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02월20일 제397호 

이석희는 `제2의 이정연'이 될까

‘세풍’ 규명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과 검찰의 진실게임


사진/ 99년 9월 세풍사건중간수사 발표당시 공개된 대선자금 전달 가방들. (한겨레 장철규기자)


마침내 그가 돌아온다. 지난 2월16일 새벽 4시30분(현지시각 15일 오후 2시30분)께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 4명이 미국 미시간주 오키모스시의 한 임대아파트에 체포영장을 들고 들이닥침으로써, 3년6개월에 걸친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의 도피행각이 막을 내렸다. 지난 99년 12월 맺어진 한-미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이 전 차장은 정해진 범죄인 인도절차를 거친 뒤 한국으로 송환된다.

확실한 건 이 전 차장의 신병이 확보됐다는 사실뿐이다. 그것도 머나먼 미국땅에서. 그러나 벌써부터 정국은 심하게 들썩이고 있다. 그가 단순히 국가의 조세권을 유린한 ‘국사범’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른바 ‘세풍사건’(상자기사 참조)의 주역으로 지목받아온 그의 비중이 곧바로 정국에 태풍을 몰고 올 만큼 큰 탓이다.

이회창, 97년의 악몽 속으로


사진/ 최근미국에서 검거된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


그가 지닌 비중은 철저히 ‘정치적’이다. 다가오는 대선 판도의 밑그림을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하는 상황이 비롯될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수사는 곧 97년 대선 당시 국세청을 동원한 정치자금 불법모금 과정에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개입했는가를 규명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가 다른 때도 아닌 대통령 선거를 10개월 앞둔 시점에 붙잡혔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극적이다.

99년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 전 차장에게 사람을 보내 들어오라고 했더니 이 전 차장이 ‘가고 싶어도 내가 들어가면 이회창 총재가 직격탄을 맞기 때문에 못 들어간다’고 했다”며 “가까운 사람을 통해 이 총재쪽에 ‘참 머리가 없다. 이 사건을 오래 끌다 다음 대선에 임박해 터지면 한순간에 가버린다’고 얘기해줬다”고 밝힌 바 있다.

97년 아들의 병역면제 문제가 불거지면서 큰 곤욕을 치르고 마침내 대선에서 패배한 이 총재로서는, 이 전 차장 검거가 5년 전의 악몽을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 전 차장 검거 직후 한나라당 일각에서 “우리 정부쪽에서 이 전 차장의 소재를 미국쪽에 제보해준 것 같다”며 한국 정부가 미 연방수사국을 움직였다는 비현실적인 ‘기획체포설’까지 주장한 것도 시점의 절묘함에 혀를 내두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전 차장은 과연 ‘제2의 이정연(이 총재 장남)’이 될 것인가.

검찰은 99년 9월 이 전 차장 기소중지, 서상목 전 의원 불구속 기소와 함께 수사결과 중간발표를 통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국세청 조직을 동원한 대선자금 불법모금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내비치는 정황증거들을 공개했다. 이 전 차장이 모금 과정에서 경기고 선배인 이 총재와의 친분관계를 과시했고, ㄷ그룹 이아무개 회장이 “대선자금은 이 차장한테 줬는데 이 총재한테서 감사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했고, 대선자금 모금에 간여했던 임채주 전 국세청장도 법정에서 이 총재가 직접 자신에게 격려전화를 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한 점 등이다.

검찰은 또 이 총재의 97년 대선 사조직인 부국팀 보고서에 국세청을 동원한 자금모집을 건의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던 것도 이 총재의 개입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99년 수사 당시 이 총재가 97년 9월 말∼10월 초께 이에 대한 보고를 직접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수사에서 부국팀 관련자들이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아 진전을 보지 못했다. 결국 검찰 처지에서는 이들 문제를 한꺼번에 풀어줄 ‘구세주’가 이석희씨였던 셈이다.

세풍사건 일지

97. 9~12 이석희씨 등 국세청 동원해 24개 기업서 166억원 모금
98. 8 검찰 내사 착수
  8. 22 이석희씨 출국
  9. 1 임채주 전 국세청장 구속
  9. 28 검찰, 서상목 의원 사전구속영장 청구
  11.4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대국민사과성명
  12.12 이 총재 동생 회성씨 구속
99. 4. 7 국회, 서상목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9. 5 이 총재, 두 번째 대국민사과
  9. 6 검찰, 중간 수사결과 발표
2000. 2 검찰, 미국에 이석희씨 신병인도 요청
2002. 2. 16 미국 FBI, 이석희씨 체포

칼자루 쥔 검찰, 정치적 부담은?

반대로 한나라당은 이 총재의 개입은 물론 검찰이 기소한 이 총재의 동생 회성씨의 개입혐의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원창 총재특보는 지난 17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우리가 주장하는 진실은 회성씨는 국세청 관계자들과 공모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차장이 알아서 모금해준 것이라는 얘기다. 남경필 대변인은 한걸음 더 나아가 “그동안 검찰이 왜곡한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한다”며 “이 전 차장 귀국은 우리가 바라던 바”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전 차장이 소환되면 대검 중수부가 수사를 맡을 가능성이 높다. 98∼99년 수사 때도 중수부가 맡았던 것을 감안하면 가장 무난한 방법이다. 더욱이 이명재 검찰총장이 당시 중수부장으로 수사를 지휘해 누구보다 이 사건을 잘 꿰고 있다. 그러나 오는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사안을 검찰총장 지휘선상에 있는 중수부에 맡기면 오히려 정치적 부담을 더 크게 떠안을 수 있다는 게 고민이다. 이 때문에 서울지검 특수부가 수사를 넘겨받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마침 서울지검 특수부에는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가 있다.

수사가 재개되면 검찰과 한나라당 사이에 주도권을 잡기 위한 치열한 수싸움이 예상된다. 이 전 차장이 도피해 있던 3년6개월은 세풍 관련자들이 검찰 수사 재개에 대비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기간이다. 이회창 총재의 한 핵심 측근 인사는 “우리도 이미 다 스크린을 해봤는데 더 나올 게 없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또다른 측근 인사는 “이제서야 대책팀을 꾸리겠느냐. 이미 다 돼 있다”면서도 “어쨌든 우리에게 명백히 불리한 사안이라 이슈화되지 않는 게 최선이다”라며 불안감을 내비쳤다.

역시 칼자루는 수사권을 가진 검찰이 쥐고 있다. 한나라당이 아무리 철저히 수사재개에 대비했더라도 검찰이 어떤 카드를 숨기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다분히 수세적인 대책 수립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검찰쪽이 내비치는 강한 자신감도 검찰이 몇 가지 결정적인 히든카드를 움켜쥐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검찰 관계자는 “공모사실은 이미 관련자들이 다 자백한 것”이라며 “주범격인 이 전 차장이 체포된 만큼 수사를 완결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문제는 검찰의 수사능력이 아니라 수사의지다.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이회창 총재의 대선가도에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정치적 부담을 검찰이 떠안으려 하겠느냐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97년 대선 당시 DJ 비자금 수사를 유보했던 전력이 있는 검찰이기에 이런 목소리는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검찰 처지에서는 이회창 총재가 가장 유력한 대권후보라는 점도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수사를 잘해도 다음 정권에서 곤욕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검제 도입 목소리 높아가


사진/ '경기고 선후배.' 세풍사건 수사가 한창이던 99년 9월 1일 한나라당 당사에서 이회창 총재가 서상목 의원 뒤를 지나고 있다. (김종수 기자)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특검제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은 17일 “한나라당은 방어하려 들 것이고, 민주당은 이용해보려는 유혹을 느낄 것이기 때문에 수사를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특별검찰에 맡기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도 1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세풍은 이회창 총재 죽이기의 표적수사”라며 특검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97년 대선 당시 김 대통령 비자금, 당시 김 대통령과 이인제 후보의 대선자금, 16대 총선자금에 대해 특별검사가 수사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검찰에 대한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이끌 수 있다는 해석도 없지 않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감 때문에 정치적 고려를 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97년 DJ 비자금 수사 때와 달리 얼개를 다 짜놓고 이 전 차장을 통해 사실확인만 하면 되는 상태에서 수사를 흐지부지할 형편도 못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게 하기에는 검찰이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세상에 알려버렸다.

이 전 차장이 송환돼 수사가 재개되는 시점이 이미 민주당 대선후보가 결정된 뒤라는 점도 검찰로서는 큰힘이 될 수 있다. 세풍사건 수사의 최대 수혜자가 될 민주당 후보가 지켜보는 상황에서, 각종 게이트에 시달리는 김대중 정권과 한나라당 사이의 밀거래에 의한 수사중단 가능성은 그만큼 희박해지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검찰의 맘먹기에 따라 수사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조건인 셈이다. 역사적 진실게임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세풍은 어떻게 시작됐나

98년 8월 대검 중수부의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외화 밀반출 사건 수사 과정에서 단서가 잡혀 불거져나왔다. 검찰은 당시 최 전 회장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를 잡고 강도높은 수사를 벌였으나, 최 전 회장으로부터 “임채주 전 국세청장의 요구로 5억원을 한나라당의 대선자금으로 지원했다”는 뜻밖의 진술을 받아내자 수사방향을 전격 수정했다.

검찰은 서둘러 임채주 전 국세청장을 은밀히 소환한데 이어, 미국으로 떠나려던 서상목 의원의 출국을 막았다. 검찰은 4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임 전 청장과 배재욱 전 청와대 비서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동생 회성씨까지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애초 서 전 의원의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았으나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는 바람에 불구속 기소했으며, 서 전 의원은 곧바로 의원직을 사퇴했다.

검찰은 회성씨가 서 전 의원과 검찰의 공개수사 직전 미국으로 달아난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 등 이른바 ‘K1(경기고)’ 인맥들과 짜고 국세청 조직을 동원해 23개 기업에서 166억3천만원을 거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가운데 98억3천만원은 한나라당에 입금됐으며, 나머지 68억원 중 20억∼30억원은 서 전 의원과 동료의원 20여명이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 밖에 서 전 의원과 회성씨 등이 한국종합금융 등 기업체에서 70억원을 추가로 모금한 단서와 이회창 총재의 대선 지원 사조직인 ‘부국팀’이 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을 잡기도 했다. 특히 이 총재의 사전인지 등 사건개입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증거를 확보했으나 사건의 주역인 이석희 전 차장의 해외도피로 수사가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중단돼왔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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