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03월20일 제401호 

다시 거리에 선 북파공작원

보상 관련 개정법안에도 소외된 사람 수두룩… 80년대 훈련만 받고 ‘팽’ 당하기도

한때 수그러졌던 북파공작원 보상·대우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HID 북파공작특수임무설악동지회(회장 이동안) 소속 250여명은 3월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정문 앞에서 ‘북파공작원 임무자전국연합대회’를 열고 북파공작원 실체 인정과 정부의 계약이행을 촉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참석자 중 한명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집회 도중 흉기로 자신의 얼굴과 복부를 그어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이 시위를 지켜본 많은 시민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난해 국회에서 북파공작원 보상·대우 관련 개정법안이 통과돼 이 문제는 일단락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법에 따라 정부는 올해부터 대북 첩보활동을 위해 북한에 파견됐던 북파공작원 중 사망자 유가족에게 보상금 1억여원과 매달 연금 67만원가량을 지급한다. 또 상이자에 대해서는 상이등급에 따라 1억원에서 수천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키로 했다. 또 이들은 국가유공자 예우를 받는다. 50년간 억눌렸던 한을 풀게 된 셈이다.

관계기관의 공갈·협박에 시달려온 인생


사진/ '북파공작원 임무자전국연합대회' 중 참석자들이 대통령 면담과 구체적 보상을 요구하며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도로를 점거한 채 경찰과 맞서고 있다. (한겨레 곽윤섭 기자)


그렇다면 또 웬 시위냐고 되물을 법하다. 같은 북파공작원 신분이라도 보상이나 대우는 천차만별이다. 생사 여부, 부상의 정도, 북파 횟수 등에 따라 다르다. 50∼70년대 북파된 공작원이 있고, 80년대 북한에 파견되지는 않았지만 만약을 대비해 혹독한 훈련을 받은 공작원들도 있다. 현재 북파공작원으로 사망 또는 실종된 사람은 확인된 숫자만 7726명이지만 실제로는 1만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중 상당수가 여전히 북파공작원으로 공식 인정받지 못해 명예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북파공작원 문제는 여전히 잠복된 불씨였던 셈이다.

이번 격렬 시위의 참석자들이 뿌린 호소문을 통해서도 이런 사정은 잘 드러난다. “정부는 생활안정자금과 정착금 보장 등을 내걸고 북파공작원으로 채용한 뒤 비인간적 대우와 온갖 인권유린 행위를 자행했지만, 북파공작원을 그만둔 뒤 돌아온 것은 보잘것없는 보상금과 정신적·신체적 후유증뿐이다.” “정부는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인정하고 공작원으로 채용할 당시의 약속을 즉각 이행하라.” 참석자들 상당수는 지난 80년대 정부의 달콤한 유혹에 속아 몇년간에 걸쳐 북파를 위한 혹독한 특수훈련을 받으면서 온갖 학대와 고초를 감내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에 파견되지는 못하고 민간인 신분으로 출소해 길가에 내팽겨쳐진 탓에 오늘날까지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구나 이들 가운데 훈련소를 나온 뒤 평범한 삶을 누린 사람은 매우 드물다. 요인암살, 폭파, 첩보수집 등 섬뜩한 특수훈련만을 받아온 이들이 전직 북파공작원 신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직업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기막힌 사정을 호소할 데도 없었다. 그저 분을 속으로 삭이면서 명예회복의 그날을 목놓아 기다려왔다. 지난 정권 시절 이들은 “입 다물고 있지 않으면 가족까지 몰살해버리겠다”는 관계기관으로부터의 공갈·협박 속에 살아왔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와 공동조사위원회 꾸리겠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현행법으로 이들을 보상하고, 예우할 수 없다면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소외된 북파공작원 문제는 미룰 문제가 아니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록 과거 정권에서 행해진 악행이지만 △정부가 생활안정자금과 정착금 보상 약속을 어긴 점 △퇴소 이후 아무런 생계대책을 마련해주지 못한 점 △특수훈련과 공갈·협박 등을 통해 기본권을 제한해온 점 등을 들어 현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북파공작원 문제는 단순히 보상문제가 아닌 새로운 차원으로 번질 조짐이다. 북파공작특수임무설악동지회(회장 이동안)는 3월18일 기자회견을 통해 북파공작원 진실규명을 위해 시민단체와 공동조사위원회를 꾸릴 것을 제안했다. 정부가 지난 50년 동안 은폐와 조작으로 일관해왔던 북풍공작원에 대한 인권유린 문제를 정면에서 파헤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동안 회장은 “북풍공작원을 채용해서 인권을 유린했던 당시 책임자 상당수의 생존사실과 소재지를 이미 확인했다”면서 “국내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시민단체는 물론 유엔인권위원회와 협력해 진상규명은 물론 책임자 처벌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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