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연구기관인가 권력기관인가 이용호 게이트에 휘말린 아태평화재단…아무리 순수하다고 해도 못 믿는 이유
사무실 마련 50억의 출처는
한나라당은 이번 사태가 불거지면서 연일 아태재단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상득 사무총장은 “아태재단은 대통령이 만들고 대통령 차남이 부이사장이며 이수동씨가 핵심역할을 해왔다”며 “대통령은 즉각 아태재단에서 손을 떼고 재단을 해체하는 것이 의혹을 벗어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강두 정책위 의장도 “아태재단이 정치자금 창구 역할을 했다면 아태재단이야말로 악의 뿌리”라고 비난했고, 이재오 원내총무는 “아태재단이 권력형 비리의 종착역인지 또다른 종착역으로 가기 위한 간이역인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물론 한나라당의 공격은 뚜렷한 근거에 입각한 것은 아니다. 아태재단쪽은 “이번 일은 이수동씨 개인의 문제일 뿐 재단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펄쩍 뛰고 있다. 그러나 아태재단쪽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끝내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아태재단은 과거에 김대중 대통령이 세웠고, 현재 김 대통령 차남 홍업씨가 관리하고 있으며, 미래에 김 대통령이 되돌아갈 곳이라는 사실이다. 김 대통령의 어제와 오늘뿐 아니라 내일까지 깊숙이 관련있는 곳이 바로 아태재단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말 아태재단은 김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 바로 옆에 빌딩을 신축해 사무실을 옮겼다. 7년 동안의 ‘셋방살이’를 끝내고 김 대통령 퇴임에 대비해 영원한 둥지를 튼 것이다. 지상 5층, 지하 3층, 연건평 1489평 규모로, 394평의 터는 야당 시절 김 대통령 집을 감시하던 사찰 가옥 2채를 포함해 모두 4채를 사들여 조성했다. 터를 사는 데 30억원이 들었고, 건물을 짓는 데도 별도로 50억원 정도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나라당 등은 이 돈이 어디에서 났는지 밝히라고 공격하고 있다. 돈의 출처에 대한 아태재단쪽의 해명은 비교적 명확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이전부터 건물 신축을 계획해 이희호씨의 영등포 땅을 팔고 남았던 돈과 후원회비 등에서 해마다 7억∼8억원씩 모아왔으며, 그러고도 모자라 은행에서 20억원 정도를 빌렸다는 것이다. 아태재단의 한 고위 관계자는 “건물 신축을 결정할 당시 구설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으나 대통령 퇴임 뒤에 짓더라도 뒷말이 나오기는 마찬가지이니 지금 있는 돈으로 짓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며 “돈 때문에 걸릴 일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임기중에 퇴임 뒤를 대비한 재단 건물을 신축한 것을 두고 한나라당 등은 아태재단을 일해재단과 빗대 공격하기도 한다. 퇴임 뒤에도 ‘수렴청정’을 하기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얘기다. 물론 아태재단쪽은 “비교할 걸 비교하라”며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재단 관계자들 정권 요직에 포진
재단 관계자는 “일해재단은 기업들을 협박해 거액을 뜯어낸 것이지만 아태재단에는 그런 돈이 10원 한푼도 없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이야 군사정권을 계속 이어가려고 했기에 그런 구상을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이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아태재단에 대한 문제제기가 미래를 겨냥하는 것만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은 물론, 이후 통치과정에도 깊숙한 관련이 있다는 게 야당의 시각이다. 실제로 아태재단 설립은 김대중 대통령의 정계복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순수한 연구소와 재단을 놓고 상당기간 내부 논란을 거친 끝에 활동영역이 넓은 재단쪽을 선택한 것부터가 그랬다. 재단 이름을 아태평화재단으로 한 것도 김대중 대통령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아우르는 세계적 지도자의 이미지로 만들기 위한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아태재단은 순수 학술단체라고 보기에는 규모가 컸고, 고문과 자문위원 등으로 참여한 인물들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 등 해외 저명인사들과 김수환 추기경, 조순씨 등 매우 화려했다. 또한 내부 진용은 김대중 대통령의 급진적 이미지를 상쇄하기 위해 군 출신인 임동원 현 청와대 통일특보가 사무총장으로 영입되는 등 대부분 보수적 인사들로 짜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에 큰 영향을 끼친 디제이피연합 아이디어가 아태재단 안에서 나오는 등 대선 싱크탱크 구실도 톡톡히 했다. 97년 대선 뒤에는 아태재단 출신들이 정권 요직에 대거 포진했다.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 전도사 역할을 해온 임동원 특보를 비롯해 이강래 전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 나종일 전 안기부 1차장, 신건 국정원장, 유종근 전북지사, 박태영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남궁진 문화관광부 장관,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 황용배 전 마사회 감사 등도 아태재단을 거쳤다. 아태재단 출신들의 요직 포진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통령 만들기에 대한 논공행상 성격과 함께 정권의 정책 브레인 구실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아태재단이 김대중 대통령의 정계복귀와 대선 과정에서 당시 여권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던 것은 무엇보다 아태재단이 김 대통령의 정치자금 모금 창구 구실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태재단은 설립 당시 외교통상부에 신고한 기본자산이 17억6500만원이었다. 설립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출연한 금액은 15억1천만원으로, 부인 이희호씨의 명의로 되어 있던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대지와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임야 등을 팔아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태재단 후원금은 공천헌금?
<월간조선>은 지난해 8월 “아태재단의 결산보고서 등을 분석한 결과 지난 7년 동안 후원금 등으로 213억원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부문별 수입 현황을 보면 후원회 수입이 133억4363만원으로 63%를 차지했고, 다음으로 후원행사장에서 10만원권 쿠폰을 팔아 얻은 수입이 48억6349만원으로 많았다. 이 밖에 찬조금이 12억6100여만원, 김대중 대통령 출연금 15억1천만원 등이었다. 김 대통령의 출연금을 제외한 수입은 형식상 항목만 다를 뿐 모두 후원금 성격이라고 <월간조선>은 분석했다. 재단 후원회를 통해 들어온 후원금은 해마다 편차가 컸다. 재단 설립 첫해인 1994년 7억3500만원에서 다음해 33억6500만원으로 크게 늘어난 뒤 96·97년에는 각각 10억원 안팎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첫해인 98년에는 후원금이 28억7000만원으로 97년보다 세배 이상 늘었으며, 99년과 2000년에도 20억원을 넘었다. 쿠폰 수입이나 찬조금도 대통령 취임 뒤 큰 폭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2000년에는 모든 수입이 뚜렷한 감소세로 돌아섰다. 납부한 후원금이 뒷날 잡음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1995년 8월 민자당(지금 한나라당) 소속의 한 시의원은 “국민회의 소속 어느 간부 시의원이 지지를 당부하던 교육위원 후보들에게 아태재단 후원금 500만원을 내면 재단 중앙위원으로 위촉하고 교육위원으로 선출해 주겠다며 후원금을 강요해 20여명이 돈을 내고 가입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대해 아태재단쪽은 “교육위원 후보 50명 가운데 11명이 평균 500만원씩을 내고 재단 후원회원이 됐으나 교육위원 선출과는 무관하다”고 밝혀, 일부 사실을 시인했다. 같은 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석된 최선길 서울 노원구청장은 수사 과정에서 구청장 공천을 전후한 시점에 아태재단에 후원금 5천만원을 낸 것으로 드러나 여야가 후원금이 공천헌금인가를 놓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또 이미 유준상 전 의원 등은 96년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뒤 이미 냈던 아태재단 후원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으며, 97년에는 후원회를 앞두고 국민회의(지금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1천만∼5천만원씩 후원금을 할당했다가 국회의원들이 반발하자 후원회를 연기하기도 했다. 이들 돈이 정치자금으로 쓰였는지는 아직까지 확인된 바가 없다. 아태재단 관계자는 “사람을 가려가며 돈을 받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음성적으로 받은 후원금은 한푼도 없다”며 “지출에서도 해마다 외교부에 결산보고서를 내고 있어 아태재단 운영비용 외에 다른 곳으로 돈이 흘러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도별 재단 수입금의 편차가 김대중 대통령의 권력의 세기와 일정한 함수관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순수한 연구지원 목적이 아닌 보험 성격의 후원금이 적지 않음은 분명해 보인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아태재단 이름을 빙자해 사기를 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999년에는 경기은행 퇴출과 관련해 아태재단 미주지부 이사 행세를 하던 이아무개씨가 은행쪽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으며, 아태재단이 운영하는 시민교양프로그램인 아태아카데미를 수료한 박아무개씨가 아태재단 간부를 사칭해 외자유치를 해주겠다며 기업들로부터 2억8900만원을 받아 챙겼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최근에도 아태재단 간부 이름을 팔아 경마장 스낵코너를 내주겠다며 돈을 가로챈 사건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홍업 아태재단 부이사장은 지난해 <주간동아>가 서울 강남의 사무실을 ‘비밀사무실’이라고 표현하자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아태재단 사무실에서는 일을 할 수 없어 따로 사무실을 만들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수동 전 상임이사를 잘 아는 관계자도 “이 이사는 집까지 사람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자정 이전에는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아태재단 관계자는 “권력에 선을 대려는 사람들이 꼬이기는 한나라당 같은 곳도 마찬가지”라며 “이들을 얼마나 적절히 통제하느냐로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어쨌든 아태재단이 권력기관으로 비치고 있음을 재단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아태재단은 최근 겪고 있는 심각한 자금난을 들어 재단이 그만큼 깨끗하고 권력기관화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아태재단은 현재 70억원 상당의 신축 빌딩 외에 현금자산이 거의 바닥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빚은 20억원이다. 지난해 60명이던 유급직원도 21명으로 줄였고, 15명이던 박사급 연구원도 5명으로 줄였다. 재단쪽은 최근 직원 급여도 10∼20%씩 삭감했다고 밝혔다. 아태재단 관계자는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퇴임하면 더 심각한 상태로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대통령 취임 뒤 공개 후원회를 열지 못했던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카터재단은 지금도 돈이 엄청나게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 대통령 퇴임 뒤 아태재단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그땐 재벌의 거액 후원금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국민들의 푼돈이 모여 재단의 자금원 구실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끝없는 구설수에 오른다면, 아태재단은 김대중 대통령의 정계복귀와 대통령 당선, 통치를 위한 발판 구실을 끝으로 역사적 효용을 다할지 모른다. 내일은 전혀 새로운 미래가 아니라 어제와 오늘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