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03월20일 제401호 

‘F-16’세력이 ‘F-15’를 민다

12년전 KFP 사기극의 후속편 F-X사업, 정치권 핵폭풍으로 비화할 것인가


사진/ F-X 사업 전면 재검토를요구하는 시민들. 이번 F-X 사업은 12년전 KFP선정때보다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이용호 기자)

조종사 출신 공군 장교의 양심선언에서 시작된 잇단 연행과 구속사태. ‘뇌물’과 ‘외압’의 논리가 상호 충돌하는 지금의 국방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다. F-X 사업을 둘러싼 이 소동의 실체적 진실은 과연 국방 최고위층의 F-15K 밀어주기 ‘외압’에 있는가. 아니면 유럽 군산복합체와 유착된 일부 실무장교들의 ‘부패’에 있는가. 어느 것이 사태의 본질이며 핵심인지 국민은 헷갈린다.

기무사, 오래전부터 공군장교들 내사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기무사령부는 F-X와 관련된 공군 실무장교들에 대해 오래 전부터 매우 정밀한 내사를 해왔다는 점이다. 조주형 대령이 처음 소환된 3월7일 기무사는 자세한 감청기록을 제시하며 조 대령을 압박했다. 소환된 지 단 하루 만에 조 대령의 금품수수 사실을 밝혀낸 것도 이전부터 상시적인 내사가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구속 당시 조 대령의 집에서 기무사가 가져간 일기장과 비망록, 개인 컴퓨터도 관심을 끈다. 여기에는 조 대령이 그간 국방부로부터 받은 외압의 내용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구속 직전 조 대령은 제2차 양심선언을 결행했다. 그 내용이 실린 육성 녹음 테이프는 3월12일 참여연대에서 공개됐다. 주요 내용은 조영길 합참의장과 국방부 획득실장 최동진씨가 F-15K 밀어주기를 위한 외압을 행사했음을 밝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2시간 분량의 녹음 테이프와 1시간 반 분량의 녹음테이프 2개 중 극히 일부 내용만을 공개했다. 공개되지 않은 비망록과 녹음 테이프, 이것을 각기 기무사와 참여연대가 나눠 갖고 있으면서 법정에서 각각 활용할 조짐이다. 어느 것이 더 센지 지켜볼 일이다.

이 싸움은 어디까지 비화되며 그 끝은 어디일까. 민주당의 변호사 출신 송영길 의원은 3월15일 조 대령의 변호인단에 합류했다. 송 의원은 3월14일 김동신 국방장관을 오랫동안 면담하고 특전사에 수감되어 있는 조 대령을 만나는 등 활발한 진상조사 활동을 하고 있다. 송 의원쪽은 이번 F-X 사업이 국민경선제를 통한 대통령 후보 경선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정치적 ‘악재’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송 의원은 조만간 입장을 정리해 여야 개혁파 의원들을 결집하여 조 대령과 F-X 사업의 문제점을 적극 제기할 예정이다. 정권 말기 정치권의 핵폭풍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진흙탕 싸움의 뿌리는 12년 전 한국형전투기사업(KFP)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미국 의회와 국방성, 그리고 한국의 청와대, 국방부 공군과 무기중개상이 뒤섞여 그야말로 도깨비 난장판이었던 KFP 사업에서 빚어진 대소동과 국민 사기극의 후속편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지난 93년 7월9일 이회창 감사원장은 4월7일부터 6월19일까지 54일간 모두 44명의 감사인력을 투입해 실시했던 율곡사업 22개 분야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신문들은 이 감사원장이 7월7일 오전 김영삼 대통령과의 ‘독대’를 마치고 감사원으로 돌아오자마자 감사위원회를 긴급 소집하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기자회견에서 이회창 감사원장은 기자회견 당시 비리의혹에 시달리던 권영해 당시 국방부 장관의 무혐의를 유난히 강조했다. 어떤 언론은 7월10일치에서 “이회창 감사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원고에도 없던 권영해 국방부 장관 부분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는 등 실추된 권 장관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려 애썼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회창, F-16 로비자금에 면죄부를 주다


사진/ "또 다른 테이프는…." 조주형 대령 갖고 기자회견에서 남편의 육성 녹음 테이프를 들으며 울먹이는 부인 문아무개씨. (한겨레 김진수 기자)


그렇다면 이 감사원장은 F-16과 관련해 노태우 정권 비리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포착하고 있었을까. 그 해 12월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민주당의 박계동 의원은, 권영해 장관 등용이 김영삼 대통령의 율곡비리 개입을 잘 보여주고 있다며, 이는 바로 92년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돼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이 주장할 당시에는 권영해 국방장관에 대한 의혹은 풀리지 않은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이것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1998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의 박상규 의원의 폭로 때문이었다.

바로 F-16 로비와 관련된 비자금 폭로다. 당시 조성된 비자금과 그 사용처에 대해서는 93년의 율곡비리 때도 드러나지 않았다. 박 의원의 주장을 근거로 국방부는 국방 비리의 상징처럼 떠오론 린다 김의 백두정찰기 도입 의혹을 비롯한 ‘국방 5대 의혹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기로 결심한다. F-16 로비자금 문제는 현재 3군사령부 법무참모로 당시 국방부 검찰부장이었던 고석 중령이 북풍 사건으로 구속됐던 권영해 안기부장의 할복자살 소동 얼마 후 서울지검으로 찾아가 그를 조사했다.(??) 고석 중령은 당시 국방연구원(KIDA)에 은닉 중이던 비자금 일부가 50억원대의 권영해 비자금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사정을 잘 아는 국방연구원 전임 회계실장의 말에 따르면 이 자금은 과거 KFP 당시 F-16으로의 기종변경을 위한 로비자금의 일부임에 분명하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비자금 조성이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율곡비리가 터졌던 시점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에 대해 면죄부를 준 당사자가 다름 아닌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였음이 드러난다.

이 비자금 조성과 얼마나 깊이 연관돼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지금 F-X 사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주요 인물들 대부분이 당시 F-18에서 F-16으로 기종을 바꾸는 데 공을 세웠던 실무자들이었다는 사실도 가히 충격적이다.

F-16 주도세력이 국방부 점령


사진/ 차기전투기 사업과 관련해 프랑스 정부쪽 특사와 만나는 김동신 국방장관. 현재 기무사는 프랑스제 라팔을 선호하는공군조종사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한겨레 서정민 기자)


국방부 내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통으로 통하는 김동신 국방장관을 비롯해, 김 장관을 측근에서 보좌하고 있는 정책통인 차아무개 장군, 최근 국방연구원장으로 옮겨간 황아무개씨 등이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이 가운데 황아무개씨는 과거 F-16으로 기종을 바꿀 당시 국방연구원에서 무기도입의 비용 대 효과 분석에 관여하는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다. 이번 F-X 사업의 1단계 기종평가가 임박한 시점에서 평가의 핵심주체인 국방연구원장으로 임명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 합참에서 3성 장군으로 전역하고 미국의 랜드연구소에서 한반도안보정책를 연구하고 있는 군 최고의 ‘전략통’으로 알려진 김아무개 장군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 양대에 걸쳐 청와대 국방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김종휘 외교안보수석의 지침을 받아 F-16으로 기종을 변경시킨 데 가담한 실무자다. 국방부가 지난해 김아무개 장군을 진급시키기 위해 4성 장군 직제를 신설하려다 국회의 반발로 무마된 적이 있을 정도로 그의 비중은 가볍지 않았다.

현 재향군인회장인 이상훈씨는 하나회 출신이며 과거 F-16 기종변경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이다. 이 인사가 지난해 3월 미국의 F-15K 구매압력이 고조되던 시점에 김 대통령의 미국 방문시 동행한 것도 주목된다. 현재 기무사령관인 문아무개 장군은 F-16으로의 기종변경 당시 워싱턴의 주미 한국대사관의 무관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대미외교의 중요한 축을 이룬 인물이다. 기무사가 프랑스제 라팔을 선호하고 있는 공군 조종사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그의 행적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런 사실들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과거 F-16 기종변경을 주도했던 세력들이 지금 다시 국방부를 재점령해 이제는 F-15K를 관철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방 최고위층 인맥들의 성격을 분석해보면 ‘전두환식 대외의존 안보사상’이 부활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지금 공군이 공정하게 기종을 결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박정희식 자주적 안보사상’에 대한 저항이라고 보면 된다. 단순히 공군조종사 조 대령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세력경쟁의 양상을 띠고 있다. 바로 이 점이 12년 전 KFP 소동과 유사한 점이다.

기종결정 가중치 계산의 허실


사진/ 서울 용산 국방부 전경. 국방부 최고우층 인맥은 과거 F-16기종변경을 주도한 핵심세력들이다. (이용호 기자)


그러면 지금 국방부의 최고위층이 왜 지난해에 기종을 결정하지 못하고 이제까지 질질 끌어오면서 이렇게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는가도 의문으로 남는다. 6차례의 사업연기의 표면적인 명분은 기술이전 및 계약을 위한 협상에 따른 지연이다. 즉 좋은 가격조건, 기술조건으로 전투기를 구입하기 위해 업체간 경쟁을 유도하고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였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기술이전, 계약조건이 기종결정에 미치는 가중치는 국방부 발표대로라면 11.99%다. 이 11.99%의 구성을 보면 핵심기술획득 5.51%, 항공우주산업지원(작업량) 1.97%, 옵셋계약 1.97%, 주계약조건 2.54%다. 미래 항공산업 육성을 위한 기술획득이 5.51%밖에 안 된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여기에 대한 배점에서도 기술이전을 전혀 안 해 주겠다는 공급업체에 대해서도 0점이 아닌 60점 처리를 하겠다는 배점기준이 최근 말썽이 되고 있다. 이 40점의 차이는 가중치에 0.4를 곱한 숫자만큼의 변별력을 가진다는 뜻이다. 결국 핵심기술이전에 완전히 등을 돌려 기술이전을 전혀 안 해 주더라도 기술이전을 100% 해주겠다는 업체와 차이가 5.51%×0.4(점수 최대차)〓2.20%다.

어디 그뿐인가. 국방부는 지난해 4월 해외업체와의 새로운 협상지침에서 절충교역 지침을 30%에서 70%로 상향조정하고 국내 업체 수주물량 부분을 협상 우선순위 D등급에서 A등급으로 상향조정했다. 즉 이 전투기 사업에서 외국업체만이 아니라 국내업체도 먹여살려 주는 업체에 높은 점수를 두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앞의 계산법에 의하면 이 국내업체 물량에 대한 변별력은 1.97%×0.4〓0.78%, 즉 1%도 안 되는 변별력이다.

라팔이 기술이전으로 100을 해준다고 할 때, 보잉사는 기술이전을 약 70 정도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물량도 이와 비슷한 차이를 갖고 있다. 그러면 변별력을 다시 계산해야 하는데, 2.98%×0.3(예상되는 기술이전과 국내 물량제공 차이)〓0.89%다. 즉 절충교역에 의한 기술이전과 국내업체 물량제공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변수로서의 가치를 전혀 갖지 못한다.

F-15 홍보실로 전락한 국방부 홈페이지

이렇게 보면 조 대령의 양심선언의 의미가 비로소 이해가 간다. 분명히 조 대령은 양심선언에서 국방부가 기술이전을 5% 이내의 가중치로 제한하려 했던 사실을 집중 성토하고 있다. 조 대령의 양심선언에 대해 국방부 당사자들은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특히 외압을 행사했다는 구체적 정황은 당시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해명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1년 반에 걸쳐 공군과 조달본부, 국방과학연구소가 진행해온 성능시험평가 및 협상의 결과가 기종선정에서 주요한 변수로서의 가치가 상실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부인한 바 없다. 오히려 국방부 홈페이지는 지난 3월15일부터 F-15K 홍보매체로 전락하고 있다.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분노도 들끊고 있다. F-16을 둘러싼 12년 전 사기극의 후속편인 F-15K를 향한 두 번째 대국민 사기극은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김종대/ 군사평론가 geong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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