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서울 명동에 위치한 주한 중국대사관. 리빈 대사는 지난해 12월7일 한 강연회에서 재외동포법 개정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박승화 기자)

과민반응, 아니면 길들이기?

중국 당국이 최근 여야 국회의원 4명의 입국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뚜렷한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이들은 재외동포법 개정과 관련해 중국 현지에서 입법조사활동을 벌이려던 참이었다. 지난해 중국에서 생긴 한국인 마약 범죄자 사형 파문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이런 사태가 또 불거져 한국민의 감정을 묘하게 건드리고 있다. 민주·한나라당·자민련 3당은 모두 중국 당국의 외교적 결례를 비난하며 유감을 쏟아냈다.

“조선족 이중국적 찬성 않는다”

현재의 재외동포법은 1948년 정부수립 이후 해외이주자들만 대상으로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그 이전에 이주한 중국과 러시아 동포들을 뺀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은 법개정 작업을 위해 현지 조선족 동포들은 물론 중국 관련 당국, 주중 대사관, 선양영사사무소 등을 방문해 실태조사를 하는 것이 불가피한 터이다.

그렇다면 중국 당국은 왜 이런 무리수를 둔 걸까. 당사자 의원들의 말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공식적으로는 거부 이유를 지금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간접적으로 리빈 주한 중국대사가 “연초라 너무 바빠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별다른 뜻이 없다”는 뜻을 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리빈 대사는 지난해 12월7일 한 강연회에서 재외동포법 개정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당시 “중국은 조선족의 이중국적에 찬성하지 않는다. 언제 중국에 건너왔는지 상관없이 일단 중국 국적을 취득한 이상 중국 국민으로 봐야 한다. 신중하게 해결되어야 한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결국 한국 의원들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은 것은 재외동포법 개정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관계 당사자들이나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의 이번 조처가 과민반응은 물론 길들이기 차원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1999년 2월부터 시행된 재외동포법은 재외동포로 인정받아 국내에 거소신고를 하면 2년 동안 재입국 허가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출입국할 수 있고, 부동산도 취득할 수 있도록 만든 법이다. 하지만 재외동포의 범위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가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일찌감치 감안해 구한말이나 일제 때 조국을 떠난 동포들은 수혜대상에서 뺀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는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법을 고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중국동포들이 이 법에 따라 재외동포로 인정되면 국내 출입국, 체류와 취업 경제활동 등에서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의 큰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변방에 대한 한족의 경계심

사진/ 조석족·고려인·재일동포 등에게 불평등한 재외동포법을 개정하라는 해외동포들의 시위현장. 이번 일부 의원들의 중국행은 이런 요구의연장선상에 있었다.(한겨레 이종찬 기자)

몇명의 정치인들이 이 법을 서둘러 고치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국내에 이미 들어와 있거나, 들어오려는 조선족들의 참상이 이미 도를 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적지 않은 조선족들이 몰래 밀입국하려다 떼죽음 등 참변을 당하는가 하면, 국내에 들어와서도 안정된 신분보장이 안 돼 사기를 당하거나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는 사례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국회인권포럼 소속으로 이번에 비자발급이 거부된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은 “코리안드림을 실현하려 한국에 오려는 조선족들이 크게 늘면서 덩달아 이들의 사기피해 등 갖가지 고통도 급증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중국 국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나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사실 정치인들은 중국의 우려와는 달리 조선족 문제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준비하고 있다. 인권이나 소수민족 문제에 예민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중국 당국의 입장을 수긍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낙연 민주당 대변인이 “재외동포법은 애초 우리 정부와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을 감안해 제정한 것”이라고 밝힌 데서도 잘 드러난다. 중국 당국은 특히 한국 정부가 조선족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추진할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 대해서도 정치인들은 정부의 공식·비공식 대화채널을 통해 중국쪽에 그럴 뜻이 없음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은 57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이중 한족이 대다수인 92%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윈난성 같은 곳에는 25개 소수민족이 몰려 살고 있어 한족을 소수민족이라고 조롱할 정도다. 중국 당국은 소수민족들을 극진히 대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소수민족들이 독자적인 문화전통을 유지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한편, 경제적으로도 많은 배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만요인을 초기부터 잠재워 분리독립운동 등 분쟁을 사전에 막으려는 의도에서다.

소수민족들은 대부분 중국의 변방에 살고 있다. 그 면적은 중국 전체의 60%에 달하고 있다. 러시아를 비롯해 여러 나라들과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체제안보 측면에서 극히 민감한 지역에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역사는 변방의 민족과 한족 사이의 밀고 밀리는 싸움으로 점철돼 있다. 흉노족과의 화해를 위하여 여자를 바쳐야 하는 굴욕외교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한(漢)시대를 필두로 거란족의 금(金)과 요(遼), 몽골족의 원(元) 및 만주족의 청(淸)에 침탈당했던 과거사를 보더라도 한족의 변방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외교부, 찬성도 못하고 반대도 못하고…

특히 중국 당국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고 있는 것은 소수민족들의 분리독립운동이다. 신장의 웨이우얼자치구나 티베트 서장자치구는 대표적인 경계지역이다. 하지만 한족은 다른 소수민족과는 잘 지내왔다. 심지어 조선족은 그들의 높은 문화수준과 경제적 생활수준 등으로 성공적인 소수민족정책의 모델로까지 불려왔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조선족에만 예외 조처를 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른 소수민족 정책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서다.

이런 사정을 빤히 잘 아는 한국 외교부의 고민도 깊어 보인다. 재외동포법 개정을 밀어붙일 경우 중국과의 관계에 빨간불이 켜질 것이 뻔하고, 동포의 무더기 입국에 따른 국내 노동시장 교란, 안보 측면에서도 우려할 대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같은 민족, 혈통을 갖고 있다고 해서 국가가 연고권을 주장하는 것은 국적을 중요시하는 국제적인 추세에 거슬리는 것”이라면서 “민족문제를, 그것도 공식적으로 들고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제추세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 외교부의 내부 공식 입장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중국 당국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조선족 동포정책에 관한 한 한국 외교부와 일부 정치인들 사이의 견해 차이가 적지 않음을 쉽게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외교부는 사안의 민감성과 여론을 감안해 대놓고 반대입장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다. 한승수 외교부 장관은 “비자발급 여부는 한 나라의 주권사항이라 우리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외교부의 입장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언론이 우려하는 한-중간의 외교마찰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은 2월쯤에 다시 비자 발급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이번 방문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중국 당국의 입장을 직접 확인하고, 차이가 있다면 그 원인과 간극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모색하는 데 있다”면서 “중국 당국이 이번에는 대승적 차원에서 비자를 내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중국 당국이 다시 방문비자를 내줄지, 재외동포법의 개정이 순조롭게 이뤄질지 불확실하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