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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이 증명한 국정원의 불법 김은성 전 국정원 제2차장의 “국내 정치·경제정보 수집”은 직무조항에 없는 내용
아직도 수사가 진행중인 ‘진승현 게이트’에서 흥미를 자극하는 캐릭터라면 김은성(57·구속수감중) 전 국가정보원 제2차장이 첫손에 꼽힐 듯하다. 국내정보를 총괄하는 차관급 공직자가 20대의 애송이 벤처사업가와 어울렸다는 사실이 그렇고, 진씨의 ‘구명’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는 점도 상식선에서 수긍하기가 쉽지 않다. 검찰의 공소장에도 나오는 그의 행각은 마치 3류 첩보영화를 일부 패러디한 것 같다.
정부·국회서 아직도 버젓이 ‘취재’
“피고인은 2000년 4월26일 국가정보원 제2차장으로 승진하여 국내의 정치·경제 등 각종 정보를 수집·관리하면서….” 모든 국가기관이 그렇듯 국가정보원이 할 일은 국가정보원법에 규정돼 있다. 그중 제3조 ‘직무’ 조항은 국정원의 역할을 △국외정보 및 국내보안정보(대공·대정부 전복·방첩·대태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 및 배포 △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자재·시설 및 지역에 대한 보안업무 △형법 중 내란의 죄, 외환의 죄, 군형법 중 반란의 죄, 암호불정사용죄, 군사기밀보호법에 규정된 죄,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에 대한 수사 △국정원 직원의 직무와 관련된 범죄에 대한 수사 △정보 및 보안업무의 기획·조정 등 모두 다섯 가지로 정해놓고 있다. ‘국내의 정치·경제 등 각종 정보를 수집·관리’할 수 있다는 규정은 직무조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국정원이 연락관·조정관이라는 이름으로 국회, 각급 정부 부처와 기관·언론사 등에 직원을 출입시키고,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는 명백히 법에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국정원의 공공연한 불법행위를 이번 공소장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김대중 정권하에서 국정원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출범 초기 정치개입 근절을 선언했고, 국내정보 파트를 통폐합하면서 규모도 크게 줄였다. 5공 때 붙은 안기부라는 이름을 국가정보원으로 바꾼 것은 개혁의지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김 전 차장의 공소장에서 드러난 대로, 법에 없는 정보수집 활동은 공공연히 계속되고 있다. 국정원의 위상이 과거보다 뚜렷이 낮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사방으로 뻗어 있는 ‘촉수’는 과거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 각 부처는 물론 국회와 각 정당의 당사에도 국정원 직원들이 버젓이 드나들며 ‘취재’를 한다. 의원회관도 그런 ‘출입처’의 하나다. 한 의원 보좌관은 “거의 매일 의원실에 들러 이것저것 챙겨간다”고 전했다. 검찰·경찰은 물론 금융감독위원회·증권거래소·전경련 등도 예외가 아니다. 언론사에 대해서도 광화문 근처의 연락 사무실을 근거지로, 직원 한명이 2∼3군데씩 묶어 맡는 식으로 출입한다. 이렇게 모은 정보를 보고서 형태로 상부에 올린다. 의무량은 정당이나 국회 담당 등은 매일 A4용지 두장 정도, 언론사 담당자는 한주에 두건 정도로 출입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정보보고 자체는 반드시 하도록 돼 있다.
‘국정원 개혁’ 결국 못 이룬 셈
국정원도 나름의 주장이 없지 않다. 국정원의 고위 관계자는 정보수집 활동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직무를 규정한 3조의 제1항 ‘국내보안정보’의 수집이 법적 근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보안정보’는 대공·대정부 전복·방첩·대태러 및 국제범죄조직 등 다섯 가지로 그 대상이 적시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령 김 전 차장이 “검찰에 출입하던 국정원 연락관으로 하여금 진승현에 대한 수사진행 상황을 파악하여 수시로 보고하게 한”(검찰 공소장) 것은, 법에 정해진 직무범위 안에서 이뤄진 활동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게 모은 정보가 ‘이용자’의 의지에 따라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를 김 전 차장 사건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절대선’을 가진 권력자가 있을 수 없다는 상식에 동의한다면, 국정원의 직무를 둘러싼 법과 현실의 괴리는 바로잡아야 할 문제임이 분명해진다. 하지만 “국정 전반의 ‘예고정보’ 강화를 통한 대통령 적극 보좌”를 강조하는 현 정권에서 더 이상의 개혁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강희철 기자/ 한겨레 편집2부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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