자금을 세탁한 것으로 밝혀졌다. 기업체 청탁과 관련해 홍업씨가 ‘입김’을 넣은 관계기관은 핵심 권부인 청와대를 비롯해 검찰·국세청·예금보험공사·신용보증기금 등 실로 광범위했다. 반면 현철씨는 당시 공보처 종합유선방송사업자 선정이나 동문 기업인의 민사소송 해결 등에 관여한 정황만 드러났을 뿐 유관기관에 로비한 활동내역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게 없었다. 물론 현철씨의 경우 YTN 등 방송사와 정·관계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소통령’의 권세를 톡톡히 누리면서도 범죄혐의로 이어질 여지가 있는 대목은 대부분 비켜나갔다. 이에 반해 홍업씨는 사사로운 ‘민원’을 해결하는 일까지 대통령 아들이라는 ‘후광’을 이용했다. 더욱이 그의 위세를 빌린 고교동기 김성환씨와 유진걸씨, 대학후배 이거성씨 등 측근들의 각종 추저분한 이권개입을 사실상 묵인한 행태는 그에 대한 일말의 ‘기대’마저 허물어뜨렸다. 여기에 전·현직 국정원장들한테 ‘떡값’ 명목으로 수시로 돈을 받고, 심지어 현대·삼성 등 재벌기업들에게서 정기적으로 거액의 ‘활동비’를 타다 쓴 사실은 국민의 공분을 배가시켰다. 검찰수사 결과 홍업씨는 임동원 전 국정원장한테서 2500만원, 신건 현 국정원장한테서 1천만원의 ‘용돈’을 타 썼다. 이와 별도로 임동원 원장 재직시절 아태재단 연구지원비조로 5천만원을 받기도 했다. 검찰은 “이 중 5천만원은 2000년 초 아태재단이 ㅎ통신 등의 대북 통신사업 관련 연구용역을 받아 작성한 보고서를 국정원에 제공한 대가로 받은 것으로, 두 기관에서 정상 회계처리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의 보고서는 이미 ㅎ통신 등이 정보통신부 등 유관기관에 공짜로 배포한 공개자료였던 것으로 드러나, 돈의 성격에 대한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말 국정원장은 개인 돈을 줬을까
전·현직 국정원장이 홍업씨에게 준 ‘떡값’ 역시 국정원 발행 수표로 인출된 정황 등으로 미뤄 “신건 원장 등이 개인 돈으로 줬다”는 국정원 쪽 해명과 달리 판공비 등 공금에서 나온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국정원 돈’을 둘러싼 논란과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 아태재단 행정실장 김병호씨의 ‘국정원 돈 5억쯤? 1억짜리도’라는 메모 때문이다. 한마디로 검찰이 발표한 8500만원 이외에 더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를 신문한 수사관이 국정원에서 건너온 돈 액수를 대충 넘겨짚어 떠본 것을 김씨가 메모지에 적어놓아 오해를 부른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홍업씨 수사발표를 앞두고 ‘검찰과 국정원 간 빅딜설’이 떠돌았다. “국정원 쪽이 검찰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히든 카드’를 무기로 검찰과 물밑협상을 벌여, 98년께 홍업씨 쪽에 건너간 국정원 돈 수억원을 발표대상에서 빼기로 했다”는 게 ‘빅딜설’의 요지다. 이에 대해 검찰과 국정원은 모두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일이 가능하겠느냐”며 펄쩍 뛰었다. 사실 이런 ‘낭설’이나 ‘음모론’은 으레 권력형 비리사건 때마다 한두개씩 불거져나오는 것이긴 하나, 문제는 “실상을 부풀리긴 했을 테지만 뭔가 있긴 있었던 것 아니냐”고 의심하게 하는 간접정황이 전혀 없지 않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수사팀의 한 관계자가 “국정원 사람들 정말로 집요하더라”고 토로한 것과 국정원 쪽에서 대검 고위간부에게 전화한 사실이 출입 기자들에게 우연히 적발된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과 눈길은 이보다는 홍업씨의 ‘엽기적인’ 재산관리 실태에 금세 모아졌다. 대기업에서 헌 수표로 받은 10억원을 아파트 베란다 창고 안에 숨겨놓고, 그것도 모자라 창고 앞에 가구를 ‘엄폐물’로 쌓아놓았다는 얘기는 장안의 화젯거리가 됐다. 홍업씨는 이 돈을 나중에 16개 차명계좌로 분산 예치했다가 다시 100만원권 자기앞수표로 바꿔 사용하는 등 철저하게 세탁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서울 홍은동의 허름한 아파트에 세들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홍업씨가, 매매가가 16억원대에 이르는 83평형짜리 최고급 아파트를 강남에 소유한 것으로 드러나자, 국민의 분노는 이내 허탈감으로 변했다. 전망 좋은 23층 꼭대기에 자리해 이른바 ‘펜트하우스’라고 불리는 이 아파트는 양 옆에 베란다가 있고, 이탈리아산 천연 대리석으로 깐 거실바닥과 도금한 수도꼭지·샤워기 등으로 화려하게 단장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검찰수사 발표를 코앞에 두고 청와대 쪽이 송정호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수사 지휘권을 발동해서라도 홍업씨가 구속되는 일만큼은 피하게 해달라”고 종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파란이 일었다. 송 장관이 이를 완곡히 거절하자 청와대의 한 핵심 인사가 송 장관에게 “조직 장악력이 떨어진다”고 하는 등 심한 면박을 주고, 경질설까지 흘리고 다닌 것으로 전해지면서 파문이 번져나갔다.
‘펜트하우스’ 소유하고 서민생활
결국 지난 7월11일 옷을 벗은 송 전 장관은 이임사에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를 치러 가는데 길을 내주라”는 왜장의 말에 “싸워서 죽는 것은 쉬우나 길을 내줄 수는 없다”고 한 동래부사 송상현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그간의 ‘고충’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이에 앞서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 5월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직원 등이 검찰조사를 받다 지병이 도져 병원에 입원한 홍업씨 측근 유진걸씨에게 ‘검찰 강압수사 폭로’를 권유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외압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며 장장 100여일간 진행된 홍업씨 사건 수사는 검찰의 공소제기로 일단락됐고, 이제 ‘공’은 재판부로 넘어갔다. 5년 주기로 되풀이되는 ‘대통령가의 비극’은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 될는지, 12월 대선을 목전에 둔 국민의 심경은 착잡하기만 하다.
하석 기자/ 한겨레 민권사회2부hgrh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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