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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회원권 삼키고 골프장 챙겼다

관악CC 인수한 신안그룹의 이상한 경영… 예약권 보장 CP 판매로 기존 회원권 폭락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다. 그게 어떤 돈인데. 20년 이상 직장 생활한 아내의 퇴직금을 고스란히 털어넣은 것 아닌가 말이다. 시세가 떨어진 것이라면야 불운 탓으로 돌리면 그만이지만, 이건 눈 뻔히 뜨고 코 베인 격이니…. 회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는 있으나 어디 잘된다는 보장이나 있나. 나오느니 한숨뿐이요, 보이느니 아내 눈치뿐이다. 어쩌다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말았단 말인가.

ㄱ사 황아무개 과장(40)이 ‘관악CC(골프장) 사태’에 휘말린 것은 지난 1997년 11월. 황 과장은 선배의 권유도 있었는데다 골프를 배워보겠다는 욕심에 관악CC(올해 리베라CC로 바뀜) 회원권을 덜컥 인수하고 말았다.

4천여만원 말리고 부킹권도 빼앗겨

당시 회원권 값은 같은 회사에 다니다 직장을 그만둔 부인의 퇴직금에 약간의 웃돈을 얹은 6500만원 수준이었다. 관악골프장 회원권은 한때 7900만원까지 올랐다가 황 과장이 인수할 당시에는 6300만원까지 내려가 있었다.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릴 만했던 것이다.

황 과장의 기대는 그러나 여지없이 깨졌다.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골프장 회원권 값은 폭락세를 면치 못했다.

여기까지는 아주 통상적인 투자실패의 한 사례일 뿐이다. 정작 문제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일어났다. 골프장의 주인이 갑자기 바뀌면서 회원들에게 ‘아주 이상한’ 조건이 붙더니, 회원권 값이 또 한번 폭락하고 만 것이다. 골프장 주인이 바뀌기 직전 회원권은 4500만∼5천만원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250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관악골프장처럼 기흥톨게이트 부근에 자리잡고 있고 회원 수도 비슷한 ㅍ골프장의 회원권 값이 3500만∼3600만원 수준인 것에 견줘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회원권 값 폭락보다 더 어이없는 것은 아예 골프장을 이용하기도 어렵게 됐다는 사실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새 주인이 회원들에게 갖다붙인 이상한 조건이란 무엇인가.

본래 관악골프장의 주인은 (주)대농이었다. 대농은 관악사업부란 별도 부서를 두고 여기를 통해 관악골프장을 관리·운영해왔다. 그러다 외환위기 뒤 부도를 맞아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골프장을 비롯한 자산 매각에 나섰다.

대농으로부터 관악골프장을 인수한 쪽은 신안그룹 박순석(61) 회장으로 매매가 최종 성사된 것은 올해 초. 대농은 1월3일 증권거래소 공시를 통해 관악골프장을 박순석 외 3명에게 925억5100만원(장부가 533억51만원)에 처분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후 매각 마무리 절차가 이어졌다. 거래는 대농이 현물(골프장 등)을 출자해 관악골프장을 신설법인으로 독립시키고 이어 신안그룹이 자산·부채 인수 방식으로 넘겨받는 것이었다. 대농은 이를 통해 850억원에 이르는 부채를 떨어냈다.

사단은 신안그룹쪽이 인수한 뒤에 벌어졌다. 신안그룹은 관악골프장 이름을 리베라CC로 바꾸는 한편 최신식 클럽하우스 신축, 승용 골프카 도입, 야간조명시설 설치 등 야심찬 신규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골프장을 새로 단장하는 데 드는 비용을 모두 회원들한테 떠넘기는 방식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신안쪽은 1억3천만원짜리 신안그룹 CP(기업어음·5년거치 연 0.3%)를 판매하는 식으로 특별회원 600명을 모집해 780억원을 모으고 이어 3억원을 내는 우대회원 50명을 모아 150억원을 확보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렇게 해서 모집이 완료될 경우 신안은 모두 930억원을 확보해 채무 850억원을 갚고도 90억원가량을 남기는 ‘기가 막힌’ 장사를 하는 셈이다. 속된말로 ‘손도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었다.

골부장 새단장 비용 회원에 떠넘겨

기존 회원들이 CP를 인수하지 않으면 그만 아니냐고 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신안쪽이 CP를 사는 특별회원에게만 주말부킹(예약)권을 보장한다는 ‘고리’를 걸어뒀기 때문이다. 국내 골프장의 형편상 특별회원에게만 주말부킹권을 보장할 경우 나머지 회원은 골프를 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간단히 말해 돈이 모자라 특별회원 대열에 들지 못하는 일반회원들의 회원권은 휴짓조각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셈이다. 신안 인수과정을 앞뒤로 관악골프장의 회원권 값이 뚝 떨어진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작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회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회원들은 관사모(관악CC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대표 현종훈)를 꾸려 신안쪽의 자금모집 행위를 ‘CP강매’로 규정, 법적 대응에 나섰다. 관사모는 최근 신안그룹 박순석 회장을 상대로 ‘특별·우대회원 모집 금지 가처분 신청’을 수원지방법원에 냈으며 오는 3월23일 첫 심리를 앞두고 있다.

신안그룹쪽은 이와관련, 클럽하우스 신축, 전동카 도입, 잔디 단장 등에 500억∼600억원에 이르는 자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돼 회원들에게 일부 부담을 지우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다. 또 특별회원에게 주말부킹권을 모두 주는 게 아니라 부킹할 수 있는 우선권만을 주기 때문에 일반회원도 잔여분에 대해 부킹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이에 대해 현종훈 관사모 대표는 “신안쪽의 처사는 기존 회원들의 골프장 이용권리를 뺏고 신안그룹의 CP 판매 수단으로 악용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농과 신안그룹 사이에 골프장 양수도 계약을 맺을 때 이미 기존 회원의 권리 승계는 완료된 것인데, 특별회원 모집이란 명분을 내걸어 새로 회원 심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수과정에서부터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는 신안그룹의 박 회장이 전남 신안 출신으로 정치권 실세와 가깝다는 소문과 맞물리면서 ‘특혜설’로 발전하고 있다.

인수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점은 수의계약이나 마찬가지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진 대목이다. 관사모에 따르면 관악골프장 매각 입찰에는 모두 4군데가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가 최종적으로 2군데만 입찰에 응해, 신안쪽이 낙찰받았다. 일간지에 공고를 내고 시행하는 경쟁 입찰과는 크게 다른 방식이었다.

당시 서울지방법원 파산1부(대농 법정관리 관할 법원) 부장판사였던 양승태 판사는 이에 대해 “관악골프장 매각의 주간사는 신한은행이 맡았으며 법원은 (대농의) 관리인과 매각 주간사가 마련해온 방안에 문제가 없는지만을 따져 최종허가를 내준 것”이라고 말했다. 양 판사는 “당시 대농골프장은 인수자가 없어 값이 크게 떨어져 있는 상태였으며 제일 좋은 조건에 판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관사모쪽의 주장은 이 대목에서도 크게 엇갈린다. 관사모 회원이기도 한 이종훈씨는 “나를 중심으로 한 회원 몇몇과, 또 한편으로 미국의 컨설팅회사인 KPMG를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인수를 추진했는데 아예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지난해 4, 5월께 대농채권단으로부터 관악골프장을 비롯한 대농의 자산이 자산관리공사로 넘겨져 경매 처리될 것이란 얘기를 듣고 자산관리공사를 찾아갔더니 2001년 1월께 넘어올 것이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덜컥 신안쪽에 인수되었더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신안의 인수 배경 의혹… 입찰 방식도 논란

이런 정황으로 인해 입찰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구심이 일고 있으며 이번 입찰에 참여해 신안그룹과 경쟁을 벌인 데가 어딘지에 대한 궁금증도 일고 있다.

매각 주간사를 맡은 신한은행 관계자는 “입찰방식은 자문기관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고 관할법원의 허가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며 “은행은 단순한 대리인에 불과해 입찰과 관련한 어떠한 사항(입찰 참여 업체, 가격 등)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못박았다.

기업어음을 매개로 한 특별회원 모집 논란은 법정 다툼을 앞두고 있어 누가 옳은지 지금 시점에서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같은 방식의 골프장 인수는 유례가 없던 일이며, 다른 골프장으로도 이런 방식이 번지면 여러 가지 후유증을 남길 것이란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나 정치권 연계설까지 가세하면서 잠재적인 폭발력을 안고 있는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골프장사업협회 관계자는 “골프장을 인수할 때 신규 분양값이 높을 경우 기존 회원들한테 (특별대우를 대가로) 얼마를 더 낼 것을 요청한 사례는 간혹 있었지만 신안그룹처럼 CP를 떠안기며 기존 회원들의 권리를 크게 침해한 일은 유례가 없다”고 꼬집었다. 골프장사업협회가 신안그룹같은 골프장 사업주들로부터 회비를 받아 운영하면서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발언은 대단히 이채롭게 들린다.

이 관계자는 “신안그룹의 인수방식이 관철될 경우 지금 매물로 나와 있는 다른 골프장도 모두 그런 식으로 매매가 이뤄질 것”이라며 “골프장 회원들이 일제히 회원권 투매에 나서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회원권 값이 하루아침에 ‘헐값’으로 전락할 게 뻔한데 누가 앉아서 당하기만 하겠느냐는 설명이다. 그는 “신안쪽은 골프장을 새로 단장하는 데 드는 재투자 비용을 대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그런 비용은 당연히 인수자쪽에서 조달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악골프장(대농 관악사업부)은 지난 99회계연도에 매출 120억4300만원, 영업이익 34억2600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사업성과는 아직 확정 발표되지 않은 상태이나 해마다 40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대농쪽은 설명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신안그룹은 돈 한푼 안 들이고 40억원 안팎의 이익을 내는 기업체를 인수하는 꼴이 된다는 게 관사모쪽 주장이다. 다시 말해 대농이 850억원의 부채를 떨고 신안쪽이 알짜배기 사업체를 인수하는 뒷배경에는 일반회원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회사 부실화 책임이 회원에게 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은 골프장 회원권의 속성과도 관련이 있다. 사단법인화돼 회원이 곧 주주인 골프장과 달리 일반 기업체가 소유하고 있는 골프장의 회원은 이용권만 가질 뿐이어서 해당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도리가 없다. 관악골프장 회원들은 지분을 가진 주주와 비슷한 자격이면서도 골프장이 근저당 설정되는 것조차 알 수 없었다. 회사(대농) 부실화에 아무런 책임이 없으면서도 결국 부실화에 따른 손실을 분담하는 꼴이 된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작용하고 있다. 이는 다른 대부분의 골프장도 예외가 아니다. 관악골프장 사태가 다른 곳으로 번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