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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물귀신을 키웠나 대국민 사과·탈당으로 이어진 아들 게이트… 권노갑씨 비리 연루로 고민 더욱 깊어가
자식의 허물은 부모의 허물이던가. 5월6일, 김대중 대통령이 드디어 아들들의 비리연루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자신의 정치적 힘의 기반인 민주당에서 탈당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는 사이, 또 다른 문제 하나가 대통령의 길어진 목덜미를 낚아챘다. 어지러운 게이트 정국에 대통령 부인 이희호씨의 이름이 새로 등장한 것이다. 포스코(옛 포항제철)가 최규선씨 비리사건과 얽힌 타이거풀스 인터내셔널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이기에 앞서, 이희호씨의 주선으로 홍걸씨가 포스코 유상부 회장과 만난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홍걸씨와 유 회장의 만남은 만남 자체만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을 곱지 않은 눈길로 보는 것은 만남을 전후한 일련의 상황전개에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유 회장 쪽이 밝힌 두 사람의 만남은 그 동기가 ‘순수’했다. 이희호씨가 유 회장에게 홍걸씨를 만나 사업상 조언을 해줄 것을 요청해 자리가 마련됐다는 게 유 회장 쪽 설명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한국의 대표적 전문경영인을 만나 도움말을 듣도록 주선한 거라면 인지상정으로 보아 넘길 만하다. 이씨의 요청으로 유 회장은 2000년 7월 서울 성북동에 있는 포스코 영빈관 ‘영광원’에서 홍걸씨와 만나 홍걸씨의 신변문제와 철강산업 등 국내외 비즈니스 현황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고 유 회장은 밝혔다. 유 회장은 당시 홍걸씨에게 “직장을 가져라. 대통령 아들이라고 특별대우받을 생각은 하지 마라”는 조언을 했다고 밝혔다. 대통령 아들에게 선을 대 이권을 챙기려 한 게 아니라, 거꾸로 대통령 아들에게 따끔한 훈계를 했다면 오히려 박수받을 일이다. 포스코 쪽은 “홍걸씨가 유 회장에게 벤처사업에 대해 조언을 구했으나 벤처 쪽은 유 회장이 아는 게 별로 없어 벤처관련 자회사인 포스텍기술투자 사장을 만날 수 있게 주선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유 회장과 포스코 쪽이 그린 그림은 홍걸씨가 유 회장을 만나 벤처사업에 대해 물어봤다는 대목에서부터 매끄럽지 못한 터치가 드러난다. 내로라 하는 벤처사업가들을 제쳐두고 하필 ‘굴뚝산업’의 상징기업인 포스코의 최고경영자를 만나 ‘벤처’에 대해 물어보았다는 건 난센스에 가깝다. 물론 만남을 주선하는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오류가 없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렇더라도 애초 취지가 무엇이든 이후 상황은 아주 이상하게 펼쳐진다. 유 회장의 주선으로 얼마 뒤 포스텍기술투자 이전영 사장을 만난 홍걸씨는 그 자리에 최규선씨와 함께 간 것으로 밝혀졌다. 최씨는 지난해 포스코가 6개 계열사와 협력업체를 통해 타이거풀스 주식 20만주를 주당 3만5천원인 70억원에 사들일 때 중개를 맡았다. 당시 타이거풀스 주식은 시중에서 2만원 안팎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져, 포스코가 거액의 웃돈까지 주고 주식을 사들인 경위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규선씨 비리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검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김희완 전 서울시 부시장은 2001년 1월 포스코경영연구소 고문으로 취임했다. 홍걸씨와 유 회장이 만난 시점도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 절묘하다. 박태준 전 국무총리를 등에 업고 포스코 회장에 취임한 유 회장은 당시 박 전 총리가 부동산 위장신탁 사실이 드러나 사임한 뒤 여권에게서 거센 퇴진압력을 받는 등 위기에 빠져 있었다. 강력한 버팀목이 필요하던 유 회장 처지에서는 홍걸씨와의 ‘특별한’ 관계가 더없이 좋은 보험일 수 있는 시기였다.
포스코의 이상한 발뺌… 아들들 소환 임박
‘어머니 변수’가 돌발 출현하였음에도 김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성명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종 게이트에 대한 검찰수사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용호·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홍업·홍걸씨에 대한 검찰 소환시기도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최규선 게이트는 홍걸씨가 자진귀국하지 않으면 조사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으나, 대통령의 성명 발표로 홍걸씨의 귀국도 서둘러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홍걸씨가 연루된 최규선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은 이미 최규선씨와 송재빈 타이거풀스코리아 대표를 구속한데다 최근 홍걸씨 동서인 황인돈씨로부터 △최씨의 돈을 홍걸씨에게 전달했다 △회사 직원 명의로 보유한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 주식 1만3천주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는 진술을 받아낸 상태다. 이에 따라 홍걸씨의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과정 개입의혹 등에 대한 상당수 정황증거들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업씨의 경우, 측근인 김성환씨가 각종 이권에 개입한 대가로 5억원을 받고 회사 자금 6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검찰 소환시기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동안 김성환씨의 소환이 홍업씨를 부르기 위한 마지막 단계밟기라고 밝혀왔다. 검찰은 김성환씨의 비리에 홍업씨가 개입했는지 여부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현재 김성환씨가 홍업씨의 개입 의혹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고 있어 수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검찰은 김 대통령의 성명 발표가 김씨의 심경을 바꾸는 데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한다. 대통령 아들의 허물을 처리하는 과정이 이처럼 빠르게 가닥을 잡아가고 있으나, 대통령 가신의 허물은 정국의 또 다른 뇌관이 되었다. 진승현씨에게서 5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권노갑씨는 지금도 자신의 혐의사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진씨의 로비 전모를 캐기 위해 다른 정·관계 인사들의 연루 여부 등에 대해 폭넓은 보강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그러나 정작 검찰 수사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권씨의 개인비리 부분이 아니다. 자신을 스스로 ‘정거장’이라고 표현할 만큼, 권씨는 현 정권의 정치자금이 드나드는 창구구실을 했다. 권씨를 구속한 이상 검찰 수사는 불법 정치자금 운용 여부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권씨는 지지난해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당시 김근태·정동영 의원에게 각각 2천만원을 지원한 사실을 이미 시인했고, 김 의원의 경우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권씨에게서 받은 돈을 적법하게 영수증처리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 두 사람 외에도 수많은 여권 인사들이 권씨의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신의 허물, 대통령을 겨누고 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권씨의 자금 출처와 다른 정치인에 대한 자금 공여 여부도 조사할 가능성이 높아, 정치권에 큰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낳고 있다. 이미 권씨의 한 측극 인사가 “김근태·정동영 의원에게 전달한 돈은 4·13 총선 공천헌금에서 나온 돈이었다”고 주장해 검찰이 진위 파악에 나선 상태여서, 여권의 정치자금 전반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흐르고 있다. 수사 방향은 경우에 따라 김 대통령을 직접 겨냥할지도 모른다. 권씨를 통해 드나든 정치자금이 대통령 가신의 쌈짓돈이라고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신의 허물은 곧 주인의 허물이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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