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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동아의 ‘할리우드 액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흠집내기 위한 공작… 광복회와 의원모임간 의견차 의도적으로 부풀려
자칭 민족정론지의 ‘친일파를 위한 변명’은 교묘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하 의원모임·회장 김희선 민주당 의원)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공개가 나오자마자 흠집내기에 나섰다. 의원모임이 발표한 708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중 <조선일보>의 전 사장인 계초 방응모씨와 <동아일보>의 창업사주인 인촌 김성수씨가 포함된 까닭이다. 708명의 명단은 광복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확정한 692명과 의원모임이 최종 심의를 거쳐 추가한 16명의 친일행위자로 나뉜다. 692명은 광복회의 공인을 받은 친일명단인 셈이다. 반면 16명은 의원모임이 광복회 자료를 건네받아 자체적으로 확정한 명단이다. 여기에는 두 전임 언론사주 외에도 여성박사 1호 김활란과 시인 모윤숙 등 여성계 인사 6명, <봉선화> 작곡가인 홍난파와 서울음대 창설의 주역 현제명 등 문화·예술계 인사 6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
발표 전 광복회의 양해 구해
“명단 작성 작업을 주도했던 광복회쪽은 이날 발표된 708명 중 16명은 ‘광복회와 무관하게 해당의원모임쪽이 정치적으로 추가시킨 것’임을 밝히고, ‘이런 문제는 정치적, 감정적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해당 의원들에게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의원모임이 친일명단을 공개한 다음날인 2002년 3월1일치 <조선일보> 1면 머릿기사다. 같은 날짜 <동아일보>도 한 의원의 입을 빌려 “끼워넣기” 운운했다. 이처럼 두 신문은 공히 광복회를 내세워 추가명단의 정당성을 문제삼았다. 의원모임쪽이 정치적 의도 아래 “광복회와 무관하게” 명단을 “끼워넣기”해 광복회쪽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단 작성 과정을 살펴보면 오히려 이런 보도가 어떤 의도 아래 이뤄진 왜곡임이 드러난다. 광복회는 의원모임과의 협력 속에 친일명단 작성 작업을 진행했다. 광복회의 친일명단 작성은 1999년 12월로 거슬러올라간다. 1년여에 걸친 자료수집 끝에 광복회는 900여명의 친일파 명단을 작성해 2001년 4월 구성된 광복회 심의위원회에 넘겼다. 심의위는 1948년 제헌의회에서 제정, 공포한 ‘반민족행위자처벌법’에 의거해 심사를 진행했다. 2001년 6월에 만들어진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은 출범 초기부터 친일명단 작성에 관심을 가져왔다. 모임 발족 전부터 김희선 의원은 광복회 심의위원으로 명단작성 작업에 참가해온 터였다. 광복회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자료조사와 명단작성을, 의원모임은 명단발표를 맡는 형태로 역할분담까지 합의된 상황이었다. 김희선 의원쪽은 “광복회와 의원모임이 친일명단 발표와 학술행사를 포함한 3·1절 기념행사를 함께 진행하기로 계획까지 세웠으나 16명 포함 여부에 대한 심의위 내부의 논란이 길어지면서 공동행사가 무산됐다”고 밝혔다. 공동행사 취소의 직접적 이유는 광복회의 명단 선정 일정이 지연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공동행사의 취소 원인을 광복회가 제시한 명단을 국회의원들이 거부한 데서 비롯된 것처럼 보도했다. 10개월에 걸친 심의 끝에 심의위는 2002년 2월 692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명단을 확정했다. 그러나 16명은 끝까지 논란이 빚어져 집중 심의대상으로 남겨졌다. 심의위원회 내부의 찬반양론이 팽팽한 탓이었다. 광복회 이희일 이사는 “광복회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이들의 친일행각이 없었다는 게 아니다”면서 “다만 친일의 경중을 따져야 하는데 이들의 친일행각이 이번에 확정된 수괴급 친일인사 692명만큼 심각한가에 대해 심의위원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의 친일 행각은 광복회가 자체 심의위원회로 넘긴 방응모·김성수 두 사람에 대한 보고서에도 확인된다. 각각 A4지 9장에 걸쳐 두 사람의 친일행각을 자세히 기록한 보고서의 제목은 다름 아닌 ‘언론을 내세워 일제에 아부한 교화정책의 하수인’과 ‘민족지도자로 둔갑한 친일자본가’였다. 논란이 길어지고 3·1절이 코앞에 다가오자 의원모임쪽은 “명단을 일단 넘겨주면 집중심의 대상자에 대해서는 의원모임의 자체 심의를 거쳐 발표하겠다”는 의사를 광복회쪽에 전했다. 결국 지난 2월22일 광복회는 692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명단과 집중심의 대상자 16명에 대해 국회에서 다뤄줄 것을 요청하는 청원을 의원모임에 보내왔다. 의원모임쪽은 2월27일 13명의 의원과 7명의 자문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최종 심사위원회(위원장 서상섭 한나라당 의원)를 열고 16명을 친일행위자에 포함할 것을 결정했다. 의원모임의 한 의원은 “광복회의 2차 명단 발표 계획도 없는 상황에서 친일행위의 사회적 책임이 큰 16명의 친일명단 포함을 미룰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2월28일 의원모임은 친일반민족행위자 708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의원모임쪽은 “광복회와 완벽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아쉬움은 남는다”면서도 “16명의 친일명단 포함에 대해서 광복회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의원모임쪽의 일방적인 결정이 아니라 광복회의 사전 양해를 구한 사항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16명의 명단 추가과정을 “기습적”이라고 표현했다.
엉뚱한 논란, 희석된 역사청산
유예된 역사청산은 뒤집힌 현실을 낳았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692명이든 708명이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발표된 인물들의 이름과 행적은 싣지 않았지만,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 소속 의원들과 자문위원 명단, 광복회 심의위원 이름은 마치 책임을 추궁하듯 상세히 기재했다. 죽은 친일 유령의 살아 있는 영향력이 또다시 역사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 통하는 사회에서 역사의 왜곡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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