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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이슈추적 등록 2002.04.17(수) 제405호

[이슈추적] “이미 ‘공창’은 존재한다”

공창제 홍보용으로 알려져 파문 일으킨 ‘김강자 비디오’의 진실과 여성계 반응

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김강자 과장이 만들었다는 속칭 ‘김강자 비디오’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외부 단체에서 제작비를 지원받았다는 사실과 제작 목적이 공창제 홍보용이라고 알려지면서 여성계는 발끈하는 분위기고, 공무원이 승인 없이 업무추진과 관련해 외부의 재정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경찰 내부에서도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방향 모호한 매매춘 합법화

<여성동아> 3월호는 김강자 과장을 인터뷰하며 “공창제를 지지하는 단체에서 제작비를 지원받아 만들었다”고 보도하였다. 이 외부단체가 공창제를 지지하는 단체라고 뭉뚱그려 알려지면서 정작 비디오의 내용은 쑥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비디오의 정확한 제목은 ‘매매춘 문제 해결을 위한 제안’이다. 미성년자 매매춘 근절운동을 펼치는 한 청소년단체에게서 제작비를 후원받은 것으로, 공창제 홍보 목적이 아니라 국회·여성부 등 성매매 알선행위 등 방지법(이하 성매매 방지법) 제정과 관련된 사람들과 현재의 매매춘 지역 단속유예를 토론할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게 김강자 과장 쪽의 해명이다.

비보도를 전제로 지난 1월 경찰청 출입기자들에게 공개한 비디오 내용은 전통형 매매춘과 산업형·자영형 매매춘을 구별해 청량리 588, 미아리 텍사스촌 등 ‘홍등가’로 불리는 전통형 집촌에 대해서는 매매춘을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차별적인 정책을 펴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음성화되고 있는 유사·변종 성매매부터 근절하자는 것이다. 비디오 중간중간 ‘공창’ ‘합법화’라는 표현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는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 등 일부 나라에서 펼치는 매매춘 규제주의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규제주의란, 인신매매·갈취·폭행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일부 지역에 한해 매매춘을 양성화시켜 정부 차원에서 관리·감독하는 것이다. 이 제도에는 매춘여성들의 자활과 생계대책을 마련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를 우리 사회에 적용하는 목적을 성매매 합법화의 길을 트는 것으로 볼지 성매매 근절을 위한 중간단계로 해석할지 논쟁의 여지가 있다.

현재 여성부가 준비하고 있는 성매매 방지법은 두축으로 시안이 잡혀 있다. 성매매로 이득을 취한 업주와 중간알선자 등을 처벌하는 것과 동시에 매춘여성을 피해자로 보고 사회적 자활을 돕는 것이다. 매매춘 지역에 대해 한시적으로 단속유예를 하는 문제는 매춘여성 자활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과정에서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지만, 매매춘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법제정을 앞둔 지금 단계에서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는 게 여성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특히 법 제정의 주무부처인 여성부는 “일부 지역의 매매춘을 부분 허용하자는 내용을 경찰로부터 공식적으로 건의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찬반양론

비디오 제작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터넷 한겨레 토론방에서도 공창제 도입에 대한 찬반양론이 뜨겁다. 논쟁의 스펙트럼은 넓게 퍼져 있다. “개인의 성행위를 국가가 간섭할 수 없다”는 이상론에서 “유사 이래 존재해온 매춘은 어떤 식으로든 근절할 수 없다”는 현실론, “개인사업등록을 받아 일대일 매춘만 허용하자”는 대안론, “어떤 형태의 매매춘이든 인신매매의 변종이다”는 금지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또한 “매춘에도 계급성이 존재한다”는 주장, “간통죄부터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 “호스트바도 허용하라”는 주장까지 논쟁의 범주는 끝이 없다.

‘공창’이라는 단어가 잘못 쓰이면서 논쟁이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기도 한다. 공창이라는 말은 일제시대 공창에서 유래한 것으로 국가가 영업을 인정하고 세금을 거두는 것이다. 자칫 국가가 매매춘을 장려하는 것으로 해석할 위험이 있다. 또한 외국의 사례로 소개되는 공창은 ‘성매매 합법화’와는 다른 개념이다. 두 개념이 등치될 경우 중간알선자와 포주 등 성매매로 이득을 취하는 이들을 처벌할 근거가 없어진다. 지난해 6월 인터넷 한겨레 라이브폴에서 실시한 “‘외국처럼 공창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는 김강자 과장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참가자(1만358명)의 네명 중 세명은 찬성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최근 질문을 바꿔 “홍보 비디오로 논란이 되고 있는 ‘한정지역 내 성매매 합법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참가자(1만4천95명)의 70%는 반대의 뜻을 밝혔다.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시행하는 규제주의는 확정된 제도가 아니다. 포주들의 입김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몇해에 한번씩 뒤바뀌고 있다. 최근 독일 정부는 또다시 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남미와 동유럽, 동남아 등지에서 인신매매된 여성의 유럽 진출 관문이 독일이라는 오명과 국가의 규제 아래 놓인 매매춘 지역이 조직폭력과 마약유통의 온상으로 전락했다는 안팎의 비난에 직면한 탓이다. 우리나라 못지 않게 성매매가 기승을 부리는 대만에서는 3년 전에 성매매 방지법이 마련됐다. 대만의 경우 김강자 과장의 주장과 비슷한 정책을 폈다. 한시적으로 일부 집촌지역의 매매춘을 허용하면서 변종 성매매를 단속한 다음 나중에 집촌지역을 단속한다는 방안이다. 그러나 법을 시행한 지 1년도 안 돼 정책상의 실패를 인정하고 폐지하고 말았다. 짧은 시간 안에 전통형 집촌지역이 ‘성매매의 특구’로 발달해 국가의 관리감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온갖 인신매매와 폭력의 근거지로 작용하는 결과를 얻고 나서다.

이렇듯 성매매 방지 논의를 일찍부터 시작한 나라들도 계속 시행착오를 겪는 상황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도 포주와 중간알선자 등 성매매로 이득을 취하는 이들까지 법으로 보호해주는 나라는 없다.

그렇다면 매춘여성의 인권보호를 명분으로 제기되는 공창론에 대해 당사자인 매춘여성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기지촌 자활공동체 새움터는 지난해 말부터 티켓다방·전화방·퇴폐이발소 등 변종 성매매를 경험한 여성들을 상대로 심층연구를 하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30여명의 여성들은 대부분 집촌지역에서 일을 시작한 여성들이다. 이들 중 29명은 일부 처벌제외지역(공창)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가장 큰 이유는 “밖에서는 하루에 서너번만 하면 되는데 그곳에서는 하루 예닐곱번, 심하면 스무명까지 손님을 상대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한 여성은 “도저히 약 없이는 살기 힘들어 (집촌에서) 도망쳤다”고도 털어놓았다. 또 다른 여성은 “단속 위험이 있는 곳이라야 업주가 일을 많이 안 시킨다”고 말했다.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부 지역을 국가의 관리감독 아래 놓고 인권유린 없는 성매매를 허용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인권유린 없는 성매매’ 현실성 있나

지난 4월2일 낮 서울 전농동 588 한가운데 있는 한 여관에서 불이 났다. 남녀 각각 두명씩 사망한 이 사건을 경찰은 단순 화재사건으로 다뤘다. 그러나 경찰과 함께 현장조사에 나선 여성단체들은 입금장부와 감금장치 등을 발견해 또 다른 노예매춘의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하고 나섰다. 이 여관은 신관과 구관이 연결된 채 신관 쪽에서 문을 잠글 수 있는 구조였고, 구관의 출입문은 모두 밖에서 잠글 수 있는 구조인 것으로 확인됐다. 주민들에 따르면 구관은 24시간 영업하는 588의 특성상 ‘아가씨들의 숙소’로, 신관은 ‘밖에서 하고 싶어하는 손님 상대용’으로 쓰였다. 현장조사 과정에서 몇몇 업소는 아예 방을 서너개씩 임대해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업소는 증축이 허가되지 않으니 여관이 들어서면 그곳을 이용해 영업을 확장해온 것이다.

김현선 새움터 대표는 “전국에 140여군데에 이르는 집촌지역을 지금도 사실상 공창처럼 운영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지금은 왜 유사·변종 성매매를 단속하지 못하느냐”고 지적한 뒤 “단계별 단속론을 펼치자는 김강자 과장의 시나리오는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로 보인다”고 비판한다. 이번 비디오 파문을 접하며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경찰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는 김강자 과장을 방패막이로 삼았다가 비판받을 일이 생기면 모두 김 과장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성매매 근절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경찰의 무원칙한 태도를 힐난하기도 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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