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06월19일 제414호 

홍업 수사, 속전속결

애초 계획 앞당겨 김홍업씨 소환한 검찰…대선 비자금, 국정원 뒷돈 등 뇌관 터질까


사진/ 19일 검찰에 소환된 김홍업씨(왼쪽). 애초 예상보다 소환시기가 앞당겨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석달여를 끌어온 검찰의 김홍업씨 수사가 마침내 종착점에 다다르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해온 대검 중수부(부장 김종빈 검사장)는 김대중 대통령의 둘째아들 홍업씨에게 6월19일 오후 3시까지 검찰에 나오도록 지난 17일 통보했다. 한국 축구팀의 월드컵 16강전을 하루 앞둔 이날 오전 9시 박만 대검 수사기획관은 긴급 브리핑을 통해 홍업씨 소환결정 사실을 공표했다. 그는 “홍업씨 대학동기인 유진걸씨를 지난 12일 구속한 뒤 홍업씨와 관련한 추측이나 의혹이 자꾸 번지고 있어 조기에 소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수사팀은 전날인 16일 밤 내부 회의를 열어 이런 방침을 정한 뒤 이날 아침 이명재 검찰총장의 재가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진술 다 나온 마당에 시간 끌 수 없어

검찰은 “홍업씨가 아직은 피내사자 신분”이라며 그의 혐의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홍업씨는 이미 구속된 측근들의 이권청탁에 개입해 최소 20억원대의 뒷돈을 받은 혐의를 들춰낸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은 홍업씨 대학후배인 이거성씨(구속)가 새한그룹 전 부회장 이재관씨(구속)한테 금감원 조사무마 청탁 등과 함께 받은 17억원 가운데 상당액이 홍업씨에게 전달된 정황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홍업씨 친구들인 김성환씨(구속)와 유진걸씨(구속)가 ㅅ건설로부터 받은 10억원 가운데 일부가 역시 홍업씨에게로 건너간 단서를 확보했다.

어쨌든 검찰의 이런 결정은 “(홍업씨 수사로) 월드컵 열기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겠다”며 한국팀 경기가 모두 끝난 뒤 홍업씨 사법처리에 나설 방침임을 내비쳐온 종전 태도에 비춰, 전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검찰이 홍업씨 신병처리를 앞당긴 배경은 무엇일까?

일단 이 사건에 연루된 핵심 인물들의 입에서 홍업씨의 알선수재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진술이 거의 다 나온 마당에 마냥 시간을 끌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달 5일 각종 이권 청탁에 관여해 10억원대의 뒷돈을 챙긴 혐의 등으로 김성환씨를 구속한 이후 비슷한 범행을 한 혐의로 이거성·유진걸씨 등을 잇따라 잡아들였다. 김씨 등은 한동안 홍업씨가 공범 역할을 했는지 등에 대해 함구로 일관해 수사팀의 애를 태웠으나, 이달 초를 고비로 말문을 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검찰의 수사 급진전에는 김성환씨의 구실이 가장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홍업씨와 18억원대의 돈거래를 하면서 이용한 차명계좌 일부가 차정일 특검팀에 포착되면서, 홍업씨를 ‘이용호 게이트’에 등장시킨 주역이다. 홍업씨의 40년지기 친구이기도 한 그는 최근 “ㅅ건설 회장 전아무개씨가 화의인가 관련 청탁과 함께 나와 유진걸씨에게 건넨 10억원 가운데 3억원이 홍업씨에게로 갔다”고 털어놨다고 수사팀은 밝혔다. 여기에 더해 그는 역시 홍업씨가 관여한 다른 이권청탁 사례와 대가로 홍업씨에게 건너간 뒷돈 규모 등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자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찰이 홍업씨 소환을 서두른 데는 정치적 판단도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권은 6·13 지방선거 참패의 주원인을 대통령 두 아들의 비리사건으로 민심이 이탈한 데서 찾고, ‘게이트 정국’ 탈출을 선거 이후 최대 숙제로 삼고 있다. 이들 사건 수사과정에서 당정으로부터 적잖은 눈총을 받아온 검찰로서는 한층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시간을 끌 경우 자칫 다시 한번 ‘역 편파수사’ 시비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지방선거를 통해 권력형 비리를 엄단해야 한다는 여론을 확인한 만큼, ‘두 아들 구속’에 따른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속전속결’을 택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에 대해 줄곧 조기 검찰 출두를 희망해온 홍업씨 쪽은 “많이 늦기는 했지만 잘된 일”이라며 홀가분해하고 있다. 사실 홍업씨는 그동안 “검찰이 어차피 나를 구속할 작정을 하고 하는 수사인데 구속을 피할 수 있겠느냐”며 구속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왔다.

홍업 “오히려 홀가분하다”


사진/ 입을 연 '자물쇠.' 함구로 일관하던 홍업씨 측근 김성환씨가 입을 열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하지만 홍업씨는 여전히 “대가성 있는 돈을 받은 일이 결코 없다”며 알선수재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그의 변호인인 유제인 변호사는 17일 기자들과 만나 “홍업씨가 새한그룹 이재관 전 회장 등을 김성환씨 등과 함께 만난 사실은 인정하나 뒷돈을 받은 일은 없다고 해명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홍업씨 쪽에서는 검찰이 홍업씨를 엮어넣기 위해 김성환씨 등과 일종의 ‘플리바겐’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죄 일부를 감면받는 조건으로 홍업씨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는 것이다. 홍업씨 쪽 관계자는 “김씨가 검찰의 회유와 강압에 못 이겨 자포자기식으로 홍업씨를 물고 들어갔다는 얘기도 들린다”며 “홍업씨가 구속되더라도 최종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일단 오랜 수사 끝에 승부수를 띄운 검찰은 앞으로 홍업씨를 상대로 한 수사과정에서 그의 알선수재 혐의를 확정하는 작업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김씨 등의 진술과 정황증거를 상당수 확보했지만, 치밀한 돈세탁과 증거인멸 등으로 결정적인 물증을 잡은 사례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검찰이 떠안은 제2의 과제는 이른바 ‘대선잔여금’의 실체를 규명하는 일이다. 홍업씨 쪽은 “김씨와 거래한 자금 가운데 최대 10억원은 1997년 대선 때 운영하던 선거홍보기획사 ‘밝은세상’에서 쓰고 남은 돈”이라고 주장해왔다. 홍업씨 쪽은 이 돈이 정치자금법상 공소시효(3년)가 끝난 정치자금임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이나, 이런 해명이 ‘자충수’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홍업씨는 ‘밝은세상’에서 당시 국민회의의 선거조직으로 편입된 홍보팀과 별개의 사조직을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정당의 공자금이 아닌, 기업체 등에서 모금한 비공식 선거자금을 사용했다는 얘기다. 검찰이 이 돈의 출처를 끝까지 추적할 경우 97년 대선 때 한 차례 논란을 빚은 ‘DJ 비자금’ 문제로 불똥이 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럴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는 먼저 홍업씨가 출처 불명의 뭉칫돈을 돈세탁한 것이 꼽힌다. 그는 아태재단 전 행정실장 김병호씨를 통해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13억여원을, 개인 비서 조아무개씨를 통해 3억원을 돈세탁했다고 검찰은 밝힌 바 있다. 또 지난해 1∼7월 김성환씨를 통해 현금 12억원을 네 차례에 걸쳐 100만원권 수표로 바꿔간 사실도 드러났다.

이 가운데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은 김병호씨가 세탁한 돈의 실체다. 김씨는 검찰에서 “1998년 10월께 홍업씨가 ‘돈 좀 바꿔오라’며 고무줄로 묶인 10만원 수표 1천장(1억원)을 건네 세탁해줬다”고 진술했다. 홍업씨는 이어 99년 10월께 김씨를 자택으로 불러 95∼97년 발행 100만원 수표 600장(6억원)과 1만원권 현찰 6억원 등 12억원을 주며 “새 수표로 바꿔오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국정원 관련 조사에 함구

홍업씨의 경력과 수입원 등을 감안할 때 이런 거액이 어디서 났는지 의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김병호씨가 아태재단 임직원 회의 내용을 적은 메모에서 ‘후광(김 대통령 아호) 돈 확인’라는 글귀가 발견된 것도 심상치 않다. “아태재단의 핵심 구실 중 하나는 DJ 비자금을 관리하는 것”이라는 야당 주장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이 이 문제에까지 칼을 들이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언론의 숱한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아태재단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지 않은 점 등이 이런 추정을 낳고 있다.

이 사건의 또 다른 ‘뇌관’은 김씨의 메모에도 등장하는 ‘국정원 돈’ 관련 의혹이다. 바로 ‘국정원 돈 5억쯤? 1억짜리도’라는 메모 내용과 관련한 것이다. 검찰은 홍업씨 관련 계좌를 뒤지는 과정에서 국정원 쪽에서 흘러든 수억원대의 수표들을 발견해 이 돈의 흐름을 추적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아직 이 돈이 국정원에서 선거지원 등 ‘특수 목적’으로 건넨 것인지, 단순히 세탁만 해준 것인지, 아니면 김씨의 개인 비리와 연관된 돈인지 여부 등에 대해 일체 확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

검찰의 ‘깊은 침묵’은 그만큼 이 문제가 민감한 사안이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혹시라도 국정원과 홍업씨 또는 아태재단이 ‘부적절한 돈거래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드러날 경우 이번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전망이다.

하석 기자/ 한겨레 사회2부 hgrh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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