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03월13일 제400호 

이수동←김홍업←김성환←?

김홍업에게 흘러들어간 돈의 출처는 이용호일까… 돈줄을 찾아 바빠진 특검팀

대통령 아들의 이름이 나왔다. 개인비리를 넘어서, 대통령 집사의 정치개입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단서도 잡혔다. 이용호 게이트를 수사중인 차정일 특별검사팀의 눈길이 바야흐로 우리 사회의 가장 깊숙한 성역을 넘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안에는 무슨 비밀이 숨어 있을까. 특검팀은 그 안에서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까.


사진/ 이용호씨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 다른 이권에도 개입한 흔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종수 기자)


이수동 전 아태평화재단 상임이사(구속)의 계좌에서 발견된 4400만원은 김대중 대통령 차남이자 아태재단 부이사장인 홍업씨가 친구 김성환씨로부터 받은 1억원의 일부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성환씨는 최근 <한겨레> 기자와 만나 “지난해 홍업씨가 돈을 빌려달라고 해 차명계좌에 가지고 있던 1억원을 준 일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김씨는 이 전 이사의 계좌에서 발견된 돈이 김씨의 차명계좌에서 나온 사실을 파악한 특검팀의 소환을 받고 잠적중이었다.

이번 수사에서 홍업씨의 이름은 일단 ‘한줄 걸쳐진’ 상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억원이라는 돈이 홍업씨를 통해 이 전 이사를 비롯해 아태재단쪽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사실만 확인됐을 뿐, 돈의 성격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홍업씨가 특검팀의 소환조사까지 받으려면 문제의 돈이 이용호씨로부터 나왔다거나 돈의 성격이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된 사실이 규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영수증도 없는 깨끗한 돈?


사진/ 김대중 대통령 차남 김홍업씨. 친구 김성환씨로부터 받은 1억원이 이용호씨 구명활동과 관련된 것인지 의혹이 쏠리고 있다.


지금으로선 이 돈에 대한 판단 근거는 돈을 주고받은 당사자의 입에서 나온 말뿐이다. 김씨는 <한겨레> 기자에게 “문제의 1억원은 가정부의 차명계좌에 입금해 관리해온 내 돈”이라며 “이용호씨한테서 받은 돈도 아니고 홍업씨가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아태재단쪽도 “올해 초 직원 퇴직금을 중간정산하면서 이 전 이사 등 직원들한테 지급됐다”고 해명했다. 양쪽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돈은 홍업씨와 이용호 게이트 사이의 연결고리로서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이 돈이 홍업씨가 친구로부터 개인적으로 빌린 돈이라고 믿어주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김씨는 처음부터 이용호 게이트와 무관하지 않은 인물이다. 김 대통령 처조카인 이형택 전 예보공사 전무(구속)로부터 “신승남 전 검찰총장에게 동생 승환씨의 금품수수 사실을 알려서 이용호씨에 대한 수사를 무마시켜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김씨는 이 문제로 이미 특검에서 한 차례 조사를 받았으나 “부탁을 받은 뒤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왜 1억원이라는 돈이 차명계좌에서 관리됐는지도 돈의 성격과 관련해 의심을 살 만한 대목이다. 특검팀은 이용호씨의 청탁을 들어주고 받은 사례금 성격의 돈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사업이 부도난 뒤 이리저리 필요한 자금을 차명계좌에 감춰뒀던 것”이라며 “문제가 있다면 금융실명제를 위반한 것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특검의 소환통보에 불응한 채 잠적해 의혹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용호 게이트와는 별개로, 김씨와 홍업씨 사이에 오간 돈이 ‘부적절한 돈’이 아닌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홍업씨가 이 돈을 빌려 아태재단 운영비로 쓴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아태재단으로 들어오는 돈은 모두 영수증을 발급해주는 ‘깨끗한 돈’이라는 아태재단쪽의 주장과는 동떨어진다. 영수증을 끊어주고 받은 후원금이 아니라면 마땅히 차용증을 써줘야 할 돈인데도, 이 돈에는 아무런 단서조항도 붙어 있지 않다. 그런 돈이 아태재단 운영비로 쓰였다면 아태재단의 정체성에도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단서조항이 없는 돈을 받았다면 거꾸로 암묵적이고 포괄적인 대가성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김씨는 “우리는 80년부터 돈거래를 해왔지만 고교 동기이자 학군장교 동기인 40년지기로 돈거래를 초월한 사이”라며 “내가 이름이나 팔아 이권에 개입할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가 대통령 처조카로부터 이용호씨 구명운동 부탁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의 정치적·사회적 위치가 단순히 ‘자연인 김홍업’의 친구 이상임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 대통령 ‘집사’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의 ‘탈선’은 특검 수사를 통해 차츰 여러 갈래로 드러나고 있다. 이용호씨로부터 금감원 조사 무마 청탁으로 받은 사례금 5천만원을 받은 혐의와 별개로 군 수뇌부 등의 인사와 이권사업에도 개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검팀의 이 전 이사 집 압수수색 결과 해군 임아무개 준장의 승진청탁 메모와, 이아무개씨의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직 채용을 알아봐달라는 청탁 메모, 월드컵 상암구장 매장 임대절차 관련서류, 6명의 이력서 등이 발견됐다.

이 전 이사는 특검에서 청탁과 관련해 “총경의 승진을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지인에게 알아본 결과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는 진술과 “한국전자복권 김현성 사장으로부터 제주도 발행 복권의 판매권을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제주지사에게 전화를 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특검은 이런 혐의들이 이용호 게이트로 한정된 특검의 수사 범위에서 벗어나는 사안이라고 판단해 수사내용을 검찰에 통보할 방침이어서 구체적인 혐의사실은 당장 밝혀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수동 전 이사의 다른 비리도 드러나

그러나 이 전 이사 집 압수수색에서 드러난 개인적 탈선혐의는 그의 정치개입 의혹에 가려져 빛이 바래고 있다. 특검팀은 압수수색에서 언론개혁과 정권 재창출에 관한 정치성 문건들을 발견했다. 이 전 이사가 보관해온 문건은 △‘개혁을 추진하면서 통치권을 강화시켜 정국안정을 유도하고 차기정권 창출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 연구’ △‘지방언론 개혁방안 접근(광주·전남지역을 중심으로)’ 등이다.

이 문건들은 작성 주체나 경위 등이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전 이사가 문건 작성자와 보관 경위 등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건들이 김대중 대통령의 집사 노릇을 해온 이 전 이사 집에서 발견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전 이사 자신은 물론 아태재단의 국정개입 시비를 낳고 있다. 아태재단이 이들 문건 작성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 문제도 차정일 특검팀이 아닌 검찰에서 수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일이어서, 세간의 궁금증과 의혹은 계속 증폭될 수밖에 없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차정일 특검팀의 수사가 한창 정권 핵심부로 향하고 있는 지금이 수사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한 차례 조사기한을 연장한 차 특검팀의 최종 조사기한은 이달 하순이면 끝이 나고, 더이상 연장할 수도 없다.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켜온 차 특검팀이 지금까지 들춰낸 의혹들을 남은 시간 안에 얼마나 철저히 확인해내느냐가 차 특검팀의 성공 여부를 가를 마지막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




↑Back to th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