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07월10일 제417호 

태극기가 흐느낀다

궤도차랑 압사 관련 꼬리문 미군의 거짓말… 재판권 이양돼야 철저한 진상규명 가능


사진/ 미군들은 훈련을 내세워 광란의 질주를 계속했다.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천2리 마을 어귀에 도로 확장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빗물은 아스팔트 위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쓸어가 버리려는 듯 거세게 언덕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결코 씻어내지 못하는 표지가 거기엔 있었다. 지난 6월13일 미군 제2사단 공병대대 44공병대 소속 부교운반용 궤도차량인 브래들리 장갑차(AVLM)에 깔려 숨진 여중 동급생 신효순(14·조양중 2), 심미선양의 쓰러진 자리를 알려주는 흰색 페인트 표지였다.

사건발생 23일, 진실은 오리무중

태풍 라마순의 영향으로 온 나라에 비가 뿌린 지난 7월5일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천2리 56번 지방도로 언덕길. ‘RP3’, ‘RP4’라고 적힌 사건현장의 표지는 빗줄기가 거셀수록 오히려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신양과 심양은 바로 그 자리에서 수십t 무게의 궤도차량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온 부모들은 처음에 짓이겨진 그들의 모습을 보았을 땐 자식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날 어린 그들을 갑작스레 덮쳤을 막막한 공포의 서늘한 기운이 아직도 표지엔 배어 있는 듯했다. 감출 수 없는 진실을 끝내 드러내려는 힘겨운 의지가 그것에서 느껴졌다.

그들의 비명소리가 궤도차량의 굉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듯, 압사사건의 진상도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미군은 사건 발생 6일 만인 6월19일 미2사단 사령부에서 공식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미군은 “당시 사고는 전술평가를 위해 실시한 한국군 부대와의 연합훈련 도중 발생한 것이다. 사고 당시 차량은 시속 8∼16km의 속도로 진행하다가 학생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사고를 낸 것이다”라고 밝혔다.

길은 걷기에 무척 위태로웠다. 차들은 빗길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차들이 옆으로 지날 때마다 모래흙이 섞인 빗물이 튀어 바지를 적셨다. 트럭이나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칠 때면 아찔한 속도감에 몸이 절로 움찔해왔다. 사고지점의 편도 차로 너비는 넓은 곳이 3.31m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이곳 도로는 따로 인도가 없다. 바깥쪽 흰색선 옆으로 난 포장 갓길의 너비는 30∼40cm에 지나지 않는다. 그날 두 여중생도 똑같이 이 길을 걸어 죽음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을 것이다.

주민들은 “대형 차량들이 지날 때 보행자가 있으면 중앙선을 침범해 비켜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주민 강신옥(76)씨는 “길을 가다 차를 피해 길 옆 고랑으로 뛰어내린 적이 몇번이나 된다. 특히 미군 장갑차는 워낙 커서 더욱 가슴을 졸이게 한다”고 말했다. 사고를 낸 미군 궤도차량의 너비는 무려 3.65m. 차로 너비를 34cm나 초과한다.

오랜 세월 이 길 위로 미군 궤도차량들은 ‘질주’했다. 주민들의 생명은 일상적으로 그 속도의 경계에서 오갔다. 도로 옆 덕도주유소 지광수(38)씨는 “평소에도 미군 탱크들은 시속 50km 속도로 쌩쌩 지나간다. 국군도 탱크 훈련을 하지만 차량통제를 하고 서행하는데 걔들은 막 달린다”고 말했다. 지씨뿐 아니라 많은 주민들은 미군 궤도차량을 구분 없이 탱크 또는 장갑차라고 불렀다. 그는 “미군 탱크가 버스와 맞물려 지나다가 확 바깥쪽으로 방향을 트는 바람에 주유소 쪽으로 올라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현장 목격자 증언마저 부인하는 미군


사진/ "이 땅이 뉘 땅인데 살인을 허가받았다 하는가." 궤도차량 사고로 목숨을 잃은 심미선양의 할머니가 손녀의 사진첩을 바라보고 있다.


사건 발생 지점 200m 전 아래쪽 길가에 자리잡은 (주)경성기계 직원들은 미군 차량의 과속과 격렬한 운전 행태를 똑같이 지적했다. 박문성(31)씨는 “특히 사고가 난 날은 미군 탱크들이 차보다 빨리 내달렸다. 우리끼리 ‘전쟁난 것 아니냐’, ‘저러다 뭔 일 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선용만(36)씨는 “공장 앞 커브길을 과속으로 내달리다 공장 마당까지 들어와 불안한 적이 많았다. 민원도 넣어봤지만 미군엔 안 먹혔다”고 말했다. 주민 임귀순(72)씨는 “미군 장갑차 다니는 소리가 1km 넘게 떨어진 마을 안쪽까지 ‘쾅쾅’ 하고 들려왔다”고 말했다.

미군 쪽은 주민 증언을 부인하고 있다. 미군은 사고조사 발표에서 “사고 당시 8∼16km의 정상 속도로 달렸지만 운전병이 브레이크를 밟은 뒤에도 차량의 중량과 속도 때문에 어느 정도 앞으로 이동해 피해자들을 치게 됐다”고 밝혔다. 미군의 발표는 의혹과 의문의 정교한 구조물로 보였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미군 장갑차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이하 범대위)와 함께 6월29일 사건현장에서 독자적인 진상조사를 벌였다. 진실은 미군 발표문 바깥에, 민변이 조사하는 현장 안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민변은 이날 조사를 토대로 7월3일 진상조사 중간발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군 쪽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민변은 먼저 미군 쪽의 명백한 거짓발표 사례를 폭로했다.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위원장 이석태 변호사는 “미 제2사단은 지난 6월19일 조사결과 발표 당시 대한민국 경찰, 군범죄수사대 및 미 육군 안전부서와 더불어 철저한 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으나, 13일 사건 발생 직후 미군은 미군 의무관에게만 연락하였을 뿐 한국 경찰에는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철저한 한-미 군경 합동조사를 실시했다는 미군 발표는 명백한 거짓”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또 교통사고 전문가의 분석을 토대로 궤도차량의 속도를 추정해냈다. 이 변호사는 “궤도차량이 시속 16km로 달릴 경우 제동거리는 아무리 길어도 1m를 넘지 않는다. 그러나 뒤에서 걷던 심미선양뿐 아니라 앞에서 걷던 신효순양의 머리까지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파열된 것으로 보아 미군이 발표한 궤도차량의 속도는 전혀 타당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제동을 늦게 걸었거나, 미군의 공식발표와 달리 최소한 시속 30∼40km 이상의 속도로 달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궤도차량 속도는 시속 30∼40km 이상”


사진/ 지난 6월13일 두 여중생이 브래들리 장갑차에 압사한 현장에서 미군들이 사고를 수습하고 있다. 이 사진은 당시 구급차 기사가 현장에서 촬영했다.


사고 당시 장갑차량 운전병이 피해자들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미군 발표상의 정황에도 몇 가지 중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이 변호사는 미군 조사 발표가 △왜 사고차량 운전병이 피해자들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왜 사망 여중생들을 사전에 발견한 선임 탑승자가 운전병에게 제때 경고를 전달하지 못했는지 △사고 차량 앞에서 운행 중이던 2대의 미군차량에 탄 미군들은 어떻게 사고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는지 등의 의문점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미군 장갑차량이 사고 당시 좁은 길을 서로 마주쳐 지나가다 사고를 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구체적으로 표명했다. 미 2사단이 그동안 이 문제와 관련해 두 차례 말을 바꾼 것이 의혹을 증폭시켰다. 미군은 지난달 14일 현장조사 때 “맞은편 장갑차는 차량 행렬의 선두에 선 차량이 가다가 되돌아온 것으로 사고지점 도착시간이 사고발생 이후라서 이번 사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족들이 왜 선두차량이 되돌아왔는가를 묻자 6월19일 발표에선 “다른 부대의 장갑차이며 교행하지 않은 채 1m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고 밝혔다.

민변은 이에 대해 “이번 사건의 사고차량은 사고지점 15m 앞에서부터 도로 바깥쪽 흰색 실선을 지나 70∼80cm가량 바깥쪽 갓길을 운행한 것으로 보인다. 사고차량이 빠른 속도로 마주오는 장갑차 행렬과 교행하기 위해 바깥쪽 갓길로 진행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은 사건 초기부터 “미군 장갑차가 마주오던 장갑차와 충돌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여중생들을 보고도 갓길 쪽으로 차를 몬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이석태 변호사는 “마주오던 장갑차가 실제로 교행했는지 여부를 재조사하지 않으면 진실은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갑차 교행 여부 재조사해야 한다”


사진/ "미국은 재판권 넘기고 공식사과하라." 지난 6월29일 미 2사단 캠프에서 미군 만행 규탄대회가 열렸다.


길 곳곳엔 소리 없는 아우성이 가득했다. 지역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내건 10여장의 현수막이 비바람을 맞으며 외치고 있었다. “미군 탱크로 어린 여중생을 무참히 살인한 미국놈은 국민에 사죄하고 이 땅을 떠나라. 효촌2리 부녀회 청년회 주민일동.”, “우리 귀여운 딸 여중생을 죽인 미국은 공개 사죄하라. 광적농협 회장단.” 현수막 구호에선 미군의 오만에 대한 주민의 분노가 점점이 배어났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외침은 구호가 아니었다. “목격자를 찾습니다.” 범대위의 현수막은 6월13일 사고현장을 목격한 이를 찾는다는 간절한 요청을 담아 흔들리고 있었다.

미군은 일단 공식 사과를 표명했다. 7월4일 라포트 주한미사령관은 성명을 통해 “미 육군이 이 비극적인 사고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며,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슬픔을 안긴 두 여학생들의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7월5일엔 사고운전병 마크 워커와 선임탑승병 페르난도 니노를 과실치사죄로 미 군사법원에 정식기소했다. 또 이들이 우리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한국 법무부에 밝혀왔다.

그러나 유가족과 주민, 시민단체들의 분노와 의구심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범대위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선 미군의 협조에 의존하는 소환조사로는 부족하며 미군으로부터 재판권을 넘겨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범대위 김종일 위원장은 “미군 사병의 군사법원 기소는 공무 중 사건의 재판권을 한국에 넘겨주지 않고 직접 재판한다는 미군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지금까지 미군이 직접 진행한 재판에서 미군 범죄가 제대로 처벌받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검찰이 주한미군을 상대로 사고경위 등을 조사한 뒤 이를 토대로 미군의 자체 조사 결과의 정당성을 판단해 7월11일까지 재판권포기 요청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미군을 상대로 한 재판권포기 요청 시한은 애초 사건발생 21일째가 되는 7월5일로 알려졌지만, 미군이 6월20일에야 사건 관련 공무증명서를 보내와 요청기한이 늘어났다. 그러나 7월8일 서울지검 의정부지청에 출석해 조사를 받기로 한 두 사람은 이날 ‘신변위협’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국민들의 분노, 성조기는 대답하라

분노는 갈수록 함성으로 울려퍼지고 있다. 범대위는 7월8일 오전 의정부지청 앞에서 사고 미군을 한국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한 뒤 검찰 관계자 면담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또 의정부시 미군 2사단 앞에서는 모두 4차례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7월4일 3차대회에 500여명이 참여한 집회 대열은, 7일 4차대회에선 1천여명으로 늘어났다.

가수 김장훈씨는 3차대회에 참석해 성금 1천만원을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그는 “한 시민으로서 신문을 보고 하도 열이 치밀어 달려왔다”고 말했다. 서혜윤(12·효천초등 6년)양은 “겁나는 탱크가 안 다녀 안심하고 학교에 오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 직전 역시 미 2사단 고압선에 감전돼 숨진 고 전동록씨의 큰아들 전민수씨도 집회에 참가했다. 그는 “지금 우리는 우리 땅에서 미군이 더 이상 우리나라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 없도록 만드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범대위는 줄기차게 “재발 방지 및 미군의 형사재판 관할권 이양과 미군 최고책임자인 부시 대통령의 공식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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