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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집단에 스파이를 심어라” 전과경력 첩보원 고용금지 규정 곧 폐지… 미국 정보기관 새로운 전성시대 임박
미국에 ‘스파이 양성론’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9·11 동시다발 테러사건 이후 번지고 있는 현상이다. 위용을 뽐내던 첨단 첩보위성들도 독을 품은 몇명의 테러범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했다는 것을 통감해서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정보예산을 갖다 쓰고 있는 미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 등 여전히 막강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이들 정보기관들은 첩보위성들을 쉴새없이 돌리고 전자감청 등을 활용하면서 홍수 같은 정보를 끌어모았지만 정작 대참사를 불러온 결정적인 정보수집에는 실패했다. 따라서 이제는 지나친 기계 의존에서 벗어나 인적 정보를 크게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폴 브레머 국가테러위원회 위원장은 “기술이 정보수집활동에서 긴요한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나 테러집단과 관련한 진짜 중요한 정보는 테러집단에 스파이를 심어두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클린턴 행정부가 스파이활동과 관련해 범죄를 저지른 경력이 있는 첩보원들을 고용하지 않은 것도 정보기관의 정보수집 능력을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알 카에다 조직 내에서 뽑아라?
냉전 이후 수그러들었던 스파이를 다시 길러야 한다는 목소리는 정보나 안보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정부기관을 비롯해 의회, 언론, 학계 등에서 거의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다른 테러를 막기 위해서라면 살인 청부업자라도 갖다 써야 한다는 태세다. 미 하원은 10월5일 정보기관의 새로운 정보비 지출을 대폭 늘리는 것을 승인하고 정보기관활동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내용은 기밀사항으로 분류돼 있어 공개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법안은 9·11 테러사건 이후의 미 국민 정서를 반영해 과거 전과 경력이 있는 첩보원들에 대한 고용금지 규정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게 될 것이라고 썼다. 공화당의 Doug Bereuter 의원은 “지난 1995년 인권침해 관련 범죄를 저지른 요원들의 고용을 금지한 입법조처는 막상 마약이나 테러와의 싸움에 능숙한 요원들을 활용하는 데 실패했다”면서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조직의 등을 부러뜨리기 위해서는 알 카에다 조직 내에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을 뽑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원에서 통과된 정보활동 관련 법안과 함께 의회에 제출된 비밀보고서에서는 앞으로 미국이 기술문제와는 별도로 스파이를 비롯해 현장 첩보요원 및 비밀공작원 양성을 특히 강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다가 정보원들의 현지 언어습득 교육을 강화하고, 해안경비대를 정보기관의 반열에 올려놓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스파이 고용이나 양성 등과 관련된 정보예산도 대폭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하원의 추가지출 승인으로 중앙정보국과 연방수사국 등 정보 관련 기관에 270억∼300억달러가 배정될 것으로 믿어진다고 보도했다. 이 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9%가 늘어난 수치다. 바야흐로 이번 테러사건을 계기로 미국 정보기관은 새로운 전성시대를 맞을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애초 테러를 사전에 막지 못한 책임을 둘러싸고 정보기관들이 적지 않은 문책과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을 보기좋게 비켜간 것이다.
암살공작 금지, 그뒤
사실 냉전이 막을 내린 뒤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한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냉전시대 중앙정보국 직원들은 ‘악의 제국’ 옛소련과 맞서 싸운다는 자부심으로 뭉쳐 있었다. 하지만 옛소련이 해체의 길을 걸으면서 할 일을 찾지 못해 헤맸던 것이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기술 관련 정보수집과 산업스파이 색출, 테러와 마약단속, 조직범죄를 단속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긴 했다. 하지만 뒷골목 마약단속에 실망한 많은 유능한 요원들이 좀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중앙정보국이 자리잡고 있는 버지니아주 랭글리를 떠났다. 그나마 남아 있던 요원들도 ‘면책특권’이 사라지자 과거처럼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지 않았다. 다소간의 탈법행위도 국익이 걸린 첩보활동이라는 명분 아래 눈감아주는 관행이 없어진 것이다. 이는 70, 80년대 중앙정보국이 반미 국가들을 대상으로 펼친 각종 요인암살공작이나 체제전복공작 등이 발각돼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포드 전 대통령은 70년대 중반 의회 청문회에서 중앙정보국이 쿠바의 국가원수인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암살을 기도한 사실 등이 밝혀져 말썽이 일자 중앙정보부의 암살공작을 금지시켰다. 자연스레 현장에 남아 있던 해외 공작원이나 첩보원들도 옷을 벗고 어디론가 흩어져 떠났다. 이런 와중에 정보통신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과거 사람이 하던 정보수집은 첩보위성, 전자감청장비 등 기계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007과 같은 정보요원 양성에는 극히 소홀했던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해외정보는 현지 해당국가 정보기관에 의존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져갔다. 이번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지 9일이나 지나고 있으나 테러 주모자로 지목한 빈 라덴이나 그의 일당인 알 카에다 조직원들을 이른 시간 안에 잡지 못하는 것도 정보부족이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보스턴 글로버>도 얼마 전 “미국은 빈 라덴에 대한 독자적인 정보가 없어 파키스탄 등 외국정보기관에 의존도가 높다”며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데 애로사항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이다”
이런 그간의 사정을 놓고 일부 정보 전문가들은 이번 9·11 테러가 어쩌면 예고된 참사였는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한 전문가는 “사실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에 걸맞은 정보능력을 갖고 있었다면 평화로운 때에 반미 테러집단 깊숙이 첩자들을 일찌감치 심어놨어야 했다”면서 “첨단 첩보위성이나 상대국가의 정보기관이 주는 정보에 의존하면서 철통 국가안보를 외치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물론 정보요원이 항상 테러와 같은 돌발사태를 완벽하게 막아주는 해결사 구실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미국 전문가들은 냉전 뒤 대부분의 나라들이 사람을 통한 정보수집을 포기하는 와중에서도 이를 고집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둔 나라들을 주목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대팔레스타인 첩보전에 항상 팔레스타인 내 고위 인사를 활용해왔으며, 영국 정보기관들도 아일랜드해방군(IRA)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내부인사를 통해 얻어내 상대를 제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이들 나라들을 쫓아가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 미국이 가졌던 인적 정보력 수준으로 돌아가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이다.” 한때 미국 정보기관의 최고 정예요원의 하나로 꼽혔던 바비 인만 텍사스대학 교수의 전망이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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