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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이슈추적 등록 2002.04.17(수) 제405호

[이슈추적] 대통령 건강 문제 다시 보자

미국에 비해 유사시 대비한 시스템 훨씬 떨어져…김대중 대통령 퇴원 계기로 돌아봐야

김대중 대통령이 4월14일 국군 서울지구 병원을 퇴원했다. 9일 밤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과의 국빈만찬이 끝난 뒤 심한 피로와 위장장애 증세를 보이며 입원한 지 6일 만이었다. 그는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다행히 건강이 회복됐으니 앞으로 건강에 유의해 소임을 다하고 국정도 차질 없이 운영해나갈 것”이라고 퇴원 소감을 밝혔다.

퇴원하는 대통령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피어났지만, 그의 건강이상과 관련한 국민들의 불안과 우려를 다 씻어내지는 못한 듯하다. 김 대통령이 임기 도중 건강이상으로 입원한 것은 처음이지만 건강문제로 구설에 오른 것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들문제로 인한 스트레스?

지난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정치역정 곳곳에서 건강문제는 김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의 하나로 부각되곤 했다. 정권교체 이후 그는 정력적인 활동으로 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워낙 고령인 탓에 조그마한 이상징후에도 그의 건강문제는 늘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하곤 했다. 특히 지난 1월14일 TV로 생중계된 연두기자회견에선 미리 짜놓은 문답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등 매우 지치고 피곤한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3달 사이 두번이나 대통령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그의 건강악화를 불러온 요인을 둘러싼 구구한 추론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이번 입원과 관련해 특히 고령인 김 대통령의 과로를 근본 이유로 들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의 업무량이 역대 대통령의 3∼4배에 이르렀다”며 “김 대통령의 건강비법 중 하나인 30분가량의 낮잠도 올해 들어선 외국 원수의 방문이 이어지면서 거의 취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 참모들은 이후 대통령의 건강유지를 위해선 업무량을 절반 이하로 대폭 줄여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제 국내 행사는 상당부분 총리가 하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여전히 외국 원수 방문이 많이 예정돼 있고, 월드컵이라는 중요한 행사도 남아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건강악화가 격무 탓만은 아니라는 관측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육체적 피로보다는 오히려 그동안 쌓인 정신적 스트레스가 더 큰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연속적으로 불거진 아들 3형제의 의혹사건들과 그에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면서 적지 않은 마음고생에 시달린 것이 건강악화를 부른 직접적 이유라는 분석이다. 김 대통령이 늘 직속 의무팀 소속 의사들의 철저한 건강관리를 받고 있다는 점도 그의 건강악화가 단지 관리가능한 육체적 피로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김 대통령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장석일 의무실장 등 의무팀 소속 의사들로부터 건강진단을 받는다. 주치의도 2주에 한번씩 청와대에 들어간다. 모든 행사에는 의무팀 소속 군의관들이 지근거리에 배치돼 김 대통령의 상태를 면밀히 주시하게 된다. 이런 보살핌 가운데서 대통령의 건강이 입원에 이를 정도로 악화한 것은 지나친 일정 탓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허갑범 주치의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요즘 들어 스트레스 때문에 거의 잠을 못 주무신 게 악화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절대적인 수면량이 많지는 않지만, 일단 잠이 들면 숙면을 취하는 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육체를 힘들게 하는 고된 일정에도 불구하고 불면증에 시달린 것은 정신적인 고뇌와 스트레스가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허갑범 주치의는 “아들문제도 스트레스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질문엔 “어휴, 그건 사적인 부분”이라며 말문을 닫았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건강은 절대적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의 건강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대통령의 건강문제를 공론화하고, 유사시에 대비한 시스템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관용 한나라당 총재권한대행은 “미국에선 1991년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이 심장이상으로 입원한 뒤 전신마취와 수술이 고려되자, 대통령직의 잠정이양 절차가 진행된 적이 있다”며 “그러나 한국에선 이런 상황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으며, 상식과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게 돼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학을 전공한 함성득 고려대 교수는 “한국은 미국에 비해 대통령의 권한은 훨씬 막강한 데 반해 대통령의 유고에 대비한 시스템은 훨씬 뒤떨어져 있다”며 “구체적으로 사망 이외의 여러 유사시에 어떻게 대통령권한 승계절차가 이뤄져야 하는지 등을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아가 대통령 선거 때부터 동시에 건강진단을 받게 해 공표하는 등 건강문제를 병역이나 재산보다 앞서 대통령 검증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며 “이는 대통령제하에선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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