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이슈추적 | 등록 2001.10.10(수) 제379호 |
[이슈추적] 지상 명령 “본토를 수호하라” 테러에 놀란 미국의 향후 군사정책… 중국 견제정책, 미사일방어체제는 계속 추진
“미국 본토를 수호하라!” 사상 초유의 동시다발 테러공격으로 혼쭐이 난 미 국방성에 내려진 지상 명령이다. 미 국방성은 10월1일 의회에 제출한 향후 4년간의 국방정책 방향과 비전을 드러낸 ‘4개년 국방정책검토’(QDR) 보고서를 통해 ‘본토 방위’가 지금은 물론 앞으로의 최우선 국방정책과제라고 밝혔다.
병력 감축계획은 없어
9·11 테러 발생 3주 뒤에 나온 이 보고서는 세계 군사 최강대국인 미국이 이번 테러에 얼마나 크게 경악했는지를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21세기 안보환경 △국방 전략 △군 개혁에서의 페러다임 전환 △미군의 지구적 재배치 등을 얼개로 짜여진 71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는 미 본토를 대상으로 앞으로 계속해서 자행될지 모를 무자비한 테러와 같은 돌발공격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미 군부 핵심들과 군사 전략가들의 당황스러움과 고민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보고서 머리말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 미국의 이익이 위협받고, 미 본토가 공격을 당하며, 미국인이 이 공격의 결과로 죽을지 현재 정확히 알 수 없으며, 미래에도 알 수 없을 것”이라며 “다만 갑작스런 공격에 신속하고도 단호한 조처를 취할 수 있도록 적응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러가 발생하기 직전만 해도 미사일방어체제의 조기 구축을 나라 안팎에서 세일즈하며, 우주전, 정보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부르짖어온 그의 입에서 나온 다소 자신감이 떨어져 보이는 이 말은 뜻밖으로 받아들여졌다.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거침없는 언행을 보였던 그이기 때문이다. 이번 보고서에는 그의 애초 구상이 이번 테러공격으로 적지 않게 손상되었음을 쉽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즉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적으로부터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본토 방위나 군 인력의 대대적 감축 등 그의 핵심 주장들이 우선 순위에서 약간씩 밀려난 것이다. 보고서는 여전히 국가미사일방어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나 비중은 이전보다 줄어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또 군부의 거센 반발을 아랑곳하지 않고 세게 밀어붙여왔던 소수 정예군 중심의 군 병력 감축계획은 현 수준의 병력을 유지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미 국방부는 영토방위를 위해 국내 주둔 병력을 지금처럼 현역 140만명, 예비역 130만명 수준을 고수해야 하며, 특히 예비군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테러 발생 이전 군 병력과 구조, 국내외 군사기지, 무기체계, 해외주둔군 등에 대한 광범위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부시 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큰소리와는 달리 큰 폭의 변화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어쨌든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을 예정대로 추진하고, 테러공격 등에 맞서기 위한 정보수집 기능을 대폭 강화하며, 정보전쟁과 우주작전 능력을 높이겠다는 방침 등은 럼스펠드 자신의 구상을 상당부분 관철시킨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이미 예고된 윈-윈 전략 수정
사실 미 국방성은 4년 전 국방정책검토 보고서에서도 테러위협을 지적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국방정책의 1순위에 테러 등으로부터의 본토방위를 올려놓기는 처음이다. 미 국방성은 보고서에서 최근 창설된 ‘본토안전국’이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광범위한 전략을 짜서 이를 감독하고 조율하는 기능을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토방위군과 예비군들이 본토방위를 위해 좀더 중요한 역할을 떠맡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공군 전투기들은 주요 미국 도시들의 하늘을 감시하는 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죄없는 시민들을 나르는 민간항공기들이 테러범의 손아귀에 들어갔을 경우 격추시켜도 좋다는 새로운 명령서를 조정사들이 손에 쥐고 있는 점이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육군 헬리콥터들은 24시간 주요 핵시설을 감시하고 있고, 국토경비대원들은 공항에 급파돼 공항 안전을 도와주고 있다. 하지만 정작 미 국방성이 보고서에서 본토방위를 이처럼 되풀이해서 강조하면서도 막상 구체적이면서도 치밀한 방안들을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4개년 국방정책검토 보고서는 사실 9·11 테러사건이 불거지기 이전에 이미 다 만들어진 상태였다. 미 국방부는 전례없는 테러공격을 당하면서 부랴부랴 본토방위를 최우선 과제로 올려놓기는 했으나 좀더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보고서에 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군 조직과 인력재편, 기능의 대폭적인 조정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미 국방부가 아시아지역 특히 동아시아지역을 대규모 무력충돌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꼽고 있는 점이다. 좀더 노골적으로 중국을 여전히 아시아지역의 최대 불안정 요인으로 보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해군과 공군력을 서태평양에 집중배치하고, 아시아지역 방위를 위해 해병대의 작전훈련을 더욱 늘려야 한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 대목과 관련해 “보고서는 중국을 파트너가 아닌 경쟁자로 본다는 부시 대통령의 생각을 그대로 담고 있다”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는 데 있어 부시 대통령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중국의 태도가 미 국방부의 우려를 씻어주지 못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미 국방부는 이밖에도 아시아지역이 지리적으로 광범위하게 걸쳐 있으므로 좀더 효과적인 군사작전을 펼치기 위한 군사기지와 지원시설 확보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한반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윈-윈 전략’의 수정을 내비치고 있다. 한반도와 중동지역에서 전쟁이 발생할 경우 동시에 2개 전장에서 승리를 이끌겠다는 이 전략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아시아 중시정책의 선회로 일찌감치 변화가 예고됐다. 하지만 미국은 동맹국들이 적으로부터 공격받는 것을 군사적으로 최대한 억제하되 그 같은 억제가 실패할 경우 1개 전쟁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둔 뒤 다른 지역의 전쟁터에서도 이를 포기하기보다는 최소한 현상을 유지하는 전략을 구사하겠다고 밝혀 동맹국들을 안심시켰다.
지구적 개입정책 포기 못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앞으로 군사적 개입을 줄여나갈 것인가. 보고서는 “비록 지금은 전 국민이 테러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는 때이지만 미국의 목표는 명확하고, 확고하다”면서 “미국의 목표인 지구 차원의 평화, 자유와 번영의 촉진을 실현하기 위해 군사력의 강화는 필수적”이라고 적고 있다. 또 “미국의 안보는 다른 나라들의 그것과 직결돼 있다. 미국의 번영은 다른 나라들의 번영 여부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미군이 지구상의 어디라도 달려갈 수 있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는 대목이다. 헨리 셀튼 미 합참의장은 보고서 마지막장에서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신뢰할 만한 군사능력을 유지하는 것은 미국의 지구적 리더십 역할을 수행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힌 데서도 미국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미군의 지구적 개입정책이 이번과 같은 테러참변을 불러온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일각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 정부가 국방력를 더욱 살찌우고, 군사개입도 오히려 늘려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4개년 국방정책검토’ 보고서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 본토를 물샐틈없이 지키면서, 바깥으로는 여전히 세계 군사 최강대국으로 군림하면서 테러공격으로 입은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미 군부의 야심이 보고서에 그대로 배어 있다는 지적이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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