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03월06일 제399호 

조선·동아의 ‘할리우드 액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흠집내기 위한 공작… 광복회와 의원모임간 의견차 의도적으로 부풀려

자칭 민족정론지의 ‘친일파를 위한 변명’은 교묘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하 의원모임·회장 김희선 민주당 의원)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공개가 나오자마자 흠집내기에 나섰다. 의원모임이 발표한 708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중 <조선일보>의 전 사장인 계초 방응모씨와 <동아일보>의 창업사주인 인촌 김성수씨가 포함된 까닭이다.

708명의 명단은 광복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확정한 692명과 의원모임이 최종 심의를 거쳐 추가한 16명의 친일행위자로 나뉜다. 692명은 광복회의 공인을 받은 친일명단인 셈이다. 반면 16명은 의원모임이 광복회 자료를 건네받아 자체적으로 확정한 명단이다. 여기에는 두 전임 언론사주 외에도 여성박사 1호 김활란과 시인 모윤숙 등 여성계 인사 6명, <봉선화> 작곡가인 홍난파와 서울음대 창설의 주역 현제명 등 문화·예술계 인사 6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

발표 전 광복회의 양해 구해


사진/ 의원모임이 발표한 708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은 광복회가 확정한 692명과 의원모임이 추가한 16명으로 나뉜다.<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 차이를 과장했다. (박승화 기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두 명단 사이의 틈바구니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광복회가 확정 발표한 692명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으면서 두 사주가 포함된 16명의 명단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파고들기는 그 어떤 쇼트트랙 선수보다 재빠르고 집요했다. 광복회와 의원모임의 틈을 확대·과장해 명단 발표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한 것인 양 부풀리는 수법은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을 떠올리게 했다.

“명단 작성 작업을 주도했던 광복회쪽은 이날 발표된 708명 중 16명은 ‘광복회와 무관하게 해당의원모임쪽이 정치적으로 추가시킨 것’임을 밝히고, ‘이런 문제는 정치적, 감정적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해당 의원들에게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의원모임이 친일명단을 공개한 다음날인 2002년 3월1일치 <조선일보> 1면 머릿기사다. 같은 날짜 <동아일보>도 한 의원의 입을 빌려 “끼워넣기” 운운했다. 이처럼 두 신문은 공히 광복회를 내세워 추가명단의 정당성을 문제삼았다. 의원모임쪽이 정치적 의도 아래 “광복회와 무관하게” 명단을 “끼워넣기”해 광복회쪽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단 작성 과정을 살펴보면 오히려 이런 보도가 어떤 의도 아래 이뤄진 왜곡임이 드러난다.

광복회는 의원모임과의 협력 속에 친일명단 작성 작업을 진행했다. 광복회의 친일명단 작성은 1999년 12월로 거슬러올라간다. 1년여에 걸친 자료수집 끝에 광복회는 900여명의 친일파 명단을 작성해 2001년 4월 구성된 광복회 심의위원회에 넘겼다. 심의위는 1948년 제헌의회에서 제정, 공포한 ‘반민족행위자처벌법’에 의거해 심사를 진행했다.

2001년 6월에 만들어진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은 출범 초기부터 친일명단 작성에 관심을 가져왔다. 모임 발족 전부터 김희선 의원은 광복회 심의위원으로 명단작성 작업에 참가해온 터였다. 광복회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자료조사와 명단작성을, 의원모임은 명단발표를 맡는 형태로 역할분담까지 합의된 상황이었다.

김희선 의원쪽은 “광복회와 의원모임이 친일명단 발표와 학술행사를 포함한 3·1절 기념행사를 함께 진행하기로 계획까지 세웠으나 16명 포함 여부에 대한 심의위 내부의 논란이 길어지면서 공동행사가 무산됐다”고 밝혔다. 공동행사 취소의 직접적 이유는 광복회의 명단 선정 일정이 지연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공동행사의 취소 원인을 광복회가 제시한 명단을 국회의원들이 거부한 데서 비롯된 것처럼 보도했다.

10개월에 걸친 심의 끝에 심의위는 2002년 2월 692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명단을 확정했다. 그러나 16명은 끝까지 논란이 빚어져 집중 심의대상으로 남겨졌다. 심의위원회 내부의 찬반양론이 팽팽한 탓이었다. 광복회 이희일 이사는 “광복회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이들의 친일행각이 없었다는 게 아니다”면서 “다만 친일의 경중을 따져야 하는데 이들의 친일행각이 이번에 확정된 수괴급 친일인사 692명만큼 심각한가에 대해 심의위원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의 친일 행각은 광복회가 자체 심의위원회로 넘긴 방응모·김성수 두 사람에 대한 보고서에도 확인된다. 각각 A4지 9장에 걸쳐 두 사람의 친일행각을 자세히 기록한 보고서의 제목은 다름 아닌 ‘언론을 내세워 일제에 아부한 교화정책의 하수인’과 ‘민족지도자로 둔갑한 친일자본가’였다.

논란이 길어지고 3·1절이 코앞에 다가오자 의원모임쪽은 “명단을 일단 넘겨주면 집중심의 대상자에 대해서는 의원모임의 자체 심의를 거쳐 발표하겠다”는 의사를 광복회쪽에 전했다. 결국 지난 2월22일 광복회는 692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명단과 집중심의 대상자 16명에 대해 국회에서 다뤄줄 것을 요청하는 청원을 의원모임에 보내왔다. 의원모임쪽은 2월27일 13명의 의원과 7명의 자문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최종 심사위원회(위원장 서상섭 한나라당 의원)를 열고 16명을 친일행위자에 포함할 것을 결정했다.

의원모임의 한 의원은 “광복회의 2차 명단 발표 계획도 없는 상황에서 친일행위의 사회적 책임이 큰 16명의 친일명단 포함을 미룰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2월28일 의원모임은 친일반민족행위자 708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의원모임쪽은 “광복회와 완벽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아쉬움은 남는다”면서도 “16명의 친일명단 포함에 대해서 광복회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의원모임쪽의 일방적인 결정이 아니라 광복회의 사전 양해를 구한 사항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16명의 명단 추가과정을 “기습적”이라고 표현했다.

엉뚱한 논란, 희석된 역사청산


사진/ 일제잔재 청산작업은 또 발목 잡히고 말 것인가. 반민특위에 검거되어 법적으로 끌려가는 친일 혐의자들.


두 언론의 보도는 윤경빈 광복회장의 입을 통해서도 반박당했다. 윤 회장이 3월1일치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가 의원들의 명단발표에 대해 ‘정치적 감정적으로 처리했다’고 지적한 것처럼 보도한 <조선일보>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힌 것이다. 이어 그는 <동아일보>가 자신이 “반민특위 명단에도 없는 사람을 친일 반역자로 모는 것은 이해 안 돼”라고 말한 것처럼 보도한 데 대해서도 “그런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역사문제연구소 이신철 연구원은 “두 신문의 보도행태는 선정과정에 대한 쟁점화를 통해 역사청산 문제를 희석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라며 “말초적인 논란 속에 정작 친일행위에 대한 역사적 반성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사진/ 1948년 반민특위의 활동은 우익의 방해공작으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친일파를 심리 중인 반민특위 법정.


의원모임은 명단 공개와 더불어 친일문제를 파헤칠 진상규명위원회 설치, 일제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추진을 제안했다. 특별법 제정은 국가기구에 의한 일제잔재 청산작업의 첫걸음이다. 하지만 정작 이에 관한 토론은 전무한 상태다. 이신철 연구원은 “두 신문의 비판근거 중 하나는 몇몇 국회의원들이 모인 임의단체가 자의적으로 친일파를 선정했다는 것”이라며 “오히려 이런 비판은 국가기관에 의해 추진되는 청산작업이 필요함을 방증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는다.

유예된 역사청산은 뒤집힌 현실을 낳았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692명이든 708명이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발표된 인물들의 이름과 행적은 싣지 않았지만,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 소속 의원들과 자문위원 명단, 광복회 심의위원 이름은 마치 책임을 추궁하듯 상세히 기재했다. 죽은 친일 유령의 살아 있는 영향력이 또다시 역사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 통하는 사회에서 역사의 왜곡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친일파 청산의 닻 올리다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독립군을 때려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왜 빠진 겁니까?”

2002년 2월28일 오전 11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이 발표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가벼운 항의소동이 벌어졌다. 곽태영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친일 반역자 박정희를 뺀 것은 핵심을 비켜간 것 아니냐”며 목청을 높인 것이다.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의 서상섭 한나라당 의원은 “48년 제정된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의 기준을 따르다 보니 경찰 서장급과 소대장급 이상 군속 등 빠진 부분이 있다”며 “앞으로도 추가조사를 진행해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제외에는 현실적인 맥락도 고려됐다. 의원모임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을 포함하면 반발이 너무 커져 일제잔재 청산작업이 출발부터 좌초될 위험이 크다”며 “이런 현실을 고려해 1차 명단 발표에서는 일단 제외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날 발표된 692명은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의 기준에 해당되는 수괴급 반민족행위자들이다. 을사오적인 이완용부터 일진회의 김명준, 고등형사 10명까지 일제시대 고위 관직에 오른 인물들이 두루 포괄돼 있다. 애국자 살상자 22명, 군수산업 관련자 12명의 이름도 올라 있다. 적극적으로 친일행위에 가담한 서정주, 주요한, 이광수, 최남선 등 문화계 인사 44명의 이름도 올라 있다. 의원모임 회장인 김희선 민주당 의원은 “해방 57년이 지났지만 누가 언제 어떤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는지에 대한 공인된 자료 하나 갖고 있지 못한 실정”이라며 “이번 명단 발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정리, 발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의원모임은 명단 발표의 후속 작업으로 ‘일제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을 위한 법률’을 제안할 계획이다. 이 법률에는 친일반민족행위의 범주와 진상규명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련한 세부사항 등이 규정된다. 기자회견 내내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 소속 의원들은 “이번 발표는 1차 발표일 뿐”이라며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발표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57년 만에 돛을 올린 친일파 청산작업은 출발부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라는 암초에 부딪혔다. 벌써부터 흔들리는 항해가 곳곳에 숨은 암초들을 뚫고 해원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을까.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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