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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에 잡히고 전관은 봐주고… 독립 수사 가로막는 검찰의 고질적 병폐… 상명하복 내세운 권한 남용 비일비재
검사들은 말끝을 흐렸다. G&G그룹 이용호 회장의 불입건 처리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임휘윤(57) 부산고검장의 일처리 방식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대부분의 현직검사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마당발’이라면 대인관계가 넓다는 뜻인데 왜 그게 문제가 될까. 넓은 대인관계가 그냥 대인관계로만 끝났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다. 임 고검장이 서울지검장으로 재직할 때인 지난해 서울지검 특수부의 한 검사는 기자에게 이렇게 불만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검사장이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수사 좀 해보려고 하면 ‘고려사항’이라면서 지시한다. 수사가 이어지지 않고 끊어지는 게 많다.” 당시 서울지검에 근무했던 또다른 한 현직검사는 9월22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특수부에 근무한 것이 아니라서 그렇게 큰 사건을 맡지도 않았는데 당시 검사장의 그런 전화를 여러 통 받은 기억이 난다”면서 “그렇게 통화하고 나면 부담되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지시와 외압 사이의 청탁성 민원전화
‘고려사항’이란 “이런 점도 참고해보라”는 이른바 ‘참작사유’의 다른 표현이다. 이같은 지시가 중요한 사법적 판단, 즉 구속 여부나 기소 여부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이같은 지시는 어느 한쪽으로 잘 판단해보라는 식의 ‘방향성’을 담고 있게 마련이다. 전국 평검사의 30% 이상을 지휘·감독하는 서울지검장의 전화 한통은, 평검사에게는 일상적인 지시일 수 없다. 인사고과를 매기는 상급자의 깊은 관심만으로도 좌고우면할 수밖에 없다고 일선 검사들은 하소연한다. 물론 임 고검장의 전화통화가 검사장의 일반적인 지휘감독권, 즉 ‘정당한 권한을 벗어난 행위’인지에 대한 판단과 형사처벌은 검찰과 법원의 몫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검찰 안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져온 청탁성 민원전화를 비롯해 일선 수사검사에게 외압으로 작용할 수 있는 ‘수사의 걸림돌’들이 사라져야 한다는 게 일선 검사들의 바람이다. 사실 이같은 외압을 없애는 일은, 검찰과 관련한 개혁과제 가운데 우선순위로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중요한 것이다. 죄를 지은 사람이 죗값을 치르지 않거나 억울한 사람이 처벌을 받는다고 느낄 경우 그 사법시스템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 사건처리에 있어 주임검사의 독자적인 판단이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는 허다하다. 특히 정치적인 사건의 경우 일선 수사팀과 검찰 지휘부의 판단이 달라 수사검사가 사표를 쓰고 검찰을 떠난 사례도 있다. 검찰은 지난 7월 구속승인 예규 규정을 고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현행 구속승인 예규가 현직 국회의원과 차관급 이상 고위공무원을 구속할 때는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일간 신문·방송·통신사의 장과 2급 이상 공무원, 대학 총장, 은행장 등은 검찰총장의 승인을 받도록 함으로써 정치적 중립성을 해친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었다. 이는 또 지난해 7월 당시 서울지검 동부지청 은진수 검사(현재 변호사 개업)가 검찰 내부 통신망에 ‘검찰의 중립을 위한 제언’이라는 글을 띄운 것이 내부의 호응을 받은 결과이기도 했다. 그만큼 검찰 안팎의 외압에 대한 불만이 컸던 것이다. 그러나 ‘독립적인 수사기관’이라는 검사의 위상에 걸맞은 수사여건을 만들려면 제도적 보완장치가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검찰청법 개정은 1순위로 꼽히는 과제다. 먼저 검사의 독립성의 최대 적인 ‘상명하복’ 시스템을 규정한 ‘검사동일체 원칙’(검찰청법 7조)을 고치는 게 시급하다. 7조1항은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상사의 명령이 법과 양심에 위배될 때 검사가 할 수 있는 대안이 제시돼 있지 않다. 또 구속 대상자에 대한 사전보고와 수사진행상황 수시보고 역시 독립성을 해치는 대표적인 제도로 꼽힌다. 중요한 사건의 경우 부장검사→차장검사→지검장(또는 지청장)→대검 중수부장→대검 차장→검찰총장 등으로 이어지는 겹겹의 보고과정을 통해 간섭의 여지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위상에 걸맞은 수사여건 조성해야 한다
서울지검 특수부장을 거친 한 검찰 고위간부가 털어놓는 경험담이다. “그룹 회장을 구속수사하는 사건이었는데 갑자기 검찰총장을 지냈던 분이 전화해서 ‘그쪽 얘기를 들어보니까 검찰이 잘못 판단하고 있던 것 같더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 겁니다. 무시하자니 검찰의 대선배이고, 그렇다고 그분 얘기대로 수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들 고위간부 출신 변호사들은 대부분 서울지검 특수부나 대검 중수부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맡는 방법으로 고액의 수임료를 짧은 시간 안에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건들의 경우 대부분 수임료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변호사회에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수임계를 내지 않고 있다. 이같은 관행이 고착된 데는 선배를 위해 사건을 ‘알아서 갖다 바치는’ 일부 검사들의 그릇된 행태도 큰 몫을 하고 있다. 검찰이 이번 사건을 교훈으로 삼으려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도입, 외부세력을 이용한 인사운동 금지, 공정한 검사 인사를 위한 독립된 검찰인사위원회 설치 등 평검사들의 오래된 제도개혁 요구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검찰 권력의 원천인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를 비롯해 우리나라 검찰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잇따를지도 모른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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