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2002 월드컵 결승전… 한국은 어떻게 16강에 오를 건가
월드컵 조추첨이 끝났다. 각국의 희비가 엇갈린다. 조추첨 결과는 16강 통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미 예선의 절반쯤 치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조편성 결과의 득실에 기반해, 2002월드컵의 가상 시나리오를 짜본다. 편집자
2002년 6월30일 7시55분. 요코하마 스타디움에는 준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꺾고 올라온 프랑스와 포르투갈과 격전을 치르고 올라온 이탈리아 선수들이 2002한·일월드컵축구대회 대망의 결승전을 5분 앞두고 엄청난 스트레스와 긴장을 억누르며 역사적인 킥오프를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의 플레이메이커 지단은 잠시 98프랑스월드컵 결승전이 생각하는 듯했다. 당시 지단은 2골을 넣어 막강 브라질을 3 대 0으로 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앙 수비수 데사이가 잠깐 지단에게 다가와 뭐라고 말을 했다. 아마 “4년 전의 영광을 다시 한번 맛보자”고 말하는 듯했다. 가데나치오(자물쇠수비)를 자랑하는 이탈리아는 크리스티안 비에리, 필리포 인자기, 델 피에로 등 유럽 최고의 공격수들이 경기시작 휘슬이 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탈리아가 프랑스의 지단과도 안 바꾼다는 발군의 플레이메이커 프란체스코 토티의 뇌리에는 결승전에 오르기까지의 격전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탈리아는 G조에서 크로아티아, 멕시코, 에콰도르와 한 조를 이뤘다. 6월3일 에콰도르와의 첫 경기를 2 대 0으로 이긴 게 좋았다. 물론 몇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노련한 파울로 말디니가 포진한 수비가 잘 막아냈다. 이탈리아는 6월8일 크로아티아와는 1 대 1로 비겼지만 6월13일 벌어진 멕시코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3 대 1로 이겨 2승1무, 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16강 상대는 홈팀 한국이었다.
한국에 찾아온 행운, 이탈리아엔 역부족
사진/ 2002한·일 월드컵에서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건가. 지난 12월1일 조추첨 결과가 전광판에 표시돼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 천신만고 끝에 16강 문턱에 올랐다. 첫 경기에서 폴란드에 고전 끝에 1 대 1로 비겼다. 고종수의 발끝에서 나온 프리킥 골이 없었다면, 한국의 16강 꿈은 대회 초부터 물거품이 될 뻔했다. 두 번째 미국 경기는 치열한 접전이었다. 전반을 무득점으로 마친 두팀은 후반에도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결국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 최용수의 결승골이 한국을 살렸다. 예선 마지막 포르투갈과의 경기. 한국은 전원 수비를 펼치는 틈틈이 역습을 노렸지만, 결국 피구와 콘세이상의 연속골에 무너지고 말았다. 뒤늦게 만회골이 터져나왔지만, 경기를 뒤집지는 못했다. 포르투갈은 3연승으로 손쉽게 16강에 올랐다. 그러나 한국의 행운은 미국이 가져다주었다. 미국이 폴란드와 비기는 바람에 폴란드가 2무1패로 조 3위로 떨어진 것이다. 결국 한국은 행운의 16강행을 탔다.
그러나 한국은 역시 이탈리아의 상대가 못 됐다. 이탈리아는 한국의 스트라이커 황선홍에게 1골을 먼저 허용했으나 이후 내리 3골을 터트려 3 대 1로 이기고 8강에 올랐다. 8강에서는 파라과이를 2 대 1로 제압한 독일과 만났다. 94년 미국월드컵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8강에 머문 이후 ‘고장난 전차’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독일은 카르스텐 얀커가 중원을 지휘하면서 올리버 비어호프가 주장으로 팀을 잘 이끌고 있는 만만치 않은 팀이었다. 특히 주장을 맡고 있는 유럽 최고의 골키퍼 올리버 칸은 철벽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독일의 공격을 잘 견뎌내 승부차기에서 독일을 눌렀다.
이탈리아는 16강전에서 크로아티아, 8강전에서 스페인을 누르고 포르투갈과 준결승전을 가졌다. ‘유럽의 브라질’로 불리는 포르투갈은 한국, 미국 등과의 예선을 쉽게 통과해서 그런지 힘이 남아도는 듯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루이스 피구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큰 게 약점이었다. 포르투갈은 루이스 피구가 막히자 펄펄 날던 세르히오 콘세이상, 페드로 파울리티 등의 활동범위가 크게 줄어들어 공수의 밸런스가 급격히 무너졌다. 결국 지단을 중심으로 꽉 짜인 조직력이 돋보인 프랑스가 포르투갈을 3 대 1로 제압하고 결승전에 올라왔다.
프란체스코 토티는 결승전 상대 프랑스가 조 예선에서는 비교적 약한 상대들인 덴마크, 세네갈, 우루과이와 만나 쉽게 16강에 올라왔지만 이후 결승전에 오르기까지 박빙의 격전을 치르느라 꽤 지쳐 있었다. A조 1위를 차지한 프랑스는 16강전에서 죽음의 조인 F조에서 살아남은 잉글랜드와 만났다. 스웨덴 출신의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이 이끄는 잉글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공격수 마이클 오언과 세계 3대 플레이메이커 데이비드 베컴, 그리고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수비수라는 리오 페르난디도와 뱅트슨 이후 최고의 골키퍼라는 데이비드 시번 등 포지션별 스타플레이어가 포진하고 있는 막강 팀이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역시 운이 따르는 팀이었다.
프랑스는 연장전까지 가는 120분간의 혈투를 벌인 끝에 승부차기에서 잉글랜드를 4 대 3으로 꺾고, 8강전에서 브라질을 만났다. 브라질은 H조 2위로 올라온 일본을 2 대 1로 누르고 8강에 오른 터였다. 남미 예선에서 6패나 당하며 만신창이가 된 브라질은 부상에서 회복된 호나우두까지 가세했지만 역시 과거의 브라질이 아니었다. 브라질은 경기시작 13분 만에 트레제게에게 한골을 허용하더니 그대로 무너졌다. 결국 2 대 0 프랑스의 승리였다.
예술축구와 빗장수비가 결승전서 만나
사진/ 유로2000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맞붙었다.(SYGMA)
프랑스는 준결승전에서 덴마크(16강)와 러시아(8강)를 각각 누르고 올라온 아르헨티나와 만났다. 아르헨티나는 FIFA랭킹은 비록 2위지만 세계에서 가장 정확하다는 잉글랜드 도박사들로부터 세계최강으로 인정받고 있는 세계최강의 팀이다. 죽음의 조라는 F조에서도 1, 2차전에서 나이지리아, 잉글랜드를 완파하고 일찌감치 16강을 확정지었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아리엘 오르데가, 에르난 크레스포 그리고 남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후안 베론 등이 버티고 있는 초호화 군단이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전성기를 지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를 너무 믿었다. 94미국월드컵, 98프랑스월드컵에 이어 3대회 연속 헤트트릭이라는 대기록을 노렸던 바티스투타는 겨우 2골에 그쳤고, 프랑스와 준결승전에서도 결정적인 찬스를 2번이나 놓쳐 팀이 1 대 2로 패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운명의 시간은 다가왔다. 8시 정각, 결승전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요코하마 경기장에 울려퍼졌다. 경기시작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토티는 이 경기가 어렵다는 것을 직감했다. 프랑스 전력의 핵인 지단의 컨디션이 너무 좋은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단의 어시스트를 받은 티에리 앙리에게 첫골을 허용한 뒤 이탈리아의 자랑 가데나치오 빗장수비는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노련한 프랑스 팀은 빗장수비를 푸는 열쇠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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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조’ 산 넘어 산
2002한·일월드컵축구대회 조추첨 결과 F조에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스웨덴, 나이지리아가 한 조에 배정돼 월드컵 사상 최악의 조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4팀 모두 우승후보 팀들이어서 16강에 오르기도 어렵지만, 설사 16강에 오르더라도 좋은 성적을 올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등과 맞대결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월드컵은 다른 대회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역대 월드컵을 보아도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은 팀들은 별로 성적이 좋지 못했다.
지난 98년 프랑스월드컵은 D조가 죽음의 조였다. 유럽의 축구강국 스페인과 96년 애틀랜타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나이지리아 그리고 남미 예선에서 2위를 차지한 파라과이와 다크호스 불가리아가 한 조를 이뤘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이지리아가 2승1패로 1위, 파라과이가 1승2무로 2위를 차지해 16강에 올랐다. 하지만 나이지리아는 16강에서 쉽게 생각했던 덴마크에 1 대 4로 대패를 당했고, 파라과이는 홈팀 프랑스와 연장전까지 가는 격전을 치렀으나 결국 연장 9분에 블랑 선수에게 한방을 얻어맞고 탈락했다.
94년 미국월드컵에서는 E조에 이탈리아, 노르웨이, 아일랜드, 멕시코가 속해 있었다. 이탈리아는 우승후보였지만 나머지 3팀은 백중세를 이루는 팀이었다. 결국 4팀 모두 1승1무1패가 되었고, 골 득실에 따라 노르웨이만 탈락했다(당시는 와일드카드가 있어서 3위 팀도 성적이 좋으면 16강에 올랐다). 그러나 8강 진출전에서 아일랜드는 네덜란드에, 멕시코는 불가리아에 덜미를 잡혔고, 막강 전력 이탈리아만이 승승장구했으나 결승전에서 로베르토 바조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브라질에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다.
82년 스페인월드컵 대회는 1차 리그에 이어 2차 리그를 치렀는데 특히 2차 리그 C조에는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브라질이 배정되었다. 당시 세계4강 가운데 서독을 제외하고 3팀이 몰린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이탈리아가 파울로 로시의 맹활약에 힘입어 서독을 3 대 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86년 멕시코월드컵은 한국이 속한 1조에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불가리아가 배정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불가리아와 1 대 1로 비겼고, 이탈리아(2 대 3), 아르헨티나(1 대 3)에 비교적 선전을 했으나 1무2패로 탈락했다. 이탈리아는 16강에 올랐으나 프랑스에 0 대 2로 패했고, 마라도나라는 ‘절대자’가 있었던 아르헨티나는 우루과이를 물리치고 결승전에 올라 서독을 3 대 2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74년 독일월드컵 2차 리그는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뉘었다. A그룹에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동독이 편성되었고, B그룹에는 서독, 폴란드, 유고, 스페인이 배정되었다. A그룹과 B그룹의 수준 차이가 크게 났다. 여기에는 홈팀 서독의 ‘일부러 져주기’ 사연이 개입되어 있었다. 서독과 동독이 1차 리그 1조 마지막 경기를 벌였는데 이긴 팀은 1조 1위로 A그룹, 패한 팀은 2위로 B그룹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결국 서독은 결승전에서 A그룹에서 대난전을 치른 네덜란드에 2 대 1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다. |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