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2년01월23일 제394호 

보인다, 법대로 검찰!

이명재 신임 총장은 검찰개혁의 선봉장이 될 것인가…일단은 모두가 후한 점수


사진/ 취임식장의 이명재 신임 검찰총장. 검찰개혁과 독립을 천명했다.(이정용 기자)

“진정한 무사는 추운 겨울날 얼어 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

잘 벼린 환도의 시퍼런 칼날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이 말은 지난 1월17일 이명재 신임 검찰총장이 부하 검사들에게 던진 취임사의 한 대목이다. 칼끝은 최근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씨의 전별금 등 검사들의 몸가짐과 관련한 잇단 시비를 겨냥하고 있다. 39년 만의 검찰총장 외부인사 발탁에 사법사상 최초의 현직 변호사 검찰총장 임명이라는 화제를 뿌리며 화려하게 ‘등극’한 이 총장에 대해 검찰 안팎의 기대가 높다. 신임 총장에 대한 보기 드문 기대에 대해 그가 내놓은 첫 화답이 다름 아닌 검찰 내부개혁 천명인 셈이다.

김태정과 이명재의 차이

물론 그가 이처럼 높은 기대를 한몸에 받는 것은 비호남 출신이라는 배경도 적잖이 반영됐다. 집권 말기 검찰총수를 대구·경북 인사로 앉힌 점에서 일단 야당은 물론 김대중 정권과 갈등관계에 있는 보수언론으로부터도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게이트 의혹을 잇따라 제기하며 검찰총장 인사 청문회를 주장해온 한나라당은 이명재 변호사의 총장 임명이 결정되자 인사 청문회 주장을 거둬들이는 한편 게이트 의혹 폭로도 자제하기로 하는 등 이 총장 취임에 반색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내 사람”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었다.

하지만 이 총장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김영삼 대통령 임기 말에 호남 출신으로 첫 검찰총장 자리에 올랐던 김태정 전 총장에 대한 그것과도 차별화된다. 김 전 총장도 당시 검찰에 대한 국민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전격 기용됐다. 그러나 김 전 총장은 취임 두달 뒤 열린 국정감사에서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으로부터 “김대중 총재 비자금 의혹을 수사하지 않는다”며 혹독한 비난을 받는 대신 야당이던 국민회의로부터는 “검찰총장에 대한 모독”이라며 지원사격을 받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됐다.

이와 비교해보면 이 총장에 대한 민주당의 반응은 “검찰은 물론 정권에 대한 국민불신을 씻어줄 적임자”라는 ‘안도감’에 가깝다. 김 전 총장이 정권의 정치적 기용에 대해 정치적 처신으로 대응했다면, 이 총장은 정치적 계산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민주당쪽에도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이 총장은 청와대의 삼고초려를 받고서야 취임을 수락한 것으로 알려져, 민주당의 그런 믿음을 더욱 깊게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배경이 이 총장에 대한 기대의 전부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지난해 5월 검찰을 떠날 때까지 보여준 능력과 처신에 대한 평가가 무엇보다 강하게 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당대 최고의 수사검사’라는 얘기를 들을 만큼 탁월한 특수수사통이었다. 특히 검사로 입문하기 전 은행원 경험을 살려 장영자 어음사기사건 등 대형 경제사건을 맡아 해결해왔다. 김대중 대통령이 부정부패 척결을 천명한 터에 그의 수사능력이 검찰총장으로서도 빛을 발할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이 총장은 후배들을 위해 서울고검장에서 스스로 물러나면서 ‘위대한 검사는 좋은 보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의에 대한 신념과 열정에서 나온다’는 말을 남기는 등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또 그는 그의 총장 취임과 함께 검찰을 떠난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과 함께 후배검사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검사로 꼽혀왔다. 검사 시절 보여준 강직함과 공명정대함에 대한 기대와, 비록 검찰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나 외부 영입으로 검찰총장에 오른 점까지 더해져 사심없는 검찰 내부개혁을 이끌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특검제 긍정적 측면도 인정


사진/ 김태정 전 검찰총장은 정권 말기 소외지역의 불만을 해소할 '구원투수'로 기용됐으나, 정치적 처신으로 구설수에 올랐다.(한겨레 이정우 기자)


이 총장의 취임사가 구두선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상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총장은 취임 직후 정현준·진승현·이용호 게이트의 부실수사에 대한 수사 관련자들의 문책인사를 단행할 것임을 강하게 내비쳤다. 문책인사는 큰 폭이 될 가능성이 커 검찰 내 역학구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이용호 사건을 담당했던 대검 중수부 수사진의 경우 가장 큰 인사에 휘말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 2000년 정현준·진승현 게이트를 수사했던 서울지검 관계자들도 문책인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과 김경한 서울고검장, 김영철 법무연수원장 퇴임에 따라 임박한 검사장급 인사에서도 게이트 수사 지휘선상에 있던 일부 인물들이 한직으로 물러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법무부가 지난 20일 검사장급 인사를 앞두고 외부인사를 통해 인사청탁을 하는 검사들을 전원 경고조처하고 불이익을 주는 내부지침을 만들었다고 발표해 이번 인사의 강도를 짐작하게 했다. 법무부는 이 지침에 따라 정치권 등을 통해 승진이나 선호보직을 청탁하는 검사들은 사실 여부를 조사해 강력히 경고하고 승진·전보 등 인사에서 불이익을 줄 방침이다.

법무부의 이 지침은 최경원 법무부 장관과 이명재 검찰총장의 확고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검사들에 대한 외부의 인사청탁 내용을 내부 전산망에 입력해 극비리에 관리해왔으며, 이 자료가 이번 인사에 적극 활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이 총장이 취임사 등을 통해 지연·학연은 물론 외풍에 얽매이지 않는 인적쇄신을 검찰개혁의 우선과제로 강조하고 있어, 이번 인사에서는 어느 때보다 외부청탁과 지역편중이 배제된 인사와 능력에 따른 발탁성 인사가 가능할 것으로 검찰 내부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이 총장은 검찰의 관행과 조직이기주의로부터도 한 걸음 자유로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선 이 총장은 특검제와 관련해서 “검찰이 아무리 잘해도 국민이 믿지 않는 사건이 있고, 이런 사건에 대해서는 특검제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해 기존 검찰의 논리와는 다소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만 “검찰로서는 공식적으로 특검제가 좋을 수만은 없다”며 검찰이 추진중인 특별수사검찰청을 선호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검찰이 특별수사검찰청조차 특검제 상설화 주장을 차단하기 위해 마지못해 추진하고 있는 것에 비춰볼 때 ‘외부영입 총장’으로서의 전향적인 태도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또 대검 중수부장 재직 시절부터 “중수부가 수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론을 가져온 이 총장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중수부가 수사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수사사항에 대한 검찰총장 보고와 관련해서도 “가급적 검사들을 총장 집무실로 불러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검찰이 정치적 고려와 외풍에서 벗어나 ‘법대로’ 수사하는 관행을 세우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총장에 대한 기대심리는 한껏 올라가 있지만, 그가 검찰개혁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추락을 거듭하던 검찰의 주가가 이 총장이라는 호재의 출현으로 다소 오르고는 있지만, 주가에 반영된 기대이익이 실제로 실현될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총장이 검찰의 중립성과 외풍 차단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뚜렷한 제도개혁 청사진을 아직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의구심을 제기하는 시선도 없지 않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판명난다

김대중 대통령의 이 총장 발탁이 그가 1998년 대검 중수부장으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관련한 이른바 ‘세풍 수사’를 지휘했던 것과 연관지어 해석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세풍 수사가 현 정권과 이회창 총재 사이의 운명을 건 승부였다는 차원에서 볼 때 이 총장이 비록 TK 출신이기는 하지만 현 정권과 공동운명체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정치적 사안에 대한 그의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물론 그런 비판은 단순한 흠집내기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검찰권 행사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검찰권 행사의 제1과제다. 나는 이 자리를 빌려 일체의 부당한 외부 영향력으로부터 검찰권을 지킬 것을 약속한다.” 이 총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얘기다. 그러나 검찰의 홀로서기는 말이나 의지만으로 증명되지는 않는다. 올해 실시되는 대선과 지방선거에 검찰이 얼마나 공정하고 엄정하게 대처하느냐가 검찰 독립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데 외부 전문가들은 이견을 달지 않는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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