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07월03일 제416호 

북한 군부는 모험에 사나

실익 없는 기습 공격 배경 오리무중… 충성경쟁이 빗은 우발적 사건일 수도


사진/ 북한은 무엇을 노리고 서해교전을 일으켰나. 지난 99년 6월15일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우리 해군 고속정(왼쪽)과 북한 경비정이 충돌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대체 북한은 무엇을 노리고 ‘기습 공격’이라는 무리수를 둔 걸까.

이번 서해교전이 북의 선제공격으로 촉발됐다는 데 이의를 다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북한 당국은 “남조선의 선제공격에 따른 자위적 조치”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속속 드러나는 교전 당시 관계자의 증언이나 정황은 북쪽의 의도된 군사행동으로 비치기에 충분해 보인다. 북한 해군이 처음부터 아예 작심하고 불 속으로 뛰어든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는 얘기다. 평소와 달리 남쪽 해군의 경고방송에 대해 위협사격이 아닌 정조준 함포 사격으로 다수의 사상사를 낸 것은 죽기를 각오한 자살테러와 다름없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어떤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이런 무모한 군사행동을 했을 리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목적이 무엇일까. 한국 군이나 정보 당국에서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감조차 잡을 수 없다는 답답함을 호소할 정도다.

무모한 공격인가, 의도된 설욕인가

월드컵 막판 시기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월드컵 교란책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이는 북쪽 당국이 월드컵 기간에 보여준 태도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한국전을 비롯해 월드컵 주요 시합장면을 며칠간에 걸쳐 녹화 방영했다. 이뿐 아니라 한국팀의 선전에 공개적으로 박수를 보낼 정도로 월드컵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냈다. 아리랑축전을 남쪽 당국이 외면한 데 대한 화풀이로 총격전을 벌였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아리랑축전이 아직 끝난 게 아닐뿐더러, 물밑에서는 남북한 당국 사이에 이 문제를 놓고 한참 의견 조율이 진행되고 있던 터다. 월드컵 이후를 대비해 남쪽 관광객의 안전보장과 방북절차 문제 등을 협의해온 것이다.

3년 전 서해교전에서의 패배에 따른 북한 해군의 보복공격설도 그럴듯하게 흘러나온다. 이 대목과 관련해서도 일부 전문가들은 선뜻 동의를 하지 않고 있다. 한국군의 사상자가 25명에 이르고 있으나 북한 해군이 입은 피해는 30명이 넘을 것이라는 게 군 당국의 자체 분석이다. 50여명의 군인이 승선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 경비정은 화염에 휩싸인 채 다른 경비정에 예인돼 돌아갔다. 한국 해군은 이번 교전에서 초계함 2척과 고속정 6척 등 모두 8척의 함정으로 북한 경비정 1척을 겨냥해 수천발의 총·포탄을 퍼부었다. 이 경비정은 격침되지는 않았으나 그 피해 정도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허술한 적전 등 의문 투성이


사진/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남북이 20여분 동안 교전을 벌였다. 합동참모본부 이상희 작전본부장이 교전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북한 해군이 이번 싸움에서 승리해 비로소 설욕을 했다고 자신 있게 주장하기에는 누가 봐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이는 북한 관영매체의 여러 보도내용을 통해서도 감지할 수 있다. 승리를 자축하는 대목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교전에서의 손실을 인정하고 있다. 북한 해군이 3년 전 서해교전 때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치밀하게 작전을 세웠다면 이렇게 허술하게 덤볐을 리 없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 서해교전에서 이미 남쪽 해군의 막강한 화력을 경험한 바 있는 북한군이 경비정 몇척으로 명예회복을 꾀했다는 게 납득이 잘 안 간다는 얘기였다.

7월 둘쨋주에 열릴 예정인 북-미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부시 행정부에 뭔가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는 주장도 있다. 북한 당국이 월드컵으로 국제적 이목이 쏠린 이참에 서해 5도 일대가 분쟁지역이란 점을 부각시켜 미국과의 대화에서 정전협정 문제를 쟁점으로 만들 의도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북한 해군사령부 대변인도 6월30일 <조선중앙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방한계선은 1950년대 제멋대로 그어놓은 비법적 유령선으로, 우리(북한)가 한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는 것은 세상이 아는 사실”이라면서 “남조선 당국자들은 북방한계선의 비법성부터 인정해야 한다”고 밝혀 북한 군당국의 속셈을 일부 내비쳤다.

하지만 서해 북방한계선 무력화가 북한 당국의 당장 시급한 과제라고 보기에는 뭔가 미심쩍다. 정보 당국의 한 관계자는 “지금이 외화벌이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꽃게잡이 철이긴 하나 유혈충돌까지 감수하면서 북방한계선 무력화 시위를 벌일 적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달러 몇푼을 더 벌기 위한 꽃게잡이 때문에 북한 체제의 신뢰나 위상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모험을 감행했다는 분석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북한 대남 군사행동 일지
1988년 2월2일 공동경비구역(JSA) 북한군 1명 2차례 월경
3월12일 북한군 12명 군사분계선(MDL) 40∼50m 월경 침범(한국군 경고방송 2차례, 경고사격 20여발)
6월12일 북한군 경계초소(GP)에서 한국군 GP 겨냥해 자동소총 4발 발사
6월22일 속초 동방 11.5마일 해상에서 북한 유고급 잠수정 1척(주검 9구 발견)
7월12일 동해시 해안에서 무장간첩 주검 1구, 침투용 수중추진기 1대 발견
12월18일 여수 앞바다 침투 북한 반잠수정 1척 격침
1999년 6월7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한 경비정 침범
6월15일 연평해전 발생
2001년 9월19일∼20일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군 MDL 월경, 한국군 경고사격
11월27일 경기도 파주군 장파리 DMZ에서 한국군 초소에 기관총 2∼3발 발사
2002년 6월29일 북한 경비정 NLL 침범, 한국군 고속정 격침

설욕전 피해 많아… 정치적 성과도 없어

그렇다면 또 다른 의도가 있는 걸까. 더 이상 말로는 통하지 않는, 무력으로 바깥세계에 보여줄 북한 내부의 절박한 사정이 있었던 걸까. 체제 생존의 사활이 걸린 미국과의 관계가 부시 강경 정권의 등장으로 삐걱거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은 최근 북한의 애초 요구대로 북-미 협상대표의 지위까지 격상시켜 회담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당장 회담이 열리더라도 북-미관계가 획기적으로 진전되지는 않겠지만, 북한으로서는 기대를 걸어볼 만한 자리다.

대남관계도 그렇다. 임동원 대통령 특사 방북 이후 최성홍 외교부 장관의 워싱턴 발언, 남쪽 언론에서의 금강산댐 부실시비 등을 핑계로 남북경협추진위원회가 연기돼 당국간 대화가 중단됐다. 하지만 민간 교류는 막힘 없이 활발하게 이뤄져왔다. 금강산은 남쪽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 없이 북적거리고, 함경남도 신포의 경수로 건설공사도 더욱 박차가 가해지고 있다. 경협·대북지원 등을 협의하기 위한 기업인, 각종 종교·사회단체 실무자들의 방북 발길도 계속 이어진다. 서해교전이 발생한 6월29일에도 1176명의 남쪽 사람들이 북녘땅에서 머물고 있었다. 더구나 남북한 당국은 곧 이뤄질 북-미대화에 이어 남북 당국간 대화도 재개될 것으로 예상하고 활발한 물밑 접촉을 벌이고 있었다. 북한 당국은 당장 시급한 식량을 지원받기 위해서라도 남북경협추진위원회(경추위) 개최를 더는 미룰 처지가 아니었던 셈이다. 한국 정부는 경의선 복원, 개성공단 건설, 임진강 수해방지 대책 등을 논의할 경추위에서 북한에 정부 보유 쌀 30만t을 지원하는 절차문제도 더불어 협의하기로 돼 있었다.

대외관계도 그 어느 때보다 원만하다. 북한은 전통적 우방인 중국, 러시아와는 물론 유럽나라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와 활발한 정상 외교활동을 펴왔다. 이들 나라들은 식량을 비롯해 북한의 자립과 경제재건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과거의 국제적 고립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이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남 군사행동은 지금까지 공들여 쌓아온 여러 나라와의 우호관계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위험성이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번 서해교전을 벼랑 끝 전술의 산물로 보기에도 석연치 않다고 말한다. 이들은 아무리 곰곰히 따져봐도 북한이 군사행동을 통해서는 얻을 게 없다고 설명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전인지 여부 관심

그렇다면 대체 진실은 뭘까. 여기서 10여년 넘게 정보 당국에서 일해온 한 관계자의 분석이 눈길을 끈다. “결국 이번 사건은 의도적·우발적 요인이 뒤섞여 촉발됐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북한 군부 특히 해군의 맹목적인 과잉 충성경쟁이 빚어낸 예상됐던 결과다. 이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도를 잘못 읽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김 위원장은 3년 전 서해교전에서 패배한 이후 해군 지도부를 크게 질책하면서 다시 유사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결코 패배해서는 안 된다는 지시를 내려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군 최고 통수권자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지침을 내려보낸 것이다. 하지만 북 해군은 조급증에 시달려 설욕 시점을 잘못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군부는 주변 정세와는 상관없이 충성경쟁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왔다.” 김근식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이번 사태가 첨예한 군사적 대치가 있어온 서해 5도에서 북한 해군 현장 지휘관의 과욕이나 착오로 인한 우발적인 사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전에 보고를 받았는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직접 지시는 내리지 않았을지라도 보고는 받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북한 군부 사정에 정통한 이대근 고려대 강사는 “김정일 위원장의 최대 관심사는 군부를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쏠려 있다. 이는 70년 말부터 있어온 일이다. 따라서 그가 군부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김 위원장은 군부의 움직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히 파악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군부대 사단장급 이상에 대한 일일동향 보고가 매일 그의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다. 이번 서해교전도 김 위원장이 직접 지시를 내리지는 않았다 해도 사전이나 사후에 내용은 보고받았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심각한 군부일탈로 규정할 수 있다.”

정치권 겨냥한 고도의 노림수 있나

다른 한편으로는 서해 5도를 관할하는 해군사령부에서 독자적으로 일을 저질러놓고 평양 지도부에는 남쪽의 선제공격에 대응했을 뿐이라고 거짓 보고해 자신들의 전과를 부풀렸을 가능성도 제시된다. 이 밖에 이번 서해교전 사태는 8·8 재보선과 대선 등을 앞두고 혼란을 부추겨 남쪽의 정치세력 판도를 바꾸기 위한 김정일 위원장의 고도의 노림수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북쪽의 의도가 무엇이든 이번 사건을 빠른 시일 안에 명쾌하게 처리하지 않고 질질 끌수록 손해를 보는 쪽은 북한 지도부라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낸다. 선제공격을 하지 않았다면 남북한 군사당국자 회담에 나와 입증하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솔직하게 사과하는 것이 난국타개의 지름길이라는 지적이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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