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04월10일 제404호 

총장 쌈짓돈에 대학 쪽박 찰라

서울대 이기준 총장 판공비 하루에 150만원… 부인 비용도 지원해 사회적 물의


사진/ "총장님 너무 하십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점거 농성 과정에서 총장의 판공비 지출내역서를 발견해 공개했다. (한겨레21)


“서울대 총장이 하루 움직이는 데 드는 돈은 150만원.” 최근 서울대 총학생회가 공개한 서울대 이기준 총장의 판공비(업무추진비) 내역을 근무일수로 나눠보면 대략 이런 계산이 나온다. 보통 봉급쟁이의 한달 월급에 맞먹는 수준이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 말까지 이기준 총장이 쓴 판공비는 총장실에서 쓴 3억5천만원과 서울대 발전기금 이사장으로서 쓴 8400만원 등 4억3400만원가량이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일까?

그동안 정부기관이든 공공기관이든 기관장의 판공비 지출내역은 거의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왔다. 이 총장의 판공비 내역도 자진 공개한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농성하면서 발견한 것이다. 왜 그것을 성역으로 남겨두고 싶어했을까? 영수증까지 거의 다 공개된 이 총장의 판공비 지출내역은 우리 사회에서 ‘장’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가 누릴 수 있는 ‘특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장’들이 사는 방법, 판공비를 물쓰듯

우선 판공비 지출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간담회, 조찬모임 등 각종 회의와 관련된 비용이다. 이 총장의 판공비 중 각종 회의 관련 지출은 법인카드로 결제한 것만 모두 1억6311만원가량이다. 지난해 5월의 경우를 보면 모두 14차례 회의 관련 비용결제 요청이 있었다. 이틀에 한번꼴로 회의가 열린 셈이다. 한건의 회의에는 70만원 안팎이 지출됐다.

하지만 카드로 결제한 뒤 청구한 내역을 살펴보면 한번의 회의가 한 장소에서 끝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예산청구서에 첨부된 영수증은 1∼3장인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5∼6장이었다. 장소를 옮기거나 여러 차례에 걸쳐 한 주제를 놓고 회의가 계속됐다는 얘기인 셈이다. 지난 1월20일 업무추진간담회 예산집행 청구서를 보면 첨부된 영수증은 모두 6개(총액은 80만원), 나흘 뒤 학사업무추진간담회도 교수회관 등 6곳(총액 77만8천원)에서 쓴 영수증이 딸려 있다. 그 많은 회의에 총장이 일일이 참석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맨 윗장의 카드 매출전표에만 영수증을 발행한 사업자가 적혀 있고 다른 것은 아래에 겹쳐 복사하는 방식으로 액수만 볼 수 있을 뿐이어서, 회의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따져보기는 어려웠다.

추석과 연말에 여기저기 보내는 선물도 판공비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각계 인사에게 보낸 선물액수는 모두 5856만원이다. 정기적인 선물은 추석 때와 연말에 보냈다. 지난해 추석에는 전임총장과 기성회 임원 등 140명에게 정육세트(9만원)를 보냈고, 부속 기관장과 일부 학내 교수, 비서실 직원 등 170명에게는 수제햄(4만5천원)을 보냈다. 또 인근 파출소 직원들과 경찰서 학원반 등 모두 470명에게 선물을 보내면서 2374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돼 있다. 특이한 것은 정육을 선물하면서 보낸 인사장의 문구다. 인사장에는 “추석을 맞이하여 서울대학교에서 특별히 생산한 한우정육을 보내드리오니 감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서울대 이기준·장성자 드림”이라고 쓰여 있다. 서울대 총장으로서 학교를 대신해 보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총장 부부가 사적으로 보낸 것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지난 연말의 송년선물 발송인사 명단에는 ‘특별인사’라고 하여, 33명이 별도로 적혀 있다. 진념 경제부총리, 한상진 정책기획위원장, 기타 여야 국회의원 6명과 한명숙 여성부 장관, 한 대기업의 회장 이름 등이다. 신건 국정원장의 이름 옆에는 괄호에 ‘직접 전달’이라고 표시돼 있다. 물론 이들 가운데는 받기를 거절한 인사가 있을 수도 있다. 서울대 예산담당관실 관계자는 “국립대 총장으로 일하려면 쉽지 않다. 예산도 따내야 하고, 입법도 조율해야 한다. 가만있으면 안 된다. 명절이 되면 5만원짜리 선물 보내는 것은 선물 축에도 안 들어간다”고 말했다. 총장도 학교를 위해 나름의 ‘로비’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재무과에서 매달 800만원씩 받는 돈은 법인카드로 결제한 것과는 별도다. 이 돈은 주로 비서진의 활동비와 각종 경조사비로 쓰였다. 비서진 특별활동격려비로 매달 175만원, 운전기사 운행격려금으로 40∼50만원, 의전경비로 60만원, 수행경비로 50만원가량씩 지출된 것으로 장부에는 기록돼 있다. 거의 절반가량이 비서실 비용인 셈이다. 총장 비서실에는 비서실장과 수행비서, 운전기사, 여직원 등 4명이 근무한다. 서울대 발전기금 이사장실 업무추진비로 지급받는 매달 700만원에서도 이사장·부이사장실 비서진 특별활동격려비로 매달 220만원이 지출됐다.

각종 경조비는 교직원 관련 경조사뿐 아니라, 사적으로 친분 있는 인사들의 경조사에도 지출했다. 판공비 사용에서 공사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것이다. 이 총장이 이사로 있는 한 자선단체의 이사회 비용 2년치를 판공비로 결제하는 등 사적인 용도로 보이는 사례는 경조비 외에도 많다.

판공비를 이 총장이 아니라 부인 장성자씨(여성부 정책실장)가 쓴 것도 논란이 일 수 있는 대목이다. 비서실이 영수증 처리가 안 된 것을 모아놓은 누락전표 목록을 보면, 지난해 12월11일부터 올 2월15일 사이에 ‘사모님’이 20차례에 걸쳐 100여만원을 신용카드로 사용했으나 전표가 없어 기타 경비로 입금처리한 것으로 돼 있다. 한달에 7번꼴이다. 서울대 박오수 기획실장은 “서울대가 장성자 실장에게 여교수 채용문제 등을 의뢰하기도 하고 학장 부인들을 장 실장이 만나기도 한다”며 “총장이 결제하지 못한 경우에 결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 실장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그는 “나도 서울대 판공비 법인카드를 늘 갖고 있다”며 “내가 법인카드를 달라고 한 것이 아니고 학교당국이 관행상 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사적으로는 쓰지 않았다”며 “총장실에 직접 찾아가 면담할 내용은 안된다고 생각해 대신 나를 찾아온 서울대 관계자들이 많은데, 이들을 만나 상담할 때 법인카드로 결제하는 등 학교 관련 일에만 쓴 것”이라고 덧붙였다. 매출전표가 없어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사용액수를 보면 한번에 9500원에서 최고 20만원가량이다. 주로 식당, 커피숍 등에서 쓴 것으로, 사적인 용도로 썼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총장의 부인에게 관행적으로 법인카드를 준다는 것은 일반인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공사 구분 불분명… 학부모 부담 가중


사진/ 그 많은 판공비는 어디서 나왔을까? 이기준 총장은 보통 월급쟁이의 한달치 월급을 하루 판공비로 썼다.


서울대 쪽은 판공비의 규모가 공개되자 “그 정도는 필요한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서울대 예산담당관실 관계자는 “서울대 1년 예산이 1천억원대이고 학교 전체 판공비가 10억원이 넘는다”며 “다른 국립대보다 많이 쓴다고 하는데 서울대는 학교가 크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감사를 받았으며 문제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판공비가 어디서 나왔느냐 하는 점은 이미 감사에서 지적받은 적이 있는 부분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실시한 국립대 감사결과를 지난 2월 발표하면서 “교육여건 개선에 사용해야 할 기성회비에서 판공비가 지급된 것은 부당하다”며 “기성회비가 판공비로 지급되면서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했다. 이 총장의 판공비 중 일반회계(국고)에서 지급한 것은 3천만원뿐이다. 학생들이 등록금의 일부로 낸 기성회비에서 결제한 것이 3억2천만원으로 대부분이다.

서울대의 한 직원은 “누구나 판공비 공개를 꺼리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구석이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대학이 정보나 지식 면에서는 민간보다 앞서가는 점이 많겠지만,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 데는 아주 늦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고의 지성이라는 서울대의 총장으로 있으면서 법적으로 금지된 사외이사를 ‘법을 잘 몰라’ 겸직하고 있다 물의를 빚기도 한 이 총장은 판공비 문제를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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