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07월10일 제417호 

독배를 드는 검찰의 결단

전·현직 수뇌부의 부적절 교류 단죄… 조직문화 혁신의 계기 삼을 건가


사진/ 검찰사에 또 한번의 ‘검치일’을 남기는 주인공들. 지난 7월6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청사에 들어서는 신승남 전 검찰총장. (김종수 기자)


태풍 ‘라마순’이 온 나라에 비를 뿌리던 지난 7월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사는 바다 한가운데서 곧 닥칠 태풍을 기다리는 어선처럼 팽팽한 긴장감에 짓눌려 있었다. 다시 한번 검찰 스스로의 칼로 검찰을 겨눠야 하는 순간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신승남 전 검찰총장과 김대웅 광주고검장이 ‘이용호 게이트’의 파생 게이트인 이른바 ‘검찰 게이트’에 연루되어 후배 검사들한테 신문을 받기 위해 대검청사를 밟는 날이었다. 검찰은 예우상 두 사람을 ‘참고인’ 또는 ‘피내사자’라고 불렀지만, 실상 이들은 수사기밀을 유출한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신분이나 다름없었다.

‘검찰 게이트’ 사법처리로 환골탈태


사진/ 4월25일 수사기밀 유출 혐의로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는 김대웅 광주고검장. (한겨레)


오전 10시께 먼저 김 고검장이 검정색 승용차를 타고 청사 안마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지난 4월 말 한 차례 조사를 받은 그는 70여일 만에 다시 카메라 기자들이 그어놓은 포토라인 앞에 섰다. 얼굴 피부가 까무잡잡한데다 의리를 중시해 곧잘 수호지에 나오는 ‘흑선풍’에 비유되는 그는 질문 공세를 퍼붓는 취재진에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조사실로 향했다.

7시간 뒤인 오후 5시께, 이번에는 신 전 총장이 청사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6개월 전 동생 승환씨가 이용호씨 사건과 관련해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되며 불명예 퇴진한 그였다. 비수 같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동안에도 특유의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썼지만 착잡함이 묻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마중나온 대검 관계자들과 낯설지 않은 취재진들에게 “오랜만이오. 토요일 오후에 고생시켜서 미안합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기자들이 소회를 묻자 “소회는 무슨 소회”라고 웃어넘긴 그는 김종빈 중수부장과 자신을 조사할 이재원 중수 3과장이 기다리는 7층으로 향했다.

한때 1100여명의 대한민국 검사를 총지휘했던 전직 검찰 총수,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검 중수부장과 서울지검장을 지낸 현직 고검장이 몇 시간 시차를 두고 나란히 검찰 소환조사를 받으러 온 것이다. 이로써 두 사람은 검찰사에 또 한번의 ‘검치일’을 남기는 주인공이 됐다.

문제의 발단은 두 사람과 홍업씨 쪽 사람들 사이의 ‘부적절한 교류’였다. 신 전 총장과 김 고검장이 함께 연루된 ‘이용호씨 사건’ 수사기밀 유출의혹이나 신 전 총장만 개입된 검찰수사 무마의혹 등의 뿌리는 모두 홍업씨 쪽과 맞닿아 있다. 먼저 수사기밀 유출의혹 사건은 차정일 특검팀의 ‘이용호씨 사건’ 수사과정에서 처음 불거졌다.

지난해 11월 대검 중수부가 이씨 사건을 수사할 당시 전 서울시정신문 회장 도승희(구속)씨가 이씨한테 5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들춰냈는데, 이 내용이 그대로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에게 흘러나갔다는 것이다. 이 돈은 이씨가 도씨를 통해 자신의 회사에 대한 금감원 조사를 무마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이수동씨에게 건너간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특검팀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대검 중수부의 수사가 본격화한 지난 4월10일 밤 9시30분께 당시 대검 석동현 공보관은 긴급 브리핑을 통해 충격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이수동씨가 조사과정에서 “수사기밀 유출의 장본인은 김 고검장”이라고 진술했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같은달 24일 김 고검장을 소환조사하는 등 마치 당장 사법처리라도 할 듯이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그날 이후 어찌된 영문인지 검찰수사는 제자리 걸음을 계속했다. 언론 브리핑을 맡고 있는 박만 수사기획관은 매일 “아직 기록 검토가 덜 끝났다”거나 “보강조사가 더 필요하다”라고 할 뿐 수사상황에 대해 말을 극도로 아꼈다.

그 속사정은 그로부터 두달여가 지난 최근 이수동씨가 “김 고검장이 신 전 총장한테 수사정보를 듣고 내게 알려줬으며, 당시 신 전 총장과도 직접 통화를 했다”고 진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드러났다. 검찰은 그동안 전직 총수인 신 전 총장의 조사 여부를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온 것이다.

수사기밀 유출한 피의자로 검찰 출두


사진/ 검찰의 위기를 불러일으킨 G&G그룹 회장 이용호씨.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 이수동씨는 이용호씨 관련 수사정보를 검찰 수뇌부를 통해 빼냈다. (한겨레)


그런 와중에 홍업씨 쪽의 검찰수사 무마 청탁의혹이 불거져나왔다. 홍업씨 측근 김성환씨 등이 지난해 서울지검이 수사하던 새한그룹 전 부회장 이재관씨의 무역금융사기 사건과 울산지검이 내사하던 평창종건의 뇌물공여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수사 무마 청탁을 해주고 이씨 등한테서 거액의 사례비를 챙긴 정황이 수사팀에 잡힌 것이다.

곧이어 홍업씨가 김성환씨를 통해 ‘검찰 고위간부’에게 수사 무마 청탁을 했고, 평창종건에 대한 검찰 내사가 석연치 않은 과정을 거쳐 중단된 사실 등이 잇따라 언론에 보도됐다. 검찰은 검찰대로 당시 이들 사건을 수사한 주임검사와 부장급 검사 등을 줄줄이 소환해 ‘윗선’의 외압 여부 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검찰 게이트’란 용어가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당연히 검찰 안팎의 관심은 문제의 ‘검찰 고위간부’가 누구인지에 모아졌다. 검찰 내부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신 전 총장의 이름이 조심스럽게 입길에 오르내리던 터였다. 결국 지난 3일치 신문에 신 전 총장의 실명이 활자화됐고, 다음날에는 신 전 총장이 수사 무마 청탁건과 별도로 이수동씨 수사기밀 누출 사건에도 연루됐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급기야 수사기밀 누설의 주체가 그동안 알려진 것과 달리 김 고검장이 아닌 신 전 총장임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불거졌다.

검찰은 지난 5일 신 전 총장과 김 고검장의 동시 소환조사 계획을 발표했다. 김 고검장은 출두 당일 비교적 이른 시간인 밤 9시45분께 청사를 나섰으나, 신 전 총장에 대한 조사는 7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검찰 관계자는 앞서 “김 고검장은 주임검사와 ‘대화‘를 잘 나누고 있다”고 말해, 김 고검장이 신 전 총장의 개입 정황 등을 순순히 털어놓았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신 전 총장은 “아는 사람의 부탁을 받고 사건개요를 알아봐준 정도까지 문제삼으면 안 걸릴 검사가 어디 있느냐”며 강하게 항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 소환조사에 앞서 이미 신 전 총장 등을 사법처리하는 데 별 무리가 없을 만큼 충분한 정황증거와 관련자 진술 등을 확보해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의 진술은 사법처리 수위를 조율하는 참고사항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재 검찰’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엄정 처리를 요구하는 일반 여론과 불구속 기소 처리를 주문하는 검찰 한쪽의 목소리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적지 않은 후유증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이명재 검찰총장 다음 서열인 이종찬 서울고검장이 신 전 총장 등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수뇌부가 언론에 떠밀려 제 식구를 제물로 삼으려 한다”며 이 총장을 찾아가 ‘직언’을 하려다 주변의 만류로 발길을 돌린 것으로 전해지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런 기류와 정반대로 “식구 문제라 적잖은 고통이 따르겠지만 법과 원칙에 따라 두 사람을 단호하게 처리해야 검찰이 산다”며 ‘정면돌파’를 주장하는 검사들의 목소리도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명재 검찰’은 재도약 이뤄낼까

상황이 이쯤 되자 말없기로 유명한 이 총장이 말문을 열었다. 그는 8일 오전 간부회의 자리에서 “우리 검찰은 항상 시련과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도약과 성장을 거듭해온 전통을 갖고 있다. 우리 모두 선배들이 물려준 훌륭한 전통을 바탕으로 화합과 단결로 검찰의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 나가자”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발언은 ‘검찰 게이트’ 수사에 대한 견해 차이로 분열 양상을 드러낸 조직의 화합을 촉구하는 한편, 이번 사건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해 검찰 위상을 새롭게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됐다. 검찰의 위기가 나락으로 이어질지, 이 총장의 바람대로 재도약의 전기가 될지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하석 기자/ 한겨레 사회2부 hgrhs@hani.co.kr







.




↑Back to th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